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치료 성과를 통증점수 하나로 판단하면 실제 회복을 놓칠 수 있다. 통증이 남아 있어도 손발을 쓰고 걷거나 학교·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중요한 회복이다. 반대로 통증이 줄어도 일상생활을 하지 못한다면 충분한 치료 성과라고 보기 어렵다.
CRPS는 극심한 통증 때문에 움직임을 피하면서 기능장애가 심해질 수 있다. 움직이지 않으면 관절이 굳고 근력이 떨어져 손발 사용과 보행까지 제한된다. 약물이나 시술로 통증을 낮추는 치료와 환자가 다시 움직이도록 돕는 재활이 함께 필요한 이유다.
주로 외상이나 수술 등을 계기로 특정 신체 부위에 손상 정도보다 심한 통증이 지속되는 희귀 난치성 질환이다. 감각이상·부종·피부 온도와 색 변화·운동범위 제한·근력 저하 등이 동반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CRPS 재활이 치료체계의 한 축으로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다. 임재영 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CRPS 환자 47명을 조사한 결과 재활서비스 미충족 요구는 평균 48%였다. 표준화된 재활진료지침도 없는 가운데 임 교수 연구진은 올해 한국형 CRPS 재활진료지침 개발에 착수했다.
경기도남부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장이자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의회장인 그는 장애인 의료접근성 개선에도 참여하고 있다. 7일 여성경제신문은 임 교수에게 CRPS에서 기능·일상 회복을 함께 살펴야 하는 이유와 한국형 재활진료지침이 바꿔야 할 치료체계·장애인이 실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들었다.
―CRPS 치료 성과는 통증이 얼마나 줄었는지로 판단하나.
"통증점수 하나만으로 치료 성과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관절운동 범위·근력·손 기능·보행과 이동능력·일상생활 수행능력을 함께 봐야 한다. 수면·우울·불안·움직임에 대한 공포와 삶의 질도 평가할 필요가 있다. 통증이 남아 있어도 손을 사용하고 걷거나 학교·직장에 복귀했다면 중요한 치료 성과다.
환자마다 중요한 목표도 다르다. '통증을 0점으로 만들겠다'보다 '혼자 양말을 신겠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겠다', '주 3일 출근하겠다'처럼 실제 생활에서 의미 있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통증을 줄이는 것과 별개로 재활이 필요한 이유는.
"관절 구축과 근력 저하가 생기고 결국 일상생활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통증 때문에 움직이지 않고 관절과 근육이 굳으면 작은 움직임에도 더 큰 통증과 공포를 느끼는 악순환이 생긴다. 약물이나 신경차단술로 통증을 낮춰도 손을 쓰고 걷거나 직장으로 돌아가는 능력이 저절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통증치료와 함께 관절운동·점진적 체중부하·손발 사용훈련·일상생활훈련·심리적 중재가 필요하다. 재활의 목표는 환자가 가족·직장·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시 수행하도록 돕는 것이다."
―CRPS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재활치료를 하나.
"한 가지 치료를 모든 환자에게 똑같이 적용해서는 안 된다. 질환의 시기·통증·감각과민 정도·관절운동 제한·근력·부종·운동에 대한 공포·인지·정서 상태와 실제 생활에서 필요한 기능을 바탕으로 치료를 조합해야 한다.
운동·작업치료를 기본으로 능동운동·보조운동·점진적 체중부하·실제 생활동작을 연습하는 과제지향훈련 등을 단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일반적인 관절 구축 환자처럼 관절을 강하게 꺾거나 무리하게 스트레칭하면 통증이 심한 CRPS 환자는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
직접 움직이기 어려운 환자에게는 거울치료나 단계적 운동심상훈련을 활용할 수 있다. 우울·불안이나 움직임에 대한 두려움과 회피행동이 심하면 인지행동치료도 고려한다. 통증이 심리적인 문제라는 뜻이 아니라 공포와 회피가 기능 저하를 키우는 악순환을 줄이기 위한 치료다."
―통증이 어느 정도 조절된 뒤 재활을 시작해야 하나.
"통증치료와 재활치료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다. 통증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활을 시작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극심한 통증을 무시하고 무조건 움직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약물치료·신경차단술·수면·정서관리 등을 통해 환자가 치료에 참여할 수 있는 '치료 가능 창'을 만들고 감각 적응·부드러운 움직임·운동심상·일상생활 과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치료 뒤 증상이 과도하게 악화돼 며칠간 지속되거나 다음 치료 자체를 피하게 될 정도라면 강도를 조절해야 한다. 환자와 치료진이 허용 범위를 정하고 작은 성공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 CRPS 환자가 필요한 재활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이유는.
