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정부=한스경제 곽호준 기자 | 강력하지만 과격하지 않고 편안하면서 느슨하지 않다. 볼보의 차세대 플래그십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X90'은 여유 넘치는 성능과 안락한 승차감, 진화한 안전·소프트웨어 기술을 두루 갖춰 국내에 상륙했다.
지난 2022년 EX90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처음 공개됐다. 차명 알파벳 'E'는 활력(Empowering),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우아한(Elegant) 등을, X는 SUV 라인업을 뜻한다. 숫자 '90'이 의미하듯 기존 XC90·S90과 함께 볼보의 플래그십 역할을 맡을 차세대 전기 SUV로 모습을 드러냈다.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을 겨냥해 혁신 기술을 양껏 갖추되 볼보가 추구해온 안팎 디자인과 안전 기술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볼보가 강조한 EX90의 핵심 키워드는 '소프트웨어'다. 단순 전기차를 넘어 소프트웨어 중심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삼았다. 핵심 기능을 통합 제어하는 일명 '휴긴 코어'와 OTA(무선 업데이트)로 갈수록 성능이 진화하는 자동차로 거듭나며 출사표를 던졌다. 무려 4년 만에 국내에 상륙한 EX90은 어떤 매력을 갖추고 있을까? 지난 5일 서울과 의정부 일대를 시승하며 이를 경험할 기회를 얻었다.
▲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실내외 디자인…실용성 채운 플래그십 SUV
실물은 한마디로 깔끔하다. 눈을 자극할 화려함보다는 담백한 외모가 매력 포인트다. 이는 볼보 SUV 라인업의 실루엣을 그대로 밑바탕 삼은 결과다. 길게 뻗은 보닛과 수평으로 이어지는 벨트라인, 꽁무니까지 완만하게 뻗은 루프라인이 어우러져 대형 SUV 특유의 안정적인 비율을 뽐낸다. 차체 길이·너비·높이는 각각 5040x1965x1740㎜로 내연기관 모델 XC90 대비 85㎜ 길고 5㎜ 넓으며 30㎜ 낮다. 그 결과 비교적 낮고 넓게 보이는 '로우 앤 와이드(Low & Wide)' 스타일을 완성했다.
앞모습은 익숙하지만 신선하다. 볼보의 상징인 이른바 '토르의 망치' T자형 헤드램프는 낮·밤의 표현 방식이 다르다. 평소엔 주간주행등(DRL)이 픽셀 그래픽을 가득 채우고 어두워지면 안쪽에 숨겨진 환한 램프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사람이 감고 있던 눈을 스르륵 뜨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또 커다란 '아이언 마크' 엠블럼을 품은 앞 그릴과 범퍼는 차체 컬러로 통일했다. 덕분에 서로의 경계를 허물며 매끈한 페이스를 자랑한다.
이는 볼보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란 디자인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전통적으로 볼보는 불필요한 장식은 지양하고 각 형태에 맞는 쓰임새를 담는다. EX90도 마찬가지.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전체적으로 바디를 모난 데 없는 둥근 조약돌처럼 빚었다. 차체와 평평하게 맞닿는 히든 타입의 '플러시 도어 핸들'과 '프레임리스 사이드 미러'도 좋은 예다. 그 결과 공기저항계수(Cd) 0.29를 구현했다. 길이 5m 넘는 대형 SUV지만 바람 가르는 솜씨는 날렵한 세단 못지않다는 의미다.
내부 역시 이 철학을 따른다. 실용성 부족한 인테리어는 과감히 덜어냈다. 가령 물리 버튼은 최소화하고 차량 대부분의 기능을 중앙 14.5인치 디스플레이에 담았다. 막내 EX30과는 달리 운전석 핸들 뒤쪽에 슬림한 9인치 계기판까지 마련해 직관성도 챙겼다. 그러면서 나파 가죽과 우드 등 고급 소재를 적재적소 둘러 스칸디나비안 특유의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입맛대로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는 '일렉트로크로믹 글라스 루프'의 뻥 뚫린 개방감 덕분에 매우 쾌적하다.
공간감 역시 패밀리카 용도로 적합하다. 참고로 국내 모델은 6인승과 7인승이 마련됐다. 시승한 모델은 7인승으로 2열에 세 명이 앉고 3열에 두 명이 앉는다. 2열은 건장한 성인 남성이 앉아도 여유 있는 다리 공간과 머리 공간을 갖췄다. 다만 3열은 성인을 태우긴 조금 미안할 수 있다. 평균 키의 성인 남성 기준으로 2열 시트를 앞쪽으로 당겨 앉는 배려가 필요하다. 성인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단 아이들 태우는 용도로 제격이다.
넉넉한 적재 공간도 큰 장점 중 하나다. 기본 적재 용량은 324ℓ. 3열 시트만 접어도 1010ℓ의 쾌적한 공간을 누릴 수 있다. 7인승 기준 2열 시트까지 모두 접으면 무려 2135ℓ까지 확보된다. 심지어 시트가 2·3열 시트 모두가 독립식이기 때문에 하나씩 나눠 폴딩 할 수 있고 180º까지 평평하게 접을 수 있어 캠핑·차박 등 용도로 쓰임새가 좋다.
