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린디시에 끌렸던 이유 중 하나는 성 요한의 무덤이었다. 성 요한이 잠들어 있는 곳, 브린디시. 적어도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성 요한의 묘역(San Giovanni al Sepolcro)’이라는 이름을 보고 찾아갔는데 무덤이 아니다. 이름 때문에 많은 여행객들이 오해하는 산 조반니 알 세폴크로(San Giovanni al Sepolcro) 성당이다.
세폴크로(Sepolcro)는 이탈리아어로 성묘, 즉 예루살렘의 예수 무덤을 뜻하는 단어라 이런 착각을 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닌 모양이다. 나와 비슷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성 요한의 무덤이 아니라 성당 이름이 무덤이라니. 조금 허탈하다. 유명 맛집을 찾아갔는데 가게 이름이 하필 '맛집'인 그런 상황이랄까.
이왕 왔으니 들어가 보자는 심정으로 입장료를 냈다. 원형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 예루살렘 성묘 교회를 본떠 만들어졌다. 십자군 시대 브린디시는 성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배들의 중요한 출항지였다. 유럽 각지의 순례자와 기사들이 이 항구에 모여 배를 탔다.
문제는 예루살렘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고 위험했다는 것. 돈이 없어 배를 타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도중에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 기발한 해결책을 생각해 낸다. 예루살렘 성묘 교회를 이곳에 옮겨 놓기로 한 것이다. 성당을 순례하면 성지를 다녀온 것에 준하는 의미를 인정해 주었으니, 말하자면 성지 순례의 이탈리아 지점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진짜를 대신할 무언가를 만들어왔다. 미니어처 성지, 축소판 도시, 모형 기차, 가상현실. 브린디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있었다.
입장료는 3유로. 성 요한의 무덤은 없었지만, 벽에는 여러 시대에 걸쳐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었고, 바닥 유리 너머로는 로마 시대 유적도 보였다. 작은 성당 하나에 십자군, 템플 기사단, 중세 순례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으니 완전히 헛걸음은 아니다.
성당을 돌아본 후 나와 항구 쪽으로 걸었다. 브린디시에서 진짜 보고 싶었던 것, 브린디시의 진짜 얼굴을 봐야 했다. 아피아 가도(Via Appia)의 끝점이다.
기원전 312년에 건설되기 시작한 이 길은 로마에서 출발한다. 이탈리아의 남북을 가로지르며 약 540㎞를 달려 브린디시 항구에서 끝난다. 로마인들은 이 길을 ‘길의 여왕(Regina Viarum)’이라 불렀다. 군대가 행군했던 길이고, 상인들은 이 길로 물건을 날랐다. 아우구스투스도 이 길을 통해 로마로 돌아왔고, 사도 바울 역시 로마로 끌려갈 때 이 길을 지나야 했다. 그 길의 끝이 여기 있다.
항구 앞에 지금도 기둥 하나가 서 있다. 원래는 두 개였지만 하나가 무너졌고, 남은 기둥 하나가 2000년이 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로마가 만든 길의 마지막 표지석, 마침표다.
기둥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모든 길은 언젠가 끝난다. 끝난 자리에서 또 다른 길이 시작된다. 육지의 길은 여기서 끝나고 바다의 길이 열린다. 로마에서 출발한 병사와 순례자, 상인들은 이 항구에서 배를 타고 그리스와 콘스탄티노플, 더 먼 동방으로 향했다. 브린디시는 종착점이라기보다 경계에 가까운 도시였다. 하나의 여정이 끝나고 다른 여정이 시작되는 곳. 길은 멈춘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었다.
어쩌면 로마는 제국이라기보다 거대한 도로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쟁으로 영토를 넓혔고 길을 놓아 사람과 도시를 연결했다. 아피아 가도의 마지막 지점에 서 있으니 로마의 힘은 성벽보다 길에서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로마의 진짜 유산은 콜로세움이 아니라 길이었다.
점심으로 피자를 먹었다. 바람은 시원했고 바다는 잔잔했다.
생각해 보면 브린디시에서는 특별한 소득이 없었다. 원래 보려고 했던 무덤은 없었고 유명하고 화려한 관광지도 없다. 그래서 오히려 좋았다. 잘못된 정보로 찾아왔지만, 길의 끝을 보았고, 바다를 마주했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피자를 먹는다.
피자를 먹으며 나는 다음 목적지였던 바리(Bari)를 지웠다. 마테라와 알베로벨로를 연달아 보고 난 뒤라 눈과 마음이 가득 찬 상태이기도 했고, 지금 마주한 바다로 충분한 느낌이다. 바리의 산 니콜라 성당이 꽤 볼만한 곳이라고들 하지만 아쉽지 않다.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로마인들도, 순례자들도, 십자군도 이 바다를 바라보며 다음 여정을 떠올렸을 것이다. 나도 이제 떠난다.
여성경제신문 박재희 작가
jaeheecall@gmail.com
박재희 작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 전공 후 국제경영 MBA를 취득했다. 현대그룹과 DELL, EMC 등 글로벌 IT 기업 마케터로 일하고 미국 벤처 Actifio 아시아태평양 지역 마케팅 총괄대표를 지냈다. 커리어의 정점에서 '인생 리셋'을 선언하고 두 차례 산티아고 순례 후 현재는 여행작가이자 자기계발 리더십 코치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 <산티아고 어게인> , <숲에서 다시 시작하다> , <그 여자, 정치적이다> 등이 있으며 현재 모모인 컴퍼니 대표를 맡고 있다. 그> 숲에서> 산티아고> 산티아고>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Copyright ⓒ 여성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