"CRPS 재활이 치료체계의 필수 축으로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어느 시점에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재활해야 하는지 국내 표준이 부족하고 의료기관마다 치료 경험과 접근법에도 차이가 있다.
특히 CRPS의 통증과 움직임의 관계를 이해하고 재활을 이끌 수 있는 경험 있는 의료진과 치료인력이 많지 않다. 질환 특성에 맞는 치료를 제공해도 의료기관에 이를 별도로 보상하는 급여체계가 없다는 문제도 있다. 우리 연구에서도 환자의 기능장애가 심각한 데 비해 필요한 재활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미충족 요구가 높게 나타났다.
우선 표준화된 평가와 치료원칙을 마련해야 한다. 재활의학과·통증의학과·정형외과·신경외과·정신건강의학과 등이 협력하는 다학제 진료체계를 확대하고 장기치료 환자는 기능과 치료반응에 따라 치료 강도와 기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 기준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한국형 CRPS 재활진료지침을 만들게 된 배경은.
"그동안 환자를 진료하면서 통증치료는 받지만 손발 사용·보행·일상·직업 복귀를 위한 재활은 충분히 받지 못하는 경우를 계속 봐왔다. 이번 연구가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니다. 2016년부터 진료지침 수요조사가 있을 때마다 필요성을 제안했다. 약 10년 가까이 됐고 세 차례 정도 제안한 끝에 이번에 받아들여졌다.
해외에는 CRPS 재활 연구와 지침이 있지만 보험제도와 재활치료 환경이 한국과 달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국내 의료기관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평가도구·치료단계·의뢰체계·환자교육 기준이 필요하다. 이번 지침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재활치료를 권고할 수 있는지 근거를 정리하려 한다."
―지침이 만들어지면 모든 의료기관에서 똑같은 치료를 하게 되나.
"전국 의료기관이 공유할 공통의 출발점과 안전선을 만들되 환자별 판단이 필요한 영역은 남겨야 한다. 모든 진료행위를 동일하게 만드는 것이 좋은 지침은 아니다.
통증뿐 아니라 기능과 심리상태를 함께 평가하는 원칙·위험징후와 의뢰기준·조기교육과 기본 재활원칙 등은 공통 기준이 될 수 있다. 반면 운동 종류와 강도·치료 빈도·기간·거울치료나 운동심상훈련의 적용 순서·약물·시술과의 조합은 환자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진료지침은 의료진의 판단을 없애는 강제 규정이 아니라 진료를 권고하는 기준이다. 지역이나 의료기관에 따라 환자가 지나치게 다른 치료를 받지 않도록 공통의 출발점과 안전선을 제공하고 향후 급여체계가 마련되면 급여기준을 만드는 근거로도 활용될 수 있다."
―경기남부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 센터장과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의회 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장애인이 실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의료기관은 무엇이 달라져야 하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모두 바뀌어야 한다. 경사로나 엘리베이터 같은 시설을 갖추는 것은 출발점이고 예약부터 접수·진료·검사까지 전체 과정이 장애인이 실제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
휠체어 이용 환자를 검사대나 진찰대로 옮길 장비와 인력이 부족할 수 있다. 청각장애인은 문자·수어 지원이, 발달장애인은 대기시간과 의사소통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장애인은 이동·탈의·자세 변경에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진료체계는 대부분 비장애인 기준으로 설계돼 있다.
의료종사자가 장애 특성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장애인을 진료할 때 어떤 추가 지원이 필요한지 이해하는 인식과 문화가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다. 예비 의료인 단계부터 장애와 건강권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에서도 관련 인식개선과 건강권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예약 단계에서 필요한 지원을 미리 확인하고 진료·검사를 연결하는 인력, 이동형 리프트와 높이조절 진찰대·휠체어 체중계·의사소통 수단 등을 갖추는 체계도 필요하다. 보건복지부는 장애인건강권법에 따른 의료접근성 개선 차원에서 '장애인 의료기관 이용 편의 지원 사업'을 시범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5개 의료기관이 지정돼 있다.
중증장애인에게 더 긴 진료시간과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면 의료기관에도 그에 맞는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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