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수·일교차가 심장 전기신호 교란…심정지·돌연사로 이어질 수도
갈증 전 물 마시고 카페인·과음 줄여야…실신 땐 부정맥 검사 필수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연일 40도를 넘나드는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온열질환만큼이나 경계해야 할 불청객이 있다. 바로 불규칙한 맥박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부정맥'이다.
부정맥은 심장박동이 정상적인 리듬을 잃고 흐트러진 상태를 말한다. 심장은 보통 분당 60∼100번씩, 하루 약 10만 번을 규칙적으로 펌프질을 반복하는데 이런 심장박동에 문제가 생겨 맥박이 지나치게 빨라지거나 느려지면서 불규칙해지는 것이다.
부정맥의 종류도 다양하다.
심장이 가늘게 떨리는 심방세동처럼 비교적 흔한 형태는 뇌졸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반면 심실빈맥이나 심실세동은 심장이 혈액을 제대로 내보내지 못하면서 순식간에 심정지와 돌연사로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인 부정맥이다. 같은 부정맥이라도 단순한 불편감으로 끝나는 경우부터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질환까지 폭이 매우 넓은 이유다.
여름철 폭염이 부정맥을 악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은 탈수다.
더운 날씨에 많은 땀을 흘리면 혈액 속 수분이 줄면서 혈액량과 혈압이 감소한다. 이를 보상하기 위해 심장은 평소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뛰게 되고, 이 과정에서 자율신경계의 균형이 흔들리면서 심장의 전기 신호도 불안정해질 수 있다. 결국 심방세동이나 빈맥이 새롭게 발생하거나 기존 부정맥이 심해질 가능성이 커진다.
고령자나 심부전·고혈압 환자, 이뇨제를 복용하는 사람은 탈수가 더욱 쉽게 진행돼 위험성이 높다. 하지만 건강한 젊은 층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다. 폭염 속 격렬한 운동이나 과도한 카페인·에너지음료 섭취, 음주와 흡연이 겹치면 심장의 전기적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어서다.
실제로 기온 변화 자체가 부정맥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가 있다.
국제학술지 '생물기상학'(International Journal of Biometeorology)에 발표된 국내 연구에서는 서울지역에서 부정맥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 3만1천629명을 분석한 결과, 일교차가 1도 커질 때마다 부정맥으로 인한 응급실 방문이 1.84%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날보다 일교차가 5도 더 벌어졌다면 응급실을 찾을 위험은 약 9.2% 높아지는 셈이다. 폭염기에 냉방으로 인한 급격한 체온 변화도 심장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부정맥은 증상도 다양하다.
가장 흔한 것은 가슴이 '쿵쾅거린다'라거나 맥박이 불규칙하게 뛰는 느낌이다. 여기에 어지럼증, 숨이 차는 증상, 흉통, 쉽게 피로해지는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는 실신은 절대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되는 위험 신호다.
운동 중 특별한 이유 없이 쓰러졌거나, 누워 있다가 갑자기 실신한 경우, 실신 직전 심한 두근거림이나 흉통이 있었다면 심장성 부정맥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가족 가운데 젊은 나이에 돌연사를 경험한 사람이 있다면 유전성 부정맥 가능성도 고려해 전문 진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정맥 진단의 핵심은 증상이 발생하는 순간의 심전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정맥은 간헐적으로 나타나 일반적인 심전도 검사만으로는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피부에 붙이는 패치형 심전도 검사를 이용해 1∼2주 동안 심장 리듬을 연속 기록하거나, 증상이 매우 드문 환자는 피부 아래에 삽입하는 루프기록계를 통해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심전도를 모니터링하기도 한다. 여기에 심장초음파와 운동부하검사, 심장 자기공명영상(MRI), 유전자 검사까지 병행해 원인을 찾아낸다.
치료법은 부정맥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맥박이 지나치게 느려 반복적으로 실신하는 서맥성 부정맥은 인공심박동기를 삽입해 정상 박동을 유지한다. 심실세동이나 심실빈맥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악성 부정맥은 체내 삽입형 제세동기를 넣어 위험한 부정맥이 발생하는 즉시 전기충격으로 정상 리듬을 회복시킨다.
가장 흔한 심방세동은 항부정맥제나 항응고제 치료와 함께 고주파절제술 또는 냉각풍선절제술이 시행된다. 최근에는 심장 조직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펄스장절제술(PFA)이 도입되면서 주변 조직 손상을 줄이고 시술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폭염 땐 무엇보다 탈수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갈증을 느끼기 전에 충분히 물을 마시고, 카페인 음료와 과도한 음주는 피하는 것이 좋다. 야외 운동은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은 아침이나 저녁 시간대로 옮기고, 한낮의 무리한 활동은 자제해야 한다.
실내 냉방 온도를 지나치게 낮춰 급격한 온도 변화를 만드는 것도 심장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평소 고혈압이나 심장질환이 있는 사람은 혈압과 맥박을 꾸준히 확인하고, 증상이 없더라도 처방받은 약을 임의로 중단해서는 안 된다.
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최영 교수는 "부정맥은 단순한 두근거림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는 심정지와 돌연사로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인 질환"이라며 "폭염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반복되는 두근거림이나 실신, 흉통, 호흡곤란이 나타난다면 단순한 피로나 더위 때문이라고 넘기지 말고 반드시 전문 진료를 받아 정확한 원인을 확인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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