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위키트리 최학봉 기자] 한국마사회의 말복지 정책이 제주에서 잇따라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최근 불법도축 현장에서 말 긴급구호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둘러싼 논란에 이어, 같은 현장에서 은퇴한 지 20여 일밖에 지나지 않은 퇴역 경주마가 발견되면서 이력관리와 승용마 전환 체계의 허점이 도마에 올랐다.
사진은 렛츠런파크 제주 야간경마 모습 / 사진=마사회
이번에는 현역 경주마의 폭염 속 경주 문제가 불거졌다.
한국마사회가 여름철 ‘야간경마’를 운영하면서도 첫 경주를 낮 12시 30~50분부터 시작하는 것을 두고 시민단체가 “야간경마라는 명칭과 실제 운영이 맞지 않는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사)생명환경권행동 제주비건은 7일 성명을 내고 “폭염 속 한낮부터 경주마를 달리게 하는 현재의 운영은 말복지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경주 시간 조정을 촉구했다.
단체는 7일부터 9일까지 사흘간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렛츠런파크 제주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할 예정이다.
제주비건은 특히 ‘야간경마’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금요일 첫 경주가 낮 12시 50분, 토요일은 낮 12시 30분부터 시작되는 점을 문제 삼았다.
단체는 “야간경마라는 이름과 달리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시간대부터 말들이 예시장과 주로를 오가며 전력질주해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야간경마라는 명칭이 아니라 말이 실제 언제, 어떤 환경에서 달리느냐”라고 지적했다.
폭염 상황에서 경주마가 실제로 노출되는 열환경도 쟁점이다.
기상청이 발표하는 기온은 일반적으로 직사광선의 영향을 최소화한 조건에서 측정된다. 반면 경주마가 달리는 모래 주로는 강한 일사와 지면 복사열, 높은 습도와 바람의 세기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
제주비건은 이 같은 환경에서 경주마가 고강도 질주를 할 경우 자체적으로 발생하는 체열까지 더해져 열 스트레스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고온다습하고 바람이 약한 환경에서는 말이 체열을 충분히 배출하지 못해 탈수와 열탈진, 열사병 등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며 단순 기온이 아닌 실제 열환경을 기준으로 경주 시행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경마의 폭염 대응 사례도 제시했다.
단체는 영국과 호주 등 일부 해외 경마 시행기관에서는 폭염 상황에서 기온뿐 아니라 습도, 일사량, 바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경주 시간을 조정하거나 상황에 따라 연기 또는 취소하는 대응체계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호주 Racing Victoria의 고온 환경 대응 절차 등을 거론하며 국내 경마 역시 말이 실제로 받는 열 스트레스를 반영한 별도의 폭염 대응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제주비건은 한국마사회에 ▲폭염 시간대 경주 중단 및 야간경주 전환 ▲경마장별 WBGT(습구흑구온도) 등 열 스트레스 관련 지표 측정·공개 ▲일정 수준 이상의 열 스트레스 발생 시 경주 변경·지연·취소 기준 마련 ▲경주 전후 경주마 체온과 회복 상태 확인 등 보호조치 강화를 요구했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명예교수 출신인 우희종 한국마사회장을 향해서도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했다.
제주비건은 “수의학자 출신의 마사회장이라면 폭염 속 전력질주가 말에게 어떤 위험을 줄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말복지는 선언이 아니라 실제 운영으로 증명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말은 스스로 경주시간을 선택할 수도, 출전을 거부할 수도 없다”며 “경마산업을 운영하는 한국마사회가 먼저 말의 안전을 위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논란은 최근 제주에서 연이어 제기된 경주마 보호 문제와 맞물리면서 단순한 경주시간 논란을 넘어 한국마사회의 말복지 정책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앞서 제주지역 말 불법도축 현장에서는 한국마사회의 말 긴급구호체계가 실제 위기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시민단체들은 당시 불법도축 정황이 확인된 현장에서 말 긴급구호체계에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정작 긴급한 현장에서 제대로 가동됐는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이어 같은 불법도축 농장에서 은퇴한 지 불과 20여 일 지난 퇴역 경주마가 발견되면서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났다.
현장에 말들이 남아 있었던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경주마가 은퇴한 뒤 어디로 이동하고 어떤 관리와 보호를 받는지, 승용마 등 다른 용도로 전환된 이후에도 실제 사육 상황을 추적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결국 최근 제주에서 불거진 세 가지 논란은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한국마사회의 말복지 시스템은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가.
불법도축 현장에서는 긴급구호체계의 실효성이 문제로 제기됐고, 퇴역 직후의 경주마가 같은 현장에서 발견되면서 은퇴 이후 이력관리와 보호체계가 도마에 올랐다.
여기에 이번에는 현역 경주마가 폭염 속 낮 12시대부터 경주에 투입되는 문제까지 더해졌다.
현역 경주마의 경주 환경부터 은퇴 이후의 이력관리, 위기 상황에서의 긴급구호까지 한국마사회가 내세운 말복지 정책 전반을 실제 현장 기준으로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마사회는 경마를 시행하는 기관인 동시에 경주마 복지와 말산업 관리 책임도 지고 있는 공공기관이다.
따라서 개별 사건에 대한 해명을 넘어 폭염 속 경주 시행 기준은 무엇인지, 퇴역 경주마의 이동과 사육 상태를 어디까지 추적하고 있는지, 긴급구호체계가 실제 현장에서 즉각 작동할 수 있는 구조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우희종 회장이 취임 이후 강조해 온 생명과 생태, 말복지 가치가 실제 경마 운영과 경주마 보호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도 시험대에 올랐다.
말복지는 선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폭염 속에서 달리는 현역 경주마가 제대로 보호받는지, 은퇴한 경주마의 행방을 끝까지 관리할 수 있는지, 위기에 처한 말이 발견됐을 때 구조체계가 즉각 작동하는지가 정책의 실효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제주비건은 “경마의 기록과 매출보다 말의 생명과 안전이 먼저”라며 “사람에게 야외활동을 자제하라고 하는 폭염 속에서 말에게 전력질주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야간경마’라면 말 그대로 기온이 내려간 야간에 경주해야 한다”며 한국마사회와 우희종 회장에게 폭염 대응 기준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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