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6일 충남 서산의 자동차 기업 동희오토에서 일하던 28살 김진휘 씨가 실종됐다. 5일 뒤 그는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은 평소 가족과 친구들에게 장시간 노동과 과중한 업무, 상사의 폭언 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김 씨가 남긴 네 통의 유서 중 직장 동료에게 남긴 유서에도 이상한 대목이 있었다. 다른 동료에게는 "감사했습니다", "회사생활 잘하세요. 잘하길 빕니다" 등 인사를 남겼지만, 한 상사에 대해서는 "상관 없으십니다"라는 말뿐이었다.
유족은 아들의 죽음이 직장내괴롭힘과 연관됐을 가능성을 의심하며, 최근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했다. <프레시안>이 확보한 진정이유서와 이훈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조직차장이 제공한 유족 인터뷰 등을 토대로 김 씨에게 일어난 일을 재구성했다.
신입 때부터 1400명 일하는 공장 안전 책임지다
가정의 하나뿐인 아들이었던 진휘 씨는 고교 시절 3년 간 개근한 성실한 학생이었다. 교사들도 진휘 씨에 대해 생활기록부에 "온화하고 침착"하며, "자기관리 능력이 우수하다"고 썼다. 어머니 김순복 씨와 통화할 때면, "무뚝뚝하지 않고 살갑게" 대화를 나누는 아들이기도 했다.
2023년 2월 대학을 졸업한 진휘 씨는 소방설비기사 자격을 딴 뒤 그해 12월 3일 동희오토에 소방관리자로 입사했다. 동희오토는 현대차그룹의 모닝, 레이 등을 위탁생산하는 기업이다. 관리직·기술직 140여 명만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1400여 명의 생산직을 전원 비정규직으로 고용한 점을 특징으로 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소방안전관리자였던 진휘 씨는 그래도 정규직이었다. 사측이 유족에게 고인의 근무시간 등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있어 현재 고인의 근무환경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는 생전 그가 친구들에게 보낸 문자와 어머니와 나눈 대화뿐이다. 이를 토대로 보면, 진휘 씨는 입사 초부터 회사의 소방안전을 사실상 홀로 책임졌다.
그런 상황에서 20대의 입사초년생이 느낀 부담감은 진휘 씨가 입사 초 친구에게 보낸 문자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입사 나흘만인 12월 7일 진휘 씨는 자신이 소방안전관리 업무의 "주선임"이라며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건축물에 불이 나 초동대처 중 소방안전관리자가 사망하면 면책해준다며 그런 마음으로 일하니 "덤덤해졌다"고도 했다.
5일 뒤 진휘 씨는 사내에 소방계획서를 쓸 줄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신입에게 일을 가르쳐주거나, 업무 부담을 나눠질 사람이 사실상 없었던 것이다.
오전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주 6일 근무
동희오토의 연 면적은 약 3만 평에 달한다. 그 안에 41개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상시근무하는 인력만 1500여 명이다. 이 거대한 공장의 소방안전을 책임지는 노동자가 격무에 시달리게 될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입사하기도 전인 6개월 전에 했던 소방점검의 지적사항을 개선하는 것, 수증기를 화재 연기로 인식하는 낡은 감지기가 울릴 때마다 출동해 상황을 살피는 것, 15미터 위 고소에서 "노 헬멧 노 안전대" 상태로 전선 정비 작업을 하는 것 등이 진휘 씨의 업무였다.
입사 한 달여가 지난 2024년 1월 15일 진휘 씨는 한 친구에게 '하루 10시간 씩 주 6일 일한다'는 문자를 보내 처음으로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9일 뒤에도 고인은 "6 to 6 주6 너무 힘든데"라고 했다.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 6일 일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진휘 씨의 몸에 생긴 이상에 대한 문자도 남아있다. 장시간 노동을 시작한 지 4주 차부터는 "자다가 코피"가 났다. 5주 차부터는 일찍 자는데도 "기상시간이 느려"졌다. 6주 차부터는 "뒷골이 땡기기 시작"했다.
