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 새 전시 '추사 김정희와 그의 동반자' 11일 개막
보물 '불이선란도' 등 38점 소개…故 이건희 기증 허련·이하응 작품 첫선
"지역·신분 가리지 않고 사람 사귄 추사"…12월에는 '조선 모더니즘' 전시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어떻게 하면 성원(옹수곤·1786∼1815)을 일으켜 금석(金石)의 인연을 함께할 수 있을까?"
1817년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는 경주로 향한다.
통일신라시대 소성왕(재위 799∼800)의 왕비 계화왕후가 왕이 세상을 떠난 뒤 명복을 빌고자 아미타불상을 만들면서 관련 내용을 새긴 무장사 비석을 찾기 위해서다.
비석은 오래 전 부서져 흩어졌으나, 탑본(탁본)은 남아 있었다.
추사는 탑본을 입수해 청나라 학자인 옹방강(翁方綱·1733∼1818)과 아들 옹수곤에게 보내 논의했고, 매우 가치 있는 비문이라는 의견을 들었다.
무성한 잡초를 샅샅이 뒤져 가며 찾은 돌 조각. 추사는 비석 조각 한쪽에 발견 경위와 감회를 새기면서 벗과 함께 나누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담았다.
추사의 금석학(金石學·금속이나 돌 등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연구하는 학문) 연구를 대표하는 '무장사 아미타불 조성기비'에 남은 그리움이다.
19세기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조선을 넘어 동아시아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추사 김정희의 삶과 학문,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서화실에서 선보이는 세 번째 주제 전시 '추사 김정희와 그의 동반자'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10일 열린 전시 간담회에서 "겸재 정선(1676∼1759), 단원 김홍도(1745∼1806 이후)에 이어 새로운 문예 화풍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든 인물이 추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유 관장은 "추사는 서예가로 잘 알려져 있으나 금석학·고증학을 연구한 대학자였고 뛰어난 문장가였다"면서 "추사는 정말로 어렵다"고 웃었다.
11일 개막하는 전시는 추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보물 '김정희 필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를 포함해 편지와 서예, 그림 등 38점을 한자리에서 보여준다.
학문적 동료, 벗, 가족과 나눈 편지, 서예, 그림이 전시실을 채운다.
소식을 자주 전하지 않는 부인에게 서운함을 드러내는 젊은 시절의 편지, 사망한 누이의 장례를 챙기지 못하는 슬픔이 담긴 편지 등이 눈길을 끈다.
1819년 4월 황해도 병영의 어느 무관에게 쓴 편지는 처음으로 공개된다.
그해 추사의 부친 김노경(1766∼1837)은 예조판서에 임명됐고, 추사는 문과에 급제하며 집안에 경사가 이어졌는데 추사는 편지에서 조심스러운 마음을 내비친다.
박물관 관계자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쓴 편지"라며 "젊은 시절 김정희는 부친과 필체가 유사했는데 이 편지에서 잘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추사와 함께한 벗, 혹은 동반자를 조명한 부분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청나라의 문인 주학년(1760∼1834)이 그림을 그리고 옹방강과 완원(阮元·1764∼1849) 등이 감상 글을 남긴 '소동파입극도'는 청나라 문인들과의 교유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2023년 구입 후 처음으로 선보인다.
제자인 허련(1808∼1893)이 원나라 화가 예찬의 화풍으로 그린 산수도,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이 1851년에 그린 난초 그림도 전시장에 처음으로 나왔다.
두 작품은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기증한 회화 작품이다.
추사가 60대 후반에 완성한 대표작은 '이 계절의 명작'으로 만날 수 있다.
1852년 8월 함경도 북청 유배를 마치고 경기도 과천 시절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이선란도'는 서예의 필법으로 난초를 그린 대표작으로 꼽힌다.
금박으로 장식한 종이 위에 쓴 '산호가·비취병 대련'은 붓과 산호 붓걸이, 꽃과 비취색 꽃병 등의 문구를 힘찬 필치로 쓴 점이 돋보인다.
왼쪽에는 작은 글씨로 '칠십일과'(七十一果)라는 글귀가 적혀 있고, 오른쪽에는 '요선을 위해 글씨를 쓴다'(書爲堯僊)고 적혀 있다.
과천 봉은사에 머무르던 1856년, 즉 71세의 추사가 북청 유배 시절의 제자였던 요선(堯仙) 유치전(생몰년 미상)을 위해 쓴 글씨로 여겨진다.
박물관 관계자는 "필획의 굵기 차이가 크고 조화로운 말년 추사체의 특징이 잘 살아 있다"며 "생애 마지막을 화려하게 수놓은 걸작"이라고 강조했다.
전시에서는 평생의 벗인 김유근(1785∼1840)과 권돈인(1783∼1859)을 위해 그린 '가을 나무와 흰 구름', '번상촌장에게 증정한 난초' 등도 만날 수 있다.
유 관장은 "김정희가 지역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사귀고, 학문의 경계를 넘으며 옛것을 바탕으로 이뤄낸 탁월한 서화의 경지를 깊이 감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22일까지 열린다.
박물관은 12월부터는 서화실에서 '조선 모더니즘 : 조선 말기의 회화'를 조명한 주제 전시를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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