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할 수 없는 영역을 주제로 글을 쓰는 건 언제나 조심스럽다. 직접 관찰이 어려워 말과 현상, 특정 사건으로 맥락을 파악해야 할 땐 더욱 그렇다. 오늘날의 학교, 교실이 그러한 소재 중 하나다. 내가 졸업한 교실의 모습과 오늘날 교실의 모습은 분명히 다르다. 곳곳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더 자주 들려온다. 교실은 회복의 공간에서 회복이 어려운 갈등의 공간으로 변해가는 듯했다.
그러나 책 <밑줄 긋지 못한 문장들>은 교실이 여전히 회복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이 책을 쓴 조성현 작가는 중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는 교사다. 서른 명의 학생이 형성하는 하나의 공공영역, 교실에서 '다정한 교사'를 자청한다. 그의 말과 글에는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일상을 있는 힘껏 아끼고 존중하며, 교실의 방향성을 고뇌하는 흔적이 가득하다.
교실은 관계의 맷집을 키우는 공간이다. 높은 비율로 외동이거나 형제가 적은 요즘 아이들에게 교실은 "생애 처음으로 주인공 자리에서 내려와 30분의 1이 되어보는 공간"이다. 작가는 어른들이 만들어준 무균실이 아닌, 실수와 부끄러움, 갈등과 화해를 자연스럽게 겪을 권리를 실현하는 공간으로 교실을 강조한다.
성장의 속도는 모두가 다르다. 그래서 누군가는 지켜보고, 기다려줘야 한다. 서툴지만 저마다의 속도로 뻗어가는 '생존 본능'이라는 가지, 이것을 섣불리 꺾었다간 울창한 숲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학교라는 공간은 태생적으로 아이들에게 당장의 쓸모를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교실 뒷자리에서 그려지는 졸라맨, 거울 속 눈썹의 미세한 각도, 어른들 눈에는 한없이 실없이 보이는 장난 하나하나가 아이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지를 뻗어가는 보이지 않는 성장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그 '성장의 기회'마저 친절하게 없애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봐 상장을 없애고, 위화감을 이유로 소풍과 수학여행을 생략한다. 질투심이나 낯선 곳에서의 긴장감 같은 울퉁불퉁한 감정을 어른들이 앞장서서 치워버리는 것이다."
타인과 섞이며 다름을 존중하고, 화가 났을 때 밀려오는 충동을 자제하고, 감정을 멈추어 다스리고, 갈등에 부딪혀 풀어보는 공간. 관계에 찔린 상처를 털어내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성장의 공간. 시험에 나오지 않는, 교과서가 미처 담지 못해 밑줄 그을 수 없는 문장을 교실 속 아이들 스스로 아이들의 사회에 써 내려갈 수 있다.
교실에서 다툼이 생기면 복수의 아이들이 CCTV를 찾는다고 한다. 인권 침해로 설치가 금지된 CCTV를 자연스럽게 찾는 건, 불신의 상황에 있는 아이들에게 그보다 "가장 공정한 심판관"이 없기 때문이다. 완벽한 증거로 절차를 맺으려는 처신이다. 이때 작가는 "가장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교실의 평화를 지키는" 방법을 택한다.
"생활기록부에 '가해 학생'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 그것이 서류상의 정의일 수는 있다. 하지만 차가운 판결문 속에 '사람'과 '회복'이 증발해 버린다면, 그것을 진정한 교육적 정의라 부를 수 있을까."
"나는 판사가 되기를 거부한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명쾌한 판결문 대신, 조금은 답답하고 느릴지라도 서로의 눈을 보고 대화하고 사과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다. 법정은 판결로 끝나지만, 교실은 판결 이후에도 계속되어야 하기에. 그것이 내가 이 소란스러운 법정에서 지키고 싶은, 유일한 교실의 정의다."
미디어는 이른바 '문제아'를 다루며 오늘날 교실의 모습을 조명한다.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 반복적으로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 또래를 괴롭히거나 폭언하는 학생 등이 구제 불능으로 묘사된다. 해당 학생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보다 '나쁜 의도'를 부각하는 데 시선을 두는 것이다. 이야기의 주제는 곧 '문제아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이가 어려서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촉법소년에 대한 분노가 커졌다. 촉법소년 연령 기준 하향에 대한 찬성 여론이 여느 때보다 강화한 오늘날, 정부는 촉법소년 상한 연령을 만 14세에서 만 13세로 한 살 낮추는 방안을 추진한다. 회복의 기회를 잃은 '처벌받는 소년'의 수를 늘리는 것이다. 소년이 사회에서 단절되는 시간도 그만큼 길어진다.
작가는 수업을 방해했을 때 벌점으로 상황을 종료하지 않았다. 섣불리 개입하지 않되, 냉정히 외면하지도 않았다. 때로는 기다리고 지켜주었다. 회복의 방법을 찾아 나섰다. 아이들의 사소한 질문도 쓸모없음으로 치부하지 않는 작가의 교실은 학생을 낙인찍지 않는 특징이 있다. "누군가에게 어떤 이름표를 꺼내어 달아줄지는 온전히 어른인 나의 몫"이라는 작가의 말에서 학생의 자아를 건강하게 지켜주기 위한 고민이 엿보인다.
"고작 '착하다'는 긍정적인 말 한마디도 사람의 행동을 이렇게 강력하게 구속하는데, 만약 그것이 '문제아'나 '구제 불능' 같은 부정적인 낙인이라면 어떨까?…결국 그 낙인에 걸맞은 진짜 문제아가 되어버린다."
어쩌면 이 같은 교실의 모습으로 '교실 밖 갈등'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더 큰 부딪힘을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는다. 교실의 갈등을 부각하는 콘텐츠가 넘쳐나는 때, 책 <밑줄 긋지 못한 문장들>로 엿본 교실에서 나는 '요즘 학생'들의 진짜 얼굴과 잠시 연결된 기분을 느꼈다.
다만 회복의 교실을 지키는 것, 이 모든 것을 교사 한 명의 책임으로 맡겨서는 안 된다.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책임은 무한하고 권한은 줄어드는 살얼음판이기 때문"에, 작가와 같이 교육적 소신을 유지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지 모른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과 같은 교사가 "두려움에 떠밀려 뒷걸음질 치는 직업인"이 되지 않도록, 모두가 고민하고 관심을 모아야 함을 강조하고 또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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