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코리아=정명달 기자]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제사회와 시민의 연대로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확산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그 중심에는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있다.
추 지사는 8일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열린 ‘2026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에서 “우리 목표는 연대”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과거를 추모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피해자의 기억을 오늘의 인권 문제로 확장하고, 국가와 국경을 넘어 시민사회가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미다.
추 지사는 “국가가 제대로 나서지 못한다면 국제적 시민 연대를 통해 계속 외쳐야 한다”며 “오늘 이 자리를 통해 그런 외침을 연대의 목소리로 더 크게 울려 퍼지게 하는 각오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기억’에 머물지 않고 직접 행동…베를린 소녀상 지키기
추 지사의 ‘연대’ 메시지가 단순한 선언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그가 직접 국제 현장을 찾아 목소리를 내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추 지사는 2024년 9월 독일 베를린을 찾아 철거 위기에 놓였던 ‘평화의 소녀상’ 존치를 위해 한국 사회의 여론을 독일 사회에 전달했다.
당시 추 지사는 독일 연방의회 관계자에게 소녀상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인권 문제를 설명했다. 소녀상을 특정 국가 간 갈등의 상징에 가두기보다 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보편적 인권의 상징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취지였다.
추 지사는 당시 독일 측에서 “전시 성폭력 피해자가 다시는 전 지구적으로 생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독일이 앞장서서 알리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들었다며 국제적 연대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베를린 소녀상은 2020년 9월 미테구에 설치된 이후 철거 논란을 겪었다. 2025년 10월 강제 철거됐다가 올해 1월 다시 설치되면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추 지사가 베를린 현장을 직접 찾았던 행보는 이 같은 논쟁 속에서 ‘기억을 지키는 일’이 국경을 넘어 시민사회가 함께해야 할 과제라는 점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 강일출 할머니 흉상에 담긴 ‘기억의 책임’
이번 기념식에서 추 지사의 메시지가 더욱 각별했던 것은 故 강일출 할머니의 흉상 제막식이 함께 열렸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별세한 강일출 할머니는 17세였던 1944년 중국 흑룡강성 일본군‘위안소’로 강제 동원돼 피해를 겪었다.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피해 사실을 알리고 전쟁과 여성인권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이어왔다.
국내외 수요시위와 아시아연대회의 등에 참여했던 강 할머니에게 피해 경험은 개인의 고통에 머무르지 않았다. 전쟁이 여성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그리고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세상에 알리는 증언의 시간이 됐다.
특히 강 할머니가 남긴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은 영화 ‘귀향’ 제작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추 지사는 이날 흉상 앞에서 “할머니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추모의 의미를 넘어 기억을 이어갈 책임을 강조한 발언이다. 피해자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그들의 목소리가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다음 세대와 국제사회에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 ‘기억을 잇다’에서 ‘세대를 잇다’로
경기도가 올해 기림의 날 행사의 주제를 ‘기억을 잇다’로 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행사는 피해자들의 삶과 용기를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기억을 평화와 인권의 가치로 이어가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올해 처음 마련된 ‘평화·인권·기억의 메시지 공모전’에는 시·그림·창작곡 분야에서 모두 150점의 작품이 접수됐다. 중학생부터 대학생, 일반인까지 참여했고 경기뿐 아니라 서울과 경남, 경북 등 전국에서 작품이 출품됐다.
대상에는 음악 작품 ‘바람’이 선정됐다.
행사장에서 추 지사는 공모전 수상자들과 ‘기억을 잇는 대화’도 나눴다.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 작품을 준비하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등을 직접 묻고 피해자의 역사를 오늘의 세대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함께 이야기했다.
이는 기념식의 주인공을 행정기관이나 정치인이 아닌 미래세대와 시민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 “국가가 못하면 시민이”…추미애가 말하는 연대의 정치
추 지사가 이날 거듭 강조한 ‘연대’는 국가의 역할을 부정하는 의미라기보다 국가의 노력과 시민사회의 움직임을 함께 연결해야 한다는 메시지에 가깝다.
그는 나눔의집을 찾은 소회에 대해 “나라가 힘들 때 가장 먼저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어린 소녀들이 이 보금자리에서 늦게라도 위안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이 마지막까지 세상에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고 국가가 그 목소리를 알아주기를 바랐을 것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추 지사의 메시지는 결국 ‘기억의 정치’를 ‘행동하는 연대’로 발전시키자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과거를 기억하고 피해자를 추모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현재의 평화와 인권 문제로 연결하고, 국제사회와 시민들이 함께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 경기도, 기억사업을 평화·인권의 가치로 확장
경기도는 2016년부터 매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을 개최해 왔다.
올해 역시 기념식과 함께 유공자 표창, 공모전, 세대 간 대화, 흉상 제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기념사업 활성화에 기여한 김향미 수원평화나비 공동대표에게 경기도지사 표창을 수여하기도 했다.
김 공동대표는 12년 넘게 수원수요문화제를 이끌며 지역사회에서 피해자의 역사와 평화·인권의 가치를 알리는 활동을 이어왔다.
경기도는 기림의 날인 8월 14일을 전후해 도내 각 시·군에서도 기념식과 헌화, 전시, 공연, 평화포럼, 시민참여 행사 등이 이어지도록 지원하고 있다.
수원과 화성, 안산, 안양, 시흥, 파주, 김포, 광명, 오산, 이천, 포천 등에서도 다양한 기림 행사가 진행된다.
■ “잊지 않겠다”는 약속, 이제는 ‘함께 외치는 힘’으로
추미애 지사가 이번 기념식에서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피해자의 삶을 기억하는 것은 출발점이며, 그 기억을 평화와 인권의 가치로 이어가는 것이 다음 단계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경을 넘어선 시민의 연대가 중요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일출 할머니의 흉상 앞에서 “할머니를 잊지 않겠다”고 밝힌 추 지사는 곧바로 국제적 시민 연대를 강조했다.
개인의 기억을 공동체의 기억으로, 공동체의 기억을 국제사회의 연대로 확장하는 것.
추미애 지사가 말하는 ‘연대’는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평화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오는 14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앞두고 경기도 곳곳에서 이어지는 추모와 기억의 행사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닌 평화와 인권을 위한 시민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