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조선 제22대 국왕 정조는 개혁군주라는 칭호와 비극적 가족사를 안고 산 인물로 평가받는다. 친필 서신을 살펴보면 널리 알려진 모습보다 다층적인 내면이 엿보인다. 막후에서 신료의 행동을 지휘하는 치밀한 정치가의 얼굴과 혜경궁 홍씨의 건강을 염려하는 다정한 아들의 면모가 뚜렷하게 확인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정조신한(正祖宸翰)', 정조어필'은 수신인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는 군주의 언어 방식을 증명하는 핵심 사료다. 노론 벽파 영수 심환지에게 띄운 '정조신한'에는 정국 운영과 인사권 행사, 정치적 득실 계산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외삼촌 홍낙임에게 보낸 '정조어필' 필치에는 외가 식구들의 대소사와 책 편찬을 향한 개인적 호기심이 두드러진다. 관찬 사료인 실록에서 포착하기 어려운 군왕의 솔직한 감정과 판단 체계가 사적 서신 안에 보존된 셈이다.
◇수신자 거주지 표기…보존 방식 갈린 서한
봉투 장황과 종이 재질은 편지 수신자와 보존 내력을 알려주는 주요 지표다. 홍낙임에게 전달된 서찰은 쌍용 문양 쪽빛 비단으로 성첩됐다. 1806년 혜경궁 홍씨가 자금을 대어 영조, 장헌세자, 정조 3대 어필을 장정한 방식과 유사하다. 겉면에는 수신자 실명 대신 '번리(樊里)', '번촌(樊村)'이라는 거주지가 쓰였다. 심환지 앞 편지 봉투 표기 역시 동네 이름인 '삼청동(三淸洞)', '청동(淸洞)'이었다. 인명 대신 거주지로 수신인을 나타낸 조선 시대 서간 문화의 특징을 방증한다.
심환지에게 닿은 문서는 첩과 10m 넘는 긴 두루마리 형태로 묶여 남았다. 수신자가 문건 수령 후 기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날짜도 다수 적혀 있다. 시기가 다른 여러 서신을 하나로 엮어내면서 임금과 고위 관료 간 정치적 밀담이 방대한 기록물로 재탄생했다.
◇"읽고 찢으라"…심환지 앞세운 치밀한 막후 정치
'정조신한'은 1796년 5월부터 1800년 윤4월 사이 작성된 30건의 기록으로 묶였다. 재위 후반기 4년간 전개된 최고 권력층의 물밑 의사소통 구조를 낱낱이 파악할 수 있다. 수신인 심환지는 청송 심씨 가문 출신으로 규장각제학을 거쳐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한 노론계 거물이다. 군주는 반대파 핵심 인물을 내치기보다 자신의 정치 구상 내부로 끌어들이는 용인술을 구사했다.
날짜 미상의 한 서신에서 정조는 스스로를 '사류(士流)의 두목'이라 칭하며 심환지를 '사류의 전형'으로 치켜세웠다. 신료 집단 최정점에 직접 서겠다는 권력 의지가 짙게 묻어나는 발언이다. 군왕은 심환지에게 발언 내용, 시기, 태도까지 세밀하게 지시했다. 1798년 6월 14일 자 문서에는 현안을 여러 조항으로 나누어 하달한 구체적 지침이 남아 있다. 공식 어명 전달 체계를 우회하여 정국을 통제한 은밀한 통치술이다. 보안 유지를 위해 문건을 즉시 찢어 없애라고 거듭 요구하기도 했다. 어명을 어기고 서찰을 은닉한 신하 덕분에 후대 학자들은 정조 말기 막후 정치의 생생한 증거를 확보하게 됐다.
특정 신하의 입과 글을 빌려 정치적 의제를 제기하는 정략을 철저히 숨겼다. 노론, 소론, 남인 세력 간 균형추를 맞추기 위해 인물별 정치적 성향을 치밀하게 계산했다. 호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에 깃든 자의식처럼 수많은 백성과 관료를 비추는 단 하나의 밝은 달로 군림하고자 했다. 발굴된 두 서신 모음집 모두 만천명월주인옹 인장이 날인돼 있다.
◇외척 앞 다정한 가장…'태양증' 고백한 내면
홍낙임 앞 글귀는 한결 부드럽다. 세손 시절부터 외조부 홍봉한, 외숙부 홍낙임 등 외가 구성원과 서찰을 수시로 교환했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이 문장 곳곳에 절절히 배어 있다. 1800년 4월 20일 자 문서에는 어머니의 손 병환이 호전되어 기뻐하는 감정이 기록됐다. 태종 헌릉 참배 길에 종기 악화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 상태를 살피게 한 일화도 엿보인다. 외가 식구들의 과거 급제, 혼례, 증손녀 출산 소식에 환호하는 평범한 가장의 목소리가 확연하다.
자기 기질을 '태양증(太陽症)'이라 묘사하며 조급하고 괄괄한 성격을 솔직히 털어놓은 고백도 등장한다. 밤잠을 설치며 벽 주위를 서성거렸을 만큼 막중한 국정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국가 중대사부터 서적 편찬, 친인척 대소사까지 모두 직접 검토해야 직성이 풀리는 완벽주의 성향 탓이다.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를 독서로 풀었고 책 기획과 편집 과정에 적극 관여하는 지적 열정을 뽐냈다.
관찬 사료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과 사적 서간을 교차 검증하면 조선 최고 권력자의 입체적 실루엣이 완성된다. 아직 빛을 보지 못한 비밀 문서 연구가 진전될수록 정조 시대 정치사 해석은 더욱 정교하게 분화할 전망이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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