회사 임원이 시정을 명할 정도의 상황이었지만, 사정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쉬는 날 쉬면 일 감당 못한다', '쓰러지면 산재보고서 써준다더라', '두 달 간 주 6일 일할 게 확실하다' 등 장시간 노동에 대한 진휘 씨의 문자는 이후로도 7개월여 간 반복됐다.
상사 폭언 증언도…장염으로 병원 입원했을 때도 '타박'
과중한 업무와 장시간 노동만 문제가 아니었다. 진휘 씨가 생전 가족, 친구들과 나눈 대화에는 유족이 직장내괴롭힘을 의심하게 한 문제적 조직문화의 흔적도 묻어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상사의 폭언이다. 순복 씨는 아들이 상사인 A 씨에 대해 말하며 "쌍욕을 한다", "말 자체가 X발부터 시작한다. 습관처럼 아예 말머리로 달고 시작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친구와의 문자에도 비슷한 내용이 담겼다. A 씨는 설비 점검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 화재예방 순찰을 돌지 못한 고인에게 '야 닌 학교에서 뭘 배웠어?'라며 타박했다. 회식에 빠지려는 다른 팀원을 혼내 빠질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드는가 하면, 자신이 과거 직원을 앉혀놓고 '니네들 말고 일할 XX들 많으니까 나가'라고 한 일을 "썰"로 풀어놓기도 했다.
아플 때도 온전히 쉬기 어려웠다. 장염에 걸려 병원 권유로 입원했을 때 진휘 씨는 병가가 아닌 연차를 썼다. 복귀하자 상사에게 들었다는 말은 '장염으로 왜 입원하냐. 형도 다 그랬다'였다.
힘들어한 것은 진휘 씨만이 아니었다. 순복 씨는 아들의 입사 동기가 퇴직할 때 "공무원이 되서 복수하겠다고 하고 나갔다는 말을 들었다"고 회상했다. 진휘 씨가 친구에게 보낸 문자에도 상사가 쥐어짜 하루에 "2명 퇴사"했다는 대목이 있다.
견디다 못한 진휘 씨는 일을 시작한 지 반년도 되지 않은 2024년 5월경 친구들에게 산재나 과로사를 당해 상사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8월경부터는 생을 마감하는 일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월 끝내 세상을 등졌다.
"아들의 마지막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바람, 이룰 수 있을까
진휘 씨의 죽음이 바깥으로 알려진 때는 지난 7월 16일이었다. 그날 유족은 금속노조 동희오토분회와 함께 노동부 서산고용노동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휘 씨의 죽음과 관련한 직장내괴롭힘 의혹 진상조사를 요청했다.
순복 씨는 이 자리에서 "아들이 무엇 때문에 숨을 거둬야 했는지, 지금도 아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고 조금이라도 나누려 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고, 너무나 참담하고 괴롭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은 입사 후 감당하기 힘든 업무량에 시달렸고, 상사의 지속적인 괴롭힘과 모욕적인 언사로 인해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겪었다며 "아들아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네가 겪었을 그 외로움과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지만, 그 마지막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 호소에 동희오토는 아직 답을 하지 않고 있다. <프레시안>은 직장내괴롭힘 의혹과 관련 동희오토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지난 5~6일 대표전화, 이메일 등으로 수 차례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서산지청은 현재 담당 감독관을 배정하고 사건을 조사 중이다. 다만 지난 5일 기준 사측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노동부가 직장내괴롭힘을 인정하면, 사업주에게 행위자 징계 등 필요한 조치를 명하게 된다.
유족을 대리한 손익찬 변호사는 "철저한 직장 내 괴롭힘 진상조사만이 억울한 죽음의 실체를 밝히는 첫걸음"이라며 조사결과를 토대로 "억압적 노무관리가 반복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지시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같은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www.129.go.kr/etc/madlan)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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