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큰 소라 껍데기 하나가 그 자체로 훌륭한 악기 역할을 수행한다. 나무를 깎아 관을 제작하거나 여러 부품을 복잡하게 이어 붙이는 과정이 거의 생략된다. 뾰족하게 솟은 각정(殼頂)을 반듯하게 갈아내어 작은 구멍을 뚫고, 입술을 댈 취구를 덧붙인 뒤 숨을 불어넣으면 낮고 굵은 진동이 껍데기 안쪽 나선형 공간을 거대하게 울린다. 소라를 재료로 삼은 관악기, 나각(螺角·Nagak)이다. 손가락으로 짚어 음정을 조절하는 지공이 아예 존재하지 않아, 연주에 쓰이는 음은 사실상 단 하나뿐이다. 음의 높낮이는 소라의 덩치에 비례하여 자연스럽게 좌우되며, 연주자는 오로지 자신의 호흡 길이에 기대어 음량과 지속 시간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 바다의 산물, 가공을 최소화한 자연의 악기
나각의 겉모습에는 바다에서 자라난 자연물이 거의 훼손 없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악기를 제작하는 일정한 표준 크기나 규격이 엄격하게 명시된 적도 없다. 큼지막한 소라에서 살을 빼낸 뒤 꼭지 부분만 살짝 갈아 취구를 다는 방식이 전부다. 웅장한 자연이 빚은 나선형 껍데기를 훌륭한 공명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한국 전통 악기 중 재료의 원형이 가장 강렬하게 드러나는 기물이다. 의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껍데기 겉면에 붉은 천을 씌우고 붉은 털 장식인 홍색상모(紅色象毛)를 길게 늘어뜨리거나, 안쪽에 붉은 옻칠을 더해 시각적 위엄을 뽐낸 유물이 다수 전해진다.
소리를 내는 발음 원리는 긴 놋쇠관을 부는 나발과 몹시 흡사하다. 연주자가 취구에 입술을 바짝 대고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팽팽하게 진동시켜 관 내부로 공기를 밀어 보낸다. 서양 금관악기와 작동 원리가 대단히 유사하지만, 쇠가 무관한 바다 생물의 껍데기를 쓴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1934년 이왕직아악부가 편찬한 '조선악대요'는 나각을 흙으로 구운 악기들과 묶어 토부(土部)에 수록하기도 했다. 1917년 발간된 '조선악개요'에서는 군용 악기로 별도 분류하는 등 시대와 문헌마다 악기를 바라보는 잣대가 조금씩 달랐다.
◇ 천년을 관통한 다채로운 명칭과 불교 의식
독특한 소라 나팔을 한반도에서 불기 시작한 시점은 고려 시대보다 훨씬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나라와 당나라 역사 기록 속 고려악(고구려 음악) 편성에 패(貝)라는 악기가 등장하는 사실을 근거로, 학계는 늦어도 7세기 초 이전에 이미 소라 계통 악기가 널리 쓰였을 확률이 높다고 추정한다. 신라 시대 불교 문화에서도 흔적이 뚜렷하게 발굴된다. '삼국유사' 기록에는 8세기 무렵 신라 사찰에서 나발(螺鉢)을 사용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구절이 남아 있다.
쓰임새와 문헌 기록에 따라 악기를 부르는 이름도 무척 다채롭다. 나(螺), 소라, 고동, 패(貝)를 비롯해 대라(大螺), 해라(海螺), 옥려(玉蠡) 등 수많은 한자어가 전해진다. 특히 사찰의 불교 의례와 연관 지을 때는 법라(法螺)나 범패(梵貝)라는 신성한 명칭을 주로 썼다. 군사 통신을 지휘하던 저음이 절집 안으로 들어가면, 의식 공간의 장엄한 성격을 극대화하는 성스러운 소리로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규모가 웅장한 불교 재(齋) 의식에 나각, 나발, 태평소, 북, 징 등을 두루 갖춘 대규모 취타 악대가 참여한 역사적 사료도 여럿 확인된다.
◇ 웅장한 군사 행렬을 지휘한 ‘조라치’의 숨결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쳐 나각의 활동 무대는 넓게 확장됐다. '고려사' 기록을 살피면 의종 시절 왕의 거대한 행차나 위장 행렬 뒤를 늠름하게 따르던 취라군(吹螺軍)이 소라 악기를 힘차게 불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복잡한 음악적 감상을 돕는 용도라기보다, 거대한 행렬의 움직임과 존재감을 멀리 떨어진 곳까지 우렁차게 알리는 확성기 임무를 띠었다.
조선 시대 군영에는 나각을 전문적으로 부는 군악수인 ‘조라치’ 혹은 ‘취라치’가 맹활약했다. 병조 소속 군인에게 악기 이름이 반영된 직책을 부여한 사실은 나각이 군사 조직 내부에서 얼마나 독보적이고 독립적인 임무를 도맡았는지 짐작하게 돕는다. 취고수 악대는 군사 훈련 시 병력 이동을 지휘하고 궐 밖 왕의 능행차, 관찰사 순행, 외국 사신 접대 현장에서 웅장한 소리를 퍼뜨렸다. 수많은 인원과 필마가 뒤엉켜 움직이는 혼잡한 야외 공간에서, 가볍게 흩어지는 선율 대신 낮고 무겁게 깔리는 나각의 굵직한 지속음은 완벽한 통신 수단이었다.
◇대취타를 호령하는 단 하나의 거대한 둥근 소리
현재 나각의 소리를 가장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무대는 웅장한 행진 음악인 ‘대취타’다. 조선 후기 군영 취고수와 궁중 취타내취가 연주하던 음악적 자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악곡이다. 황색 철릭을 차려입고 남색 띠를 두른 악대가 위풍당당하게 걸음을 내디딜 때, 나각은 금속관 악기인 나발과 한 장단씩 교대로 소리를 토해낸다.
구음(입으로 내는 소리)으로 ‘두-’ 하고 표기되는 나각 소리와, 나발의 금속성 소리가 규칙적인 간격의 호흡을 직조하며 튼튼한 뼈대를 세운다. 위로 태평소가 유일하게 다채로운 가락을 얹으며 날아오르는 구조다. 악대를 통솔하는 집사가 등채를 높이 치켜들고 “명금일하 대취타”라고 호령하면 징을 크게 한 번 친 뒤 합주가 쏟아지고, “허라금”이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웅장했던 모든 소리가 일제히 멎는다. 오랜 군사 지휘 체계를 굳건하게 보존한 귀중한 자산이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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