[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1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을 지나 10분 남짓 더 걸어 용산어린이정원에 들어서자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기승을 부리던 더위는 분수정원에서 솟구쳐 오르는 물줄기에 씻겨 내려갔다. 산책하듯 5분을 더 가자 탁 트인 정원이 나왔다. 산이 많은 서울에서 넓은 잔디밭은 귀하다. 비슷한 걸음으로 걷던 아이는 두 볼이 벌개진 채 녹지로 뛰어들었다. 10m는 되어 보이는 아름드리나무가 그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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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공원은 1904년 한일의정서 체결 후 일본군이 주둔했으며 해방 이후 미군기지로 활용되다 평택 이전을 계기로 반환돼 2023년 5월4일 일부 국민에 개방됐다. 사진 속 용산어린이정원 잔디마당은 과거 미군 야구장으로 쓰였다. 토양 오염 우려가 있었으나 15cm 이상 흙을 덮어 차단했다.(사진=이정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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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미군 주둔지에서 120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용산어린이정원이 서울 주택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정부가 용산공원 부지 중 일부를 활용해 주택 공급에 나설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시를 비롯해 용산구민들이 대립각을 세우면서다. 미군 반환 부지 중 30만㎡에 해당하는 곳으로 신용산역과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는 이촌역 그리고 국방부 청사까지 맞닿은 정원형 녹지 공간이다. 축구장 약 42개를 합쳐 놓은 크기로 도심한복판에서는 보기 드문 규모다.
용산어린이정원은 어린이를 위한 분수정원과 상상놀이터, 축구, 농구, 야구장 등 어린이 친화형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망언덕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평지라 도보 접근이 용이하고 잔디마당 주위로 들꽃산책로와 옛 미군 장군 숙소를 개조해 만든 어린이 전시관 등이 마련돼 있어 유모차를 끌거나 반려동물과 함께 휴식하는 시민이 많았다.
용산어린이정원에서 만난 시민들은 대체로 녹지를 활용한 주택 공급 방안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성동구민 동모(30대·여)씨는 “이렇게 넓고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공간을 주택부지로 쓴다는 건 낭비”라 지적했다. 용산구 주민인 김모(40대·남) 씨는 “민간에 공개된 후 아이와 함께 자주 찾는 공간인데 고가 단지라도 아파트가 들어서는건 달갑지 않다”며 “교통 인프라가 포화고 ‘파크 뷰’가 망가지는 거라 고급 아파트라도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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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어린이정원 분수광장에서 어린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뒤로 국립중앙박물관이 보인다.(사진=이정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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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서울시민을 위한 녹지는 ‘풍요 속의 빈곤’ 상태다.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에 따르면 서울시민의 1인당 공원 면적은 16.2㎡로 베이징의 15.7㎡, 뉴욕의 14.7㎡과 유사하며 파리의 10.7㎡보다 큰 편이나 도시 주변부의 북한산국립공원 등을 포함한 수치다. 어린이 등 보행 약자가 접근하기 쉬운 도보생활권 공원 면적은 5.7㎡에 불과해 글로벌 주요 대도시와 비교해 턱없이 부족하다.
용산구민을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 역시 녹지 보존을 이유로 주택부지 전환을 반대하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300여개의 근조화환을 동원하기도 했다. 정부가 용산국제업무지구 주택공급량을 6000가구에서 1만 가구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용산어린이정원 부지까지 주택용도로 전환하려고 하자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서울 용산구)은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고 “구민의견을 무시하는 졸속개발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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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어린이정원을 주택공급부지로 활용하는 방안이 거론되자 지역 주민들이 근조화환을 보내며 집단 반발했다.(사진=노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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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절벽으로 인한 서울 주택난이 심각한 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용산어린이정원 등 용산공원 부지 일부를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공원 밖 신용산역 인근에서 만난 직장인 최모(30대 여) 씨는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온다면 다른 지역의 수요 압박이 어느정도 해결되지 않겠나”라며 “지하철역과 가깝고 주위 환경이 쾌적해 선호도가 매우 높을 것”이라 말했다.
다만 용산어린이정원 등 용산공원을 활용한 주택 공급은 난맥상이 많아 단기 대책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많다. 당장 노무현 정부 당시 제정된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부터 개정해야 하는데다 미군 소유 당시 누적된 토양오염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정부가 주택 공급을 강행한다고 해도 인프라 조성을 위해서는 지자체와의 협의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적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용산 녹지를 활용한 주택 공급 가능성에 대해 ‘배가 고프다고 종자씨를 먹는 격’이라며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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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어린이정원 잔디마당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사진=이정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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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네이버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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