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는 수많은 징크스와 비하인드 스토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 역사상 이토록 고집스럽고 강력하게 유지되어 온 현실 로맨스 법칙이 또 있을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스틸컷. /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 제공
바로 마블과 소니 픽처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 '스파이더맨'에 대한 이야기다. 스크린 속 피터 파커와 그의 상대역 배우들이 매번 실제 연인으로 발전하는 기이하고도 낭만적인 역사가 세 번 연속으로 반복됐다. 제작진의 간곡한 당부와 연애 금지령도 피터 파커와 상대 여주인공(메리 제인 왓슨(MJ)/그웬 스테이시) 사이의 강력한 끌림을 막아서지는 못했다.
프로듀서의 연애 금지령과 스파이더맨의 법칙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오랜 기간 총괄해 온 프로듀서이자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 영화 그룹 전 회장 에이미 파스칼은 캐스팅 과정마다 배우들에게 신신당부하는 자신만의 철칙이 있었다. 바로 '주연 배우들끼리 절대 사귀지 말 것'이라는 철칙이었다.
최근 BBC뉴스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영상에 따르면 파스칼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피터 파커와 상대역에 각각 캐스팅된 배우들을 따로 불러 조용히 조언했다고 밝혔다. "절대 연인으로 발전하지 마라" "제발 그러지 않도록 노력해라" "관계가 복잡해질 뿐이다" 등의 당부를 남겼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 특성상 여러 편의 후속작을 장기간 촬영해야 하는데, 두 사람이 교제하다 헤어질 경우 촬영 현장의 어색한 기류가 연기 케미스트리를 해치고 작품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파스칼의 바람은 매번 무산됐다. 그는 "MJ와 피터는 언제나 사랑에 빠지게 마련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며 씁쓸하면서도 납득할 수밖에 없는 반응을 보였다. 토비 맥과이어부터 앤드루 가필드 그리고 톰 홀랜드에 이르기까지 실사화 스파이더맨을 맡은 모든 남주인공이 상대역 배우와 실제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스파이더맨 1' 스틸컷. / 콜럼비아트라이스타 제공
1세대 비밀 연애와 프로페셔널리즘의 시작, '토비 맥과이어와 커스틴 던스트'
이야기의 시작은 2000년대 초반, 샘 레이미 감독이 연출한 '스파이더맨' 1편 2002년 개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대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 역의 토비 맥과이어와 메리 제인 왓슨 역의 커스틴 던스트가 그 주인공이다.
2001년 영화 크랭크인과 함께 20대 초반이었던 두 사람은 촬영장 안팎에서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기 시작했다. 영화사의 전설적인 명장면으로 남아있는 빗속의 뒤집힌 키스신을 촬영할 무렵, 두 사람 사이에는 이미 단순한 동료 이상의 특별한 감정이 피어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언론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교제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들의 첫사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002년 영화 1편이 개봉할 무렵, 두 사람은 약 1년간의 연애 끝에 연인 관계를 정리하고 동료 관계로 돌아갔다. 이 소식을 뒤늦게 접한 샘 레이미 감독은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였다. 후속작인 '스파이더맨 2'와 '스파이더맨 3'을 촬영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 연인이 된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함이 흐르면 연기 합이 깨질 것이라 우려했기 때문이다.
샘 레이미 감독은 훗날 인터뷰에서 두 사람이 1편 촬영 때 사귀다가 2편을 찍기 전에 헤어졌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후속작에서 1편만큼의 케미스트리가 나오지 않을까 봐 심각하게 걱정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감독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두 배우는 극도로 프로페셔널한 태도로 임했고, 결별 후에도 변함없는 연기 호흡을 선보이며 '스파이더맨 3' 2007년까지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완주했다.
'스파이더맨' 토비 맥과이어와 커스틴 던스트. / 콜럼비아트라이스타 제공
2세대 첫눈에 반한 케미스트리와 아름다운 이별, '앤드루 가필드와 에마 스톤'
첫 번째 스파이더맨 커플이 마침표를 찍은 지 수년 뒤, 두 번째 '스파이더맨' 시리즈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2)에서 또 한 번 운명 같은 러브스토리가 탄생했다. 피터 파커 역의 앤드루 가필드와 그의 첫사랑 그웬 스테이시 역의 에마 스톤이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오디션 현장에서부터 영화 같았다. 앤드루 가필드는 훗날 인터뷰에서 에마 스톤을 처음 만났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회상했다. 그는 에마가 오디션장에 들어온 순간, 마치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급류에 뛰어드는 기분이었고 구명줄을 잡고 싶지도 않았다, 촬영 내내 매 순간이 자극적이고 흥미진진했다며 첫눈에 반했던 당시의 감정을 로맨틱하게 털어놓았다.
2011년부터 공식 교제를 시작한 가필드와 스톤은 약 4년 동안 할리우드에서 가장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는 대표 커플로 자리 잡았다. 공개 데이트에서도 서로를 향한 애정 어린 눈빛과 귀여운 장난기를 숨기지 않았고, 언론과 팬들 역시 이 사랑스러운 커플에 열광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엠마 스톤과 앤드류 가필드. /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 제공
그러나 이들의 사랑 역시 장기화된 촬영 일정과 바쁜 스케줄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앤드루 가필드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 2016 촬영을 위해 대만에 장기 체류하고, 에마 스톤 역시 각종 영화 촬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결국 교제 4년 만인 2015년 가을, 두 사람은 서로의 앞날을 응원하며 조용히 이별을 선택했다.
