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4) 양산 반년 만에 이른바 '황금 수율'로 불리는 안정 궤도에 올라섰다. 생산 안정화에 속도가 붙으면서 삼성전자의 HBM 전략도 '기술 추격'에서 '물량 확대'로 무게중심이 옮겨갈 전망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HBM4 수율은 최근 80%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산 초기 60%를 밑돌던 생산 효율을 불과 반년 만에 20%포인 이상 끌어올린 것이다. 당초 업계에서는 이 수준의 안정화 시점을 올해 말로 예상했으나 시장 전망보다 반년가량 앞당겼다.
삼성전자 주주들이 경기 수원시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7기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해 HBM4, HBM4E 메모리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강민석 기자 kms@newsway.co.kr
반도체 업계에서 80% 안팎의 수율은 안정적인 대량 생산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여겨진다. 특히 공정이 복잡한 HBM은 생산 과정에서 작은 결함 하나만 생겨도 최종 제품 전체가 불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생산 효율이 높아지면 같은 설비에서도 실제 출하할 수 있는 제품이 늘어나 매출 확대로 직결된다.
실제 매출 증가세도 가팔라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HBM4 매출 10억달러(약 1조4100억원)를 돌파한 데 이어 3분기에는 전 분기보다 3배 이상 매출을 늘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같은 성장세가 이어질 경우 올해 HBM4 매출은 신규 메모리 제품으로는 이례적인 100억달러(약 14조1500억원)를 넘어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매출이 본격적으로 늘면서 삼성전자의 경쟁 전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HBM 사업의 핵심 과제는 제품 성능을 끌어올리고 고객사의 품질 검증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확보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얼마나 많은 제품을 안정적으로 제때 공급하느냐가 새로운 승부처가 됐다.
HBM 시장의 경쟁 축이 '개발'에서 '생산'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생산 안정화에 속도를 낸 배경으로는 메모리·파운드리·첨단 패키징을 아우르는 '턴키(Turn-key)' 체제가 꼽힌다. 삼성전자는 HBM4 개발 단계부터 관련 조직을 '원팀'으로 묶어 공정과 패키징을 함께 최적화해왔다. 메모리부터 패키징까지 한 회사 안에서 연계할 수 있는 구조가 초기 생산 안정화에 힘을 보탰다는 분석이다.
다만 경쟁사인 SK하이닉스 역시 HBM4 생산 효율이 80%대에 진입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양사의 생산 안정성이 비슷한 수준에 올라서면서 이제 단순한 수율 격차만으로 주도권을 가르기 어려워졌다. 생산능력과 공급 안정성, 고객사 물량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다음 승부처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AI 가속기 시장의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는 생산량 자체가 경쟁력이 된다. 기술력이 비슷하다면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더 많은 물량을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이 시장을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가 생산라인을 얼마나 빠르게 확충하고 안정적으로 가동하느냐가 중요한 이유다.
다음 승부처는 내년 본격적인 시장 개화가 예상되는 HBM4E다. 삼성전자는 HBM4E 신뢰성 테스트 수율을 70% 이상까지 확보하고 지난 5월 주요 고객사에 12단 샘플을 선보이는 등 차세대 제품 대응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관건은 HBM4에서 축적한 생산 안정화 경험을 차세대 제품에 얼마나 빠르게 적용하느냐다. HBM4에서 뒤늦게 확보한 양산 경쟁력을 HBM4E에서는 초기부터 갖출 수 있다면 삼성전자가 추격 속도를 한층 높일 수 있다.
결국 HBM4의 생산 안정화는 삼성전자에 단순한 제조 공정 개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기술력을 입증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확보한 기술을 실제 물량과 매출로 전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다.
HBM 시장의 주도권 경쟁은 이제 누가 먼저 기술을 개발하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AI 반도체 시장이 요구하는 물량을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느냐가 진짜 경쟁력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HBM4의 생산 안정화를 매출 확대로 연결하고 이를 HBM4E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가 향후 시장 판도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예상보다 이르게 HBM4 생산을 안정화하면서 시장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렸다"며 "올해 매출 성과에 이어 HBM4E에서도 초기부터 안정적인 공급 체제를 구축한다면 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좁히는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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