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정·불륜 너머 납치·살인·이중생활…부부 관계에 장르물 결합
"극단 상황서 인간 본성 조명…보편적 관계 중요성 재확인할 때 공감"
(서울=연합뉴스) 조윤희 기자 = 갈등의 골이 깊어진 부부. 남편은 술김에 대리운전 기사에게 "제 아내를 좀 없애주세요"라는 말을 던진다. 이 한마디를 곧이곧대로 들은 기사는 범행을 실행하고, 그의 아내를 납치한 뒤 10억 원을 요구한다.
지난달 처음 방송한 KBS 2TV 드라마 '결혼의 완성'이 선보인 강렬한 서두다.
위기의 부부가 등장하는 과거 드라마가 주로 말다툼이나 도덕적 과오를 둘러싼 정서적 갈등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납치와 생존이 걸린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는다.
이처럼 최근 방송가에서는 부부 관계라는 낯익은 소재를 납치·살인·이중생활 등 강렬한 스릴러·액션 장르와 결합해 한층 독하고 색다르게 풀어내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31일 공개된 쿠팡플레이 '지금 불륜이 문제가 아닙니다' 역시 단순한 치정극을 넘어 목숨이 오가는 스릴러적 서사 속에서 부부의 균열과 생존을 향한 몸부림을 그린다.
웹툰 원작의 MBC '유부녀 킬러'는 악명 높은 킬러 아내와 그 킬러의 뒤를 추적하는 기자 남편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내세웠다. 가정이라는 가장 친밀한 공간과 비밀이 공존하는 이중생활을 통해 부부 관계에 색다른 긴장감을 부여한다.
이외에도 오는 19일 첫 방송을 앞둔 KBS 드라마 '그래 이혼하자'는 이혼을 앞둔 웨딩드레스 숍 대표 부부의 현실적인 갈등을 다루며 위태로운 부부 관계의 면면을 조명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기존 가족극 소재와 최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등을 중심으로 흥행한 장르물 트렌드가 결합하면서 나타난 외연 확장으로 해석한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드라마의 주요 시청층인 중장년층에게 부부 관계는 가장 큰 관심사인데, 기존의 치정 요소만 반복되면 식상함을 줄 수 있다"며 "주 시청층이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부부 소재에 OTT 등에서 인기를 끄는 장르물의 외피를 결합해 신선함을 선사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과거 부부 드라마가 도덕적 과오나 정서적 상처에 따른 '신파'와 감정적 폭발에 집중했다면, 최근 작품들은 극단적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과 생존을 향한 갈망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현대극일수록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평면적이지 않고 구조적·복합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부부 관계를 단편적으로 접근하기보다 극단적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의외의 면모와 인간 본성을 보여줌으로써 대중이 삶과 인간관계를 다각도로 이해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물리적 액션과 추적 등 극적 긴장감을 더한 서사는 시청자들에게 강한 몰입감과 카타르시스를 안기기도 한다.
하 평론가는 "막연한 히어로가 등장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애환을 겪는 부부 캐릭터가 극한의 상황에서 활약을 펼칠 때 시청자들은 훨씬 더 크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며 "일상에서 벗어난 대리만족과 장르적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김 평론가 역시 "장르물의 복합적인 플롯과 반전은 몰입도를 높이고 극적 흥미를 극대화한다"며 "여성 킬러 같은 주도적 캐릭터의 등장 또한 수동적 감상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상황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통한 대리 체험의 효과를 준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자극적인 장르적 변주 속에서도 부부 관계에 대한 진정성 있는 메시지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지속 가능한 흥행을 담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평론가는 "결국 장르물의 여러 상황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부부 관계의 순애보나 지고지순함, 그리고 결혼이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라는 점"이라며 "단순히 일탈이나 자극적인 부정적 상황에 그치지 않고 보편적 관계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귀결로 이어질 때 시청자들의 깊은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yunn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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