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보다 귀해진 정제능력…K정유 '수출 기회'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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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보다 귀해진 정제능력…K정유 '수출 기회' 커진다

한스경제 2026-08-08 18: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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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정유업계. 연합뉴스
국내 정유업계. 연합뉴스

| 서울=한스경제 고예인 기자 | 중동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글로벌 정유시설 가동 차질이 이어지면서 국내 정유업계에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과거 정유업의 경쟁력이 값싼 원유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었다면 최근에는 확보한 원유를 휘발유·경유·항공유 등으로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수익성을 좌우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어서다.

8일 정유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석유시장은 원유보다 석유제품의 공급 부족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중동 전쟁과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으로 글로벌 정제능력이 크게 감소하면서 원유 공급 상황이 일부 개선돼도 경유와 휘발유 등 제품 가격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글로벌 정제능력 부족으로 경유와 휘발유 가격이 원유 가격보다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유 가격과 원유 가격 간 차이인 정제마진은 배럴당 약 70달러 수준까지 벌어져 과거 평균인 약 20달러를 크게 웃돌고 있다.

정유업계 입장에서는 원유 가격 자체보다 이를 가공해 만들어내는 석유제품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원유는 있는데 경유가 없다…'정제 병목' 현실화

글로벌 정제시장에 균열을 만든 가장 큰 요인은 주요 정유시설의 동시다발적인 가동 차질이다.

중동에서는 전쟁 과정에서 일부 대형 정유 및 에너지 인프라가 영향을 받았고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정유시설을 겨냥한 드론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의 정유능력 가운데 상당 부분이 영향을 받으면서 휘발유와 경유 생산량도 감소했다. 러시아는 결국 자국 내 연료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경유 등 일부 석유제품 수출 제한에 나섰다.

러시아의 지난달 휘발유 생산량은 계절적 평균 소비량의 약 65% 수준까지 떨어졌고 경유 생산도 내수 수요를 충족하는 수준에 머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벨라루스는 물론 인도·카자흐스탄 등으로부터 일부 연료를 들여오는 상황까지 맞았다.

글로벌 공급 측면에서는 러시아산 정제유 수출 감소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S&P글로벌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달 경유 수출을 전면 제한했으며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러시아 정제시설의 최대 60%가 가동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거론됐다. 유럽을 비롯한 주요 시장의 경유 정제마진은 이에 따라 크게 상승했다.

중동에서도 정제시설과 물류망 차질이 겹치고 있다. 러시아와 중동이라는 세계 주요 석유제품 공급축이 동시에 흔들리면서 원유가 있어도 이를 실제 소비 가능한 연료로 바꾸는 '정제 병목' 현상이 심화된 것이다.

이는 최근 원유 가격과 석유제품 가격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배경이기도 하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일부 완화되면서 원유 가격 상승 압력은 낮아졌지만 글로벌 경유·휘발유 시장은 여전히 공급 부족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정제마진 뛰자 美 정유사 실적도 '껑충'

정제능력 부족은 글로벌 정유사들의 실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최대 정유업체 가운데 하나인 마라톤 페트롤리엄은 올해 2분기 순이익이 51억40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4배 이상 증가했다.

정제마진이 배럴당 36.33달러까지 뛰면서 실적을 끌어올렸다. 회사는 정유시설 가동률을 94%까지 높여 하루 약 290만배럴을 처리했다.

미국 전체 정유시설의 가동률도 97%를 웃도는 수준까지 올라온 것으로 전해진다.

정유사들이 사실상 설비를 최대 수준으로 가동하고 있음에도 글로벌 경유와 항공유 재고가 빠르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은 현재 공급난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의미다. 글로벌 정제능력 감소분이 하루 약 500만배럴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제설비 부족이 구조화되면서 이미 설비를 갖춘 국가와 기업들의 가치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호주다.

호주 연방정부와 서호주 정부는 지난달 28일 카라사 지역에 대형 신규 정유공장을 건설하기 위한 400만호주달러 규모의 예비타당성 조사에 착수했다.

사업이 현실화되면 호주에 1960년대 이후 처음 들어서는 신규 대형 정유공장이 된다. 호주에는 현재 브리즈번과 질롱 등 단 두 곳의 정유공장만 남아 있다.

한때 경쟁력이 떨어진 산업으로 평가받던 정제설비가 최근 글로벌 공급난을 거치면서 다시 전략적 자산으로 평가받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5위 K정유, 공급 공백 메울까

글로벌 정제 병목이 장기화할수록 국내 정유업계에도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을 중심으로 하루 300만배럴이 넘는 원유 정제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 5위권 규모다.

국내 정유업계는 대규모 단일 정유시설과 고도화 설비를 기반으로 원유에서 경유·휘발유·항공유 등 고부가 석유제품을 대량 생산해 해외로 수출하는 구조를 구축해왔다.

특히 한국은 중동이나 러시아와 비교해 직접적인 전쟁 위험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러시아산 경유가 시장에서 빠지고 중국까지 석유제품 수출을 제한하면서 아시아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대규모 물량을 공급할 수 있는 한국 정유사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올해 들어 5월까지 국내 정유업계의 석유제품 수출량은 1억8801만배럴에 달했다. 이 가운데 경유가 7636만배럴로 전체의 40.6%를 차지했다.

향후 관건은 높은 정제마진이 얼마나 오래 유지되느냐다.

중동과 러시아에서 손상된 정유시설을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데다 글로벌 정제설비에 대한 신규 투자가 장기간 위축됐던 만큼 공급 능력이 단기간에 정상화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원유 확보 경쟁에 가려졌던 '정제능력'이 다시 희소 자산으로 떠오르면서 국내 정유사들이 글로벌 석유제품 공급 공백을 얼마나 흡수할지가 하반기 실적을 가를 주요 변수로 부상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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