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드] 올해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가장 큰 수준으로 치솟았다. 한때 1,600원선을 위협하던 환율이 불과 한 달 새 1,400원선 붕괴를 눈앞에 두면서,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환 손실과 수익성 악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장에선 심리적 지지선인 1,400원이 무너질 경우 1,300원대 안착 가능성까지 거론되지만, 외국인과 해외주식 투자자(서학개미)의 자금 이동이 반전 변수로 꼽힌다.
9일 서울외환시장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 말까지 원/달러 환율의 평균 월간 변동폭(오후 3시 30분 종가 기준·전월 말 대비)은 47.0원으로 집계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환율이 요동쳤던 2009년(61.2원) 이후 최대치다.
월간 변동폭이 평균 40원을 넘었던 시기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72.2원)·1998년(97.6원), 금융위기 직전과 직후인 2008년(68.3원)·2009년(61.2원)뿐이다. 올해 환율 장세가 역사적으로도 ‘위기 국면급’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는 의미다.
월별로 보면 환율은 중동 전쟁 발발 직후인 3월에만 90.4원 급등했다가, 4월에는 미·이란 협상 기대감에 46.8원 되돌림 하락을 기록했다. 이후 5∼6월에는 외국인 주식 대규모 순매도와 중동 불안 지속으로 각각 24.6원, 41.5원씩 다시 뛰었고, 7월 들어서는 125.4원이 한꺼번에 빠지며 급락세로 돌아섰다.
일일 변동성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수준이다. 올해 들어 지난 7일까지 원/달러 환율의 일일 변동폭(오후 3시 30분 기준·전 거래일 대비)은 평균 8.2원으로, 2009년(9.4원) 이후 최고치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평균 5.0원)와 비교해도 크게 확대됐다.
최근 환율 하락세는 속도 면에서도 이례적이다. 환율은 지난달 2일 1,555.8원으로 연중 고점을 찍은 뒤 지난 7일까지 25거래일 동안 139.7원 떨어졌다. 하루 평균 5.6원씩 하락한 셈으로, 미·중 무역갈등 등으로 변동성이 컸던 지난해 4월 9일(1,472.0원)부터 6월 30일(1,347.1원)까지의 일평균 하락 폭 2.5원의 두 배가 넘는다.
이 같은 급락의 배경에는 수급 요인과 정책 변수, 대외 여건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우선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 자금을 비롯한 수출기업의 달러 매도세가 한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원화 매수 쏠림이 심화됐다. 여기에 그간 원화 약세를 부추겼던 엔화 약세·달러 강세 구도가 완화되면서 환율 하락에 가속도가 붙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미·일 외환당국의 ‘이례적 공조’였다. 미국과 일본은 지난달 31일 엔화 급락에 대응해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28년 만에 공동으로 엔화 매입에 나섰다고 밝혔다. 164엔에 육박하던 엔/달러 환율은 한때 155엔대로 급락했고, 8일 기준 157엔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원화도 엔화와 함께 동아시아 통화 강세 흐름에 동조하며 상승(원화 가치 상승·환율 하락) 압력을 받았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원화가 과도한 변동성을 보여왔다”고 언급한 점도 원화 강세 기대를 키웠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 전망이 약해지며 달러가 약세로 돌아선 점 역시 원/달러 환율 하락에 힘을 보탰다. 지난 7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 고용지표가 시장 예상보다 부진하자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고,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장중 99.399까지 밀렸다.
이 같은 흐름 속에 환율은 10개월 만의 최저 수준까지 내려왔다. 8일 오전 6시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09.5원으로 한 주 거래를 마쳤다. 장중 저가 기준으로는 1,407.3원까지 떨어져 지난해 10월 2일(1,399.5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달 내내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 초반으로 빠르게 밀려나며 원화 강세 기조를 강화했다.
환율 급락은 수입물가 안정과 외환시장 안정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면서 기업 경영에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수출기업과 수입기업 모두에서 환 리스크 관리 실패에 따른 손실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환율 추가 상승을 예상해 달러 매도 시점을 뒤로 미뤘던 수출기업들이 일부 매도 타이밍을 놓쳤을 수 있다”며 “수입기업들도 고환율 추가 상승을 예상해 선물환을 매수했다면 환 손실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수출기업의 수익성 악화 우려도 커진다.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은 “환율이 단기간에 급락하면서 중소·중견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수출 채산성 악화를 겪을 수 있다”며 “환율 급락에 따른 경영계획 수립의 어려움 등이 실물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향후 환율 향방을 둘러싸고 시장의 시각은 엇갈린다. 우선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1,400원이 무너질 경우, 대외 여건이 받쳐준다면 1,300원대 안착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민혁 이코노미스트는 “1,400원이 1차 지지선이 될 것으로 보이며, 미 연준의 금리 동결, 국제유가 안정 등이 뒷받침된다면 1,300원대 안착도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미·일 외환당국의 공조 기조가 유지되고, 미국의 긴축 강도가 약해지면서 달러 약세가 이어질 경우 원화 강세가 더 진전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최근 환율 하락이 수급 왜곡에 따른 ‘과도한 조정’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SK하이닉스 ADR 상장 자금 등 특정 이벤트에 따른 달러 매도 쏠림이 일시적으로 환율을 과하게 끌어내렸다는 주장이다.
이낙원 NH농협은행 FX파생전문위원은 “SK하이닉스발 달러 수급 쏠림에 환율이 일시적으로 과도하게 하락한 감이 있다”며 “8월 중에 환율이 1,300원대에 진입하더라도 수급이 균형을 맞추면서 기술적으로 반등해 원화 약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 흐름과 투자자 자금 이동도 변수다. 주식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외국인과 서학개미 자금이 다시 해외로 빠져나갈 경우, 달러 매수 수요가 되살아나 환율 반등을 자극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한 외환시장 전문가는 “국내 증시 하락에 투자자들이 다시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달러 매수 수요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며 “1,300원대에 안착할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연내 환율 저점은 1,380원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현재 환율 수준보다 ‘변동성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급등과 급락이 반복되는 장세가 이어질 경우, 기업들의 환 헤지 비용과 경영 불확실성이 커져 실물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어서다. 원화가 1,300원대 진입을 눈앞에 둔 가운데, 미·일 외환당국의 공조 지속 여부와 연준의 통화정책 방향, 국내외 주식시장 자금 흐름이 향후 환율 경로를 가를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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