볼보가 강조하는 '안전' 철학도 소프트웨어와 만나 한 단계 진화했다. 차량 안팎에 촘촘히 심은 카메라와 레이더, 초음파 센서가 주변 환경과 탑승자의 상태를 살피고 휴긴 코어가 관련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한다. 예컨대 차 안에 남겨진 아이는 물론 반려동물까지 레이더로 감지해 만일의 사고에 대비한다. 운전자가 전원을 끄고 내려도 내부 온도가 높을 경우 온도조절 시스템을 가동해 차내 방치 사고를 예방하는 방식이다. 또 핸들 뒤에 자리한 카메라는 주행 중 운전자의 상태를 감지해 졸음운전 등의 상황을 능동적으로 막는다.
▲ 강력한 680마력 차분하게 풀어내…주행 완성도 돋보여
주목할 점은 파워트레인이다. 이번에 시승한 차량은 '트윈 모터 퍼포먼스 울트라' 모델로 앞뒤 차축에 각각 전기모터를 얹어 상시로 네 바퀴(4WD)를 굴린다. 최고출력은 무려 680마력, 최대토크는 81.1㎏·m에 달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2초에 불과하다. 제원상 무게 2.7톤(t)을 넘는 플래그십 SUV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웬만한 스포츠카와 견줘도 손색없는 성능이다.
주행 모드는 레인지, 스탠다드, 퍼포먼스 3가지. 소위 에코 모드에 해당되는 레인지는 출력은 물론 공조장치까지 제한해 효율을 극대화한다. 배터리 잔량이 부족할 땐 유용하겠지만 이 차의 성능을 지나치게 억누르는 감이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모드는 스탠다드. 회생 제동은 물론 가속 페달 반응도 적당하다. 이 같은 특성은 속도를 올려도 지속된다. 680마력이란 숫자에 위화감 느낄 필요도, 출력에 답답함을 느낄 일이 없다. 일상에서 성능, 효율, 안락함 사이의 균형이 가장 적절하다.
퍼포먼스에서의 발진 가속 성능은 강렬하다. 가속 페달을 깊숙이 밟으면 커다란 22인치 타이어로 노면을 단단히 움켜잡으며 맹렬히 치고 나간다. 그럼에도 이 강력한 성능을 풀어내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비슷한 600마력 대 성능을 지닌 고성능 전기차의 거동과 비교해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몸이 시트에 파묻힐 정도로 거칠게 밀어붙이기보다는 차분하고 매끄럽게 힘을 쏟아낸다. 빠르지만 위협적이지 않고 강력하지만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다.
이 차의 진가는 승차감으로 맛볼 수 있다. 도로의 웬만한 작은 굴곡은 존재감을 지워버리고 거친 노면에서 전달되는 작은 진동조차 상당 부분 걸러낸다. 커다란 방지턱을 넘었을 때 충격을 한 번 부드럽게 받아낸 뒤 자세를 추스르는 과정이 대단히 깔끔하다. 그렇다고 마냥 하체가 말랑하거나 느슨하진 않다. 불필요한 출렁임은 억제하면서 필요한 만큼만 차체의 움직임을 허용한다.
비결은 '듀얼 챔버 에어 서스펜션'에 있다. 두 개의 공기주머니를 활용해 주행 상황에 따라 차고와 차체 움직임을 보다 세밀하게 조율한다. 가령 급가속으로 하중이 뒤로 쏠리면 후륜 공기주머니의 공기압을 높여 뒤쪽이 주저앉는 '피칭' 현상을 억제하고 자세를 빠르게 바로잡는다. 여기에 '전자식 가변 댐퍼'가 초당 500회씩 차체 움직임을 정밀하게 감지해 코너링이나 고속 주행 등 상황에 맞춰 감쇠력을 조절한다.
이는 뛰어난 고속 안정감으로 귀결된다. 앞뒤 47:53의 무게 배분이 에어 서스펜션과 함께 시너지를 내기 때문이다. 균형 잡힌 차체 밸런스 덕분에 급코너는 물론 쭉 뻗은 직선 도로에서도 차체를 노면에 진득하게 눌러 붙이는 감각이 좋다. 그래서 체감상 느껴지는 속도감과 계기판 속도계의 수치 차이가 크다. 강력한 가속 성능에도 위화감이 적은 이유다. 탄탄함과 부드러움 감각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았다.
다만 효율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EX90의 앞뒤 바퀴 사이 바닥에는 106㎾h의 대용량 배터리가 자리한다. 시승차 기준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국내 인증 기준 최대 448㎞. 볼보가 이 차의 공개 당시 발표한 유럽(WLTP) 기준 600㎞를 훌쩍 넘는다는 수치와도 꽤 격차가 있다. 참고로 공인 복합 전비는 ㎾h당 3.8㎞(도심 4㎞/㎾h, 고속도로 3.6㎞/㎾h)다.
실제 시승에서도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서울과 의정부를 약 70㎞를 왕복하는 동안 계기판에 표시된 배터리 잔량은 73%, 잔여 주행 거리는 290㎞였다. 이를 단순 환산하면 100% 기준 약 408㎞ 달릴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이날 시승 내내 폭염중대경보가 발효된 주행 환경을 고려하면 일정 부분 납득 가능한 수치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주행 가능 거리 500㎞를 훌쩍 넘기는 EV9·아이오닉9 등 국내 모델과 경쟁하려면 효율을 한층 끌어올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
판매 가격은 트윈 모터 플러스 기준 1억620만원부터 시작한다. 트윈 모터 울트라 1억1620만원(7인승)·1억1820만원(6인승), 트윈 모터 퍼포먼스 울트라는 1억2120만원(7인승)·1억2320만원(6인승)이다. 볼보차코리아는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공격적인 가격으로 책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울트라 모델은 XC90 대비 1700만원 이상의 편의 사양을 추가하면서도 미국 시장보다 1730만원 낮게 책정해 가격 경쟁력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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