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김연숙 특파원 = 미국 뉴욕 맨해튼 어퍼웨스트사이드의 링컨센터는 여름마다 떠들썩한 '광장'으로 바뀐다.
오페라와 발레, 클래식 음악의 성지로 여겨지던 공간에 야외무대가 들어서고, DJ 비트에 맞춰 사람들이 춤을 춘다. 행인들도 걸음을 멈춰 몸을 흔들거나 휴대전화로 무대를 찍고,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은 전문 무용수와 음악가의 수업을 받기도 한다.
드레스나 턱시도 차림의 관객이 탱크톱, 반바지 차림의 이들과 한 공간에 자연스럽게 섞인다.
한여름 도심 속 '도시를 위한 여름'(Summer for the City)의 풍경이다.
2022년 시작돼 올해로 5회를 맞은 이 행사는 지난 6월 10일부터 8월 8일까지 링컨센터 16에이커(약 6만5천㎡) 캠퍼스 곳곳에서 펼쳐졌다.
수백건의 공연과 행사가 모두 무료이거나, 최저 5달러부터 관객이 원하는 가격을 직접 정하는 방식(Choose-What-You-Pay)으로 진행됐다.
클래식부터 현대무용, 세계 음악, 힙합, 재즈, 가족 프로그램, 코미디, 사교댄스까지 장르의 경계도 허물었다.
한국 예술가들의 무대도 다채로웠다. 광장에선 K팝에 맞춰 무선 헤드폰을 끼고 춤추는 '사일런트 디스코'가 열렸고, 가야금 연주자 김도연은 콰르텟과 함께 재즈를 선보였다.
안무가 허성임은 기후변화를 다룬 무용 작품을, 지휘자 김은선은 링컨센터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드뷔시와 풀랑크의 작품을 연주했다.
여기에 현대무용가 아크람 칸의 무용단과 내몽골 밴드 '한가이'(Hanggai)의 록 공연 등 서로 다른 예술과 사람들이 그렇게 마주쳤다.
이 '여름 실험'은 코로나19 팬데믹에서부터 시작됐다.
링컨센터는 2021년 실내 공연장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야외무대를 만들었고, 이듬해에는 캠퍼스 전체를 개방하고 기존의 여러 프로그램을 하나로 묶는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당시 링컨센터가 내세운 것은 단순히 공연 재개에 그치지 않고, 팬데믹으로 단절된 도시를 다시 연결하는 것이었다.
샨타 테이크 최고예술책임자(CAO)는 당시 인터뷰에서 "모차르트 관객이든 힙합 관객이든 모두 자신이 사는 도시에서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뉴요커"라며 "장르를 기준으로 커뮤니티를 나눠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링컨센터에 다시 찾아오길 바란다고 했다.
실제로 첫해 30만명 이상이 링컨센터를 찾았다. 이 중 4분의 3 이상은 링컨센터를 처음 방문한 이들이었다. 이후 방문객은 계속 늘어 지난해까지 누적 160만명을 넘어섰다.
숫자보다 인상적인 것은 만남의 방식이다.
실내에서 정교한 클래식을 듣고 나왔더니, 광장에선 수백명이 소울과 라틴 비트에 맞춰 야외 댄스파티를 즐기고 있는 식이다.
마리코 실버 최고경영자(CEO)가 링컨센터를 "세계 문화와 지역 커뮤니티가 만나는 공공 광장"으로 부르며 "예술이 모두에게 열려있음을 계속해서 증명하겠다"고 말한 이유다.
뉴욕에서 문화생활은 취향의 문제인 동시에 비용의 문제이기도 하다. 문화생활의 기회는 널려있다지만, 고물가와 빈부격차로도 악명높은 도시에서 선뜻 지갑을 열기는 쉽지 않다.
이곳에선 그 계산을 잠시 미뤄도 좋다.
관객과 공간의 경계가 흐릿해진 자리에서, 클래식을 몰라도 들어갈 수 있고 현대무용이 처음이어도 괜찮다.
여름이 끝나면 광장의 춤도, 야외무대도 사라진다. 하지만 한번 발을 들인 이들에게는 조금 다른 곳으로 남을 테다.
비싼 표를 사야 하는 격식의 장소에서, 언제든 들러 새로운 음악을 마주할 수 있는 도시의 광장이 된 것이다.
그중 누군가는 다음 계절에도 다시 링컨센터 광장을 찾을 것이다. 무엇을 볼지는 그때 정하면 된다.
noma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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