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드] 성남시의회 제10대 전반기 원구성이 여야 전원 합의로 마무리된 가운데, 지난 3일 의회운영위원회 정봉규 위원장(국민의힘, 카선거구·재선)을 만났다. 8대 의회에서 전·후반기 내내 교섭단체 간사를 지내며 소수 야당의 최전선을 지켰고, 9대에서 공천 배제로 4년을 떠나 있다가 이번 10대에 재선으로 돌아온 인물이다.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단어로 ‘의리’를 꼽는 그가 여소야대 구도의 의회운영위원장 자리에 앉았다.
26년 의리, 배신으로 돌아오다
정봉규 위원장의 정당 활동은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5살에 당 임원을 맡았고, 26살부터 본격적인 정당 활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 시절 중앙당 활동, 여러 국회의원 후보의 선거사무장을 거쳐 8대 성남시의회에 처음 입성했다. 그는 “10대 의회 여야를 통틀어 정당 활동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을 꼽으라면 제가 손에 꼽힐 것”이라고 말했다.
8대 의회에서 그는 전·후반기 내내 교섭단체 간사를 맡았다. 당시 국민의힘은 성남시의회 소수 야당이었다. 그는 “민주당과 정말 많이 싸웠다. 고소·고발도 많이 하고 경찰서도 수없이 들락날락거렸다"며 "제 희생에 대한 부분은 아끼지 않았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9대 공천 배제였다. 그는 “그런 것들이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공천 과정에서는 그런 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며 “정치라는 게 인맥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실력과 희생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실력 없는 사람이 오면 결국 공천이 아닌 ‘사천’이 이뤄지고, 그로 인한 피해는 결국 성남시민에게 돌아간다는 생각을 했다”며 “제 딴에는 노력한다고 했는데, 결론적으로 항변 한 번 못 하게 이미 다 짜여진 판이었다. 저 혼자 발버둥을 쳤다”고 회고했다.
4년의 공백, 그래도 떠나지 않았다
4년의 공백기 동안 그는 당을 떠나지 않았다. 2024년 총선에서는 현 당협위원장인 김은혜 의원의 당선을 위해 뛰었고, 이어진 조기 대선에서는 김문수 당시 대통령 후보의 수행팀장을 맡아 전국을 누볐다.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고 담담히 말했지만, 그는 그 사이에도 당을 위한 자리를 찾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코로나 때문에 결혼도 늦어지고, 의원 하면서도 결혼이 늦어졌는데, 낙선하고 나니 아이가 생기더라”며 “그때 하느님의 뜻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고 웃었다. 대학 강의를 하며 아이를 키우는 한편, 정치를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다고 한다.
그가 다시 돌아온 계기는 역시 사람이었다. 그는 “제가 정치를 안 한다고 해도, 도와달라는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하기가 어려웠다”며 “김은혜 의원님이 다시 요청을 하시길래 도와드리다가, 그렇게 다시 한번 기회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배신을 당했어도, 부탁을 끊지 못하는 사람. 그것이 그가 말하는 ‘의리’의 실체다.
“의리 있는 삶”…협상 테이블에서도 통할까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로 정 위원장은 서슴없이 ‘의리’를 꼽았다. 그는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어느 날은 힘이 있고 어느 날은 힘이 없을 수도 있다”며 “의원이라는 자리는 ‘나 잘났다’가 아니라, 힘이 없고 백이 없어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위한 우산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의리의 감각은 의회운영위원장이라는 자리에서도 그대로 작동한다. 여소야대 구도에서 소수 여당인 국민의힘 몫으로 돌아온 이 자리는,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다. 그런데도 그는 “야당의 목소리를 더 들어주고 원하는 방향에 맞춰주는 것이, 소수는 소수지만 여당으로서의 너그러움”이라며 양보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가 생각하는 의회운영위원장의 역할은 견제와 협상 사이 어딘가에 있다. 그는 “거대 야당이 사실상 의회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구조에서, 의회운영위원회의 역할은 그런 의회의 독주까지도 견제하는 역할”이라면서도 “단순히 견제만이 아니라 협상을 잘 이끌어내는 역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때로는 견제하고 때로는 협조하면서 집행부와의 협상이 순탄하게 이뤄지도록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9대 파행은 반복되지 않는다
9대 의회에서 있었던 상임위 통과 안건의 본회의 직권상정 번복 등 파행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묻자, 그는 제도보다 태도를 앞세웠다. “그런 일은 안 생기기를 일단 바란다”면서 “9대 때 벌어졌던 감정의 악감정은 답습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여러 차례 해왔다”고 말했다.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엔 “솔직히 거기까지는 고민을 안 해봤다”면서도, “그런 일이 안 생기게끔 협상을 잘 하는 게 우선”이라고 잘라 말했다. 26년간 당을 위해 싸워온 사람이 이번엔 싸우지 않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 그것이 이번 임기 그가 내세우는 방식이다.
윤리기준 정립·파견 직원 처우…조용한 실무도 챙긴다
의회운영위원장으로서 그가 챙기는 실무 과제도 있다. 윤리특별위원회의 징계 판단 기준이 되는 양형 기준표 마련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금 저희 의회운영위에 안건으로 상정되어 있는 상태이며, 이번에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의회 사무국에 파견된 직원들의 처우 문제도 새롭게 짚어낸 과제다. 그는 “집행부에서 파견 온 직원이 그 기간 동안 근무평가가 안 돼 진급에 애로사항이 생긴다는 걸 며칠 전에 알게 됐다”며 “귀양 보낸 것도 아니고, 여기 왔다는 이유로 진급이 늦어지면 누가 오려고 하겠냐. 오히려 더 혜택을 줘야 우수한 인재가 온다”고 말했다. 화려한 공약보다 남들이 잘 보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먼저 들여다보는 시선이다.
시민과의 접점을 넓히는 방식도 남다르다. 전기차를 개인 사비로 구입해 이동식 민원센터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의회 생방송의 시민 체감도가 낮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제도가 닿지 않는 곳을 발로 뛰어 채우겠다는 구상이다.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
2년 뒤 어떤 평가를 받고 싶은지 묻자 “저는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의원이라는 신분이 잘해도 욕먹고 못하면 더 욕먹는 자리 아니다”라며 소탈하게 웃으며 답했다.
26년을 당을 위해 뛰었고, 배신을 당했고, 그래도 돌아온 사람의 말치고는 놀랍도록 조용하다. 하지만 그 조용함 안에는 분명한 철학이 있다. 싸우기 위해 돌아온 것이 아니라, 제대로 굴러가는 의회를 만들기 위해 돌아왔다는 것. 여소야대의 협상 테이블에서 ‘의리의 정치인’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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