비록 연인 관계는 끝났지만, 두 사람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귀감이 되는 아름다운 이별의 예시로 남았다. 결별 후에도 서로를 향한 존경과 애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했으며, 에마 스톤이 영화 라라랜드로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때 앤드루 가필드가 기립박수를 치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모습은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겼다.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엠마 스톤과 앤드류 가필드. /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 제공
3세대 5년 우정에서 평생의 동반자로, 톰 홀랜드와 젠데이아 콜먼
현재 영화 팬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이전 커플들의 결별 징크스를 깨부수고 있는 최강의 조합이 등장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스파이더맨' 시리즈 주연을 맡은 톰 홀랜드와 젠데이아 콜먼다.
두 사람은 2016년 '스파이더맨: 홈커밍' 캐스팅 오디션 및 케미스트리 리딩 현장에서 처음 만났다. 이후 영화 홍보와 촬영을 병행하며 급격히 친해졌고, 톰 홀랜드는 인터뷰마다 젠데이아 콜먼를 내 가장 친한 친구라고 칭했다. 2017년 TV 프로그램 립싱크 배틀에서 선보인 레전드 무대와 인스타그램에서의 유쾌한 티키타카는 팬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열애설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매체 피플지가 두 사람의 비밀 데이트를 보도하자, 젠데이아 콜먼와 톰 홀랜드는 트위터를 통해 우리가 함께 휴가를 갔다고, 난 몇 년 동안 휴가를 가본 적이 없는데, 프레스 투어도 휴가로 치는 거야라며 위트 있게 열애설을 부인했다. 실제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인물들과 열애설이 나거나 교제를 하며 진정한 남사친 여사친 관계를 유지했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젠 데이아와 톰 홀랜드. /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하지만 5년간 축적된 깊은 신뢰와 우정은 결국 사랑으로 열매를 맺었다. 결정적인 순간은 2021년 7월에 찾아왔다. 로스앤젤레스의 한 도로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톰 홀랜드의 차 안에서 두 사람이 달콤하게 키스를 나누는 파파라치 사진이 페이지 식스에 의해 독점 보도된 것이다.
더 이상 연애를 숨길 수 없게 되자, 톰 홀랜드는 2021년 9월 1일 젠데이아 콜먼의 25번째 생일을 맞아 분장실 거울 셀카와 함께 "나의 MJ, 가장 행복한 생일 보내, 깨면 전화해 줘"라는 문장을 남기며 공식 연인임을 알렸다. 젠데이아 콜먼 역시 지금 전화할게라는 댓글로 응답하며 전 세계 팬들을 열광시켰다.
톰 홀랜드와 젠 데이아. / 톰 홀랜드 인스타그램
이후 두 사람은 사생활이 강제로 파파라치에 의해 파헤쳐진 것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톰 홀랜드는 GQ 인터뷰에서 사생활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 슬펐다, 둘만의 사적인 순간을 강탈당한 기분이었다고 말했고, 젠데이아 콜먼 역시 서로를 너무 아끼기 때문에 연애만큼은 사적인 영역으로 남겨두고 싶었다며 성숙한 태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공식 커플이 된 이후 서로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고 있다. 젠데이아 콜먼가 영화 '듄'이나 '챌린저스'로 주목받을 때마다 톰 홀랜드는 SNS에 그의 사진을 올리며 자부심을 드러냈고, 톰 홀랜드가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에 오를 때는 젠데이아 콜먼가 직접 공연장을 찾아 힘을 실어주었다. 두 사람은 이전 스파이더맨 커플들이 겪었던 단명 잔혹사를 넘어 굳건하고 건강한 장기 교제를 이어가는 중이다.
왜 스파이더맨은 운명적 로맨스가 되는걸까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틸. 젠데이아 콜먼과 톰 홀랜드. /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그렇다면 왜 유독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는 이토록 높은 확률로 실제 커플이 탄생하는 것일까.
영화 전문가들은 극 중 피터 파커와 상대역이 가지는 특유의 서사 구조에 주목한다. 정체를 숨긴 고독한 영웅과 그의 비밀을 공유하며 깊은 감정적 유대를 나누는 캐릭터 특성상, 두 배우는 촬영장에서 극도의 몰입과 밀도 높은 감정 연기를 주고받아야 한다. 여기에 수개월간 진행되는 혹독한 글로벌 프레스 투어와 어린 나이에 갑작스럽게 맞이하게 되는 세계적 관심이라는 중압감이 두 사람을 서로에게 더욱 의지하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분석이다.
에이미 파스칼 프로듀서의 사귀지 말라는 간곡한 경고는 결과적으로 무색해졌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실제 로맨스는 영화 속 피터 파커와 상대 여주인공의 케미스트리를 극대화하며 영화의 세계적인 흥행에 기여한 일등 공신이 됐다.
비밀 연애 후 프로답게 작품을 마친 토비 맥과이어와 커스틴 던스트, 결별 후에도 최고의 친구로 남은 앤드루 가필드와 에마 스톤, 우정을 넘어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완벽한 짝이 된 톰 홀랜드와 젠데이아 콜먼까지.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은 스크린을 넘어 실제 배우들의 마음까지 단단히 묶어버렸다.
'꽁냥꽁냥' 젠데이아 콜먼과 톰 홀랜드. / 영화 스파이더맨 공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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