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가루 자연발화와 여름철 보관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무더위가 이어지는 요즘 냉장고나 찬장에 쌓아둔 식재료들이 예상치 못한 화재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소한 맛 때문에 국이나 나물에 자주 넣는 들깨가루도 그중 하나다. 어떤 조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본다.
들깨가루, 기름 성분 뭉쳐 쌓이면 자연발화
들깨가루는 지방 성분이 풍부한 식재료다. 들깨를 곱게 갈아 가루로 만들면 이 기름 성분이 공기와 닿는 면적이 훨씬 넓어지고 그만큼 산소와 만나는 산화 반응도 활발해진다. 이 반응에서는 열이 조금씩 생겨난다. 소량을 보관할 때는 열이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속도가 더 빨라 온도가 크게 오르지 않는다.
문제는 많은 양을 한곳에 뭉쳐 쌓아둘 때다. 가루 뭉치의 크기가 커질수록 안쪽에서 생긴 열이 바깥까지 나오는 거리도 길어지고, 그만큼 빠져나가는 속도는 느려진다. 만들어지는 열이 빠져나가는 열보다 많아지면 내부 온도가 계속 올라가고, 결국 발화점에 도달하면 불씨 없이도 불이 붙는다. 라이터나 성냥 같은 외부 불꽃이 전혀 없어도 불이 나는 이런 현상을 자연발화라고 부른다.
대구 방앗간 화재 원인은 들깨가루
2024년 6월 대구 남구의 한 방앗간에서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마대에 담긴 들깨가루에서 열이 계속 쌓이면서 화재로 번졌다. 이 불로 점포 내부와 기계 일부를 포함해 약 45㎡ 규모가 탔다. 대구중부소방서는 화재 원인을 들깨가루의 자연발화로 추정했으며 당시 고온다습한 날씨가 이어진 점이 발화를 앞당겼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냉동실에 얼려둔 들깨가루를 해동하다가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2018년 여름 폭염 당시 냉동고에서 꺼내 둔 지 3~4시간 만에 들깨가루가 스스로 불이 붙은 사례가 한국화재보험협회 자료에 소개돼 있다. 얼어 있던 덩어리가 녹으면서 뭉친 상태 그대로 방치되면 산화로 생긴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안에서 계속 쌓이기 때문이다.
걸레·건초·석탄도 자연발화 위험
들깨가루 외에도 비슷한 위험을 지닌 물질은 많다. 페인트나 목재 마감재, 오일스테인처럼 건성유 성분이 묻은 걸레도 대표적인 자연발화 물질로 꼽힌다. 실제로 한 리모델링 공사 현장에서는 오일스테인을 칠하는 데 사용한 걸레와 톱밥을 마대에 함께 넣어뒀다가 작업을 마친 지 7시간 만에 불이 났다.
걸레에 남아 있던 기름 성분이 산화하며 열을 냈고, 좁은 마대 안에서 이 열이 빠져나가지 못한 채 계속 쌓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작 오일스테인 용기에는 이런 위험을 알리는 경고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현장 관계자는 이를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이 밖에 충분히 마르지 않은 건초나 볏짚을 대량으로 쌓아둔 창고, 습기가 많은 곳에 장기간 방치된 숯과 석탄에서도 비슷한 원리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물론 가정에서 소량으로 보관하는 들깨가루가 자연발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만 지방 함량이 높아 산패가 빠르게 진행되는 식품인 만큼 보관법을 지키는 편이 품질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 들깨가루를 보관할 때는 밀봉한 뒤 직사광선을 피해 냉장이나 냉동 보관하고, 얼렸던 가루를 꺼낼 때는 뭉친 덩어리를 잘게 부숴 펼쳐두는 것이 좋다.
방앗간이나 식품 제조업체처럼 대량으로 취급하는 곳이라면 한곳에 높이 쌓지 않고 열이 빠져나가도록 나눠서 보관하며 창고 내부의 온도와 습도를 주기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불은 항상 눈에 보이는 불꽃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열이 조용히 쌓이다가 어느 순간 화재로 번지기도 한다. 무더위가 계속되는 만큼 집에 있는 식재료와 생활용품 보관 상태를 미리 살펴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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