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몸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 매우 의미 있는 행위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림을 세우고 그것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대신, 그것이 유지되든 안 되든 상관없다는 지점에 이르렀다.···그뿐만 아니라, 단순히 어떤 행동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더 많은 것을 얻는다고 말하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이런 종류의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시라가 카즈오
구타이 운동의 주요 아티스트들
구타이 미술협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자 창립자는 요시하라 지로였다. 1954년부터 1972년까지 이 운동의 비전 있는 지도자이자 멘토, 재정 후원자로서 그는 급진적인 철학을 형성했다. 그의 영향을 받은 시라가 카즈오(1924~2008)와 시마모토 쇼조(1928~2013) 같은 핵심 멤버들은 구타이 정신을 한층 더 깊이 드러내는 여러 가지 예술 방식을 실험적으로 시도했다. 그들은 국제적인 명성과 더불어 서양의 아티스트들과도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시라가 카즈오는 그중 대표적인 작가로, 천장 밧줄에 매달려 맨발로 두꺼운 물감을 덧바르고 미끄러지며 빚어내는 피부의 질감을 살려 만든 급진적인 '발 그림'으로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그의 제스처 양식은 구타이의 목적인 역동적인 예술 작품의 창조에 행동과 일상생활을 허용하는 것이다. 전후 외세 주도 개혁으로 언론과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은 이 세대는 미국의 표현주의 작가들과 활발하게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실험하고 나누었다.
그는 캔버스 위에 몸을 매달고 앞뒤로 흔들며 발로 자국을 남겨, 추상적인 소용돌이와 튀는 자국에 독특한 질감과 두께를 만들어 냈다. "나는 마치 전쟁터를 헤치며 지쳐 쓰러질 듯이 몸부림치는 것처럼 그리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초기 대표작인 <진흙에 대한 도전> (1955)에서 그는 진흙 웅덩이에 몸을 던지고 반나체의 몸을 구부리며 점토를 조각하는 행위를 탐구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그는 공간 속에서 몸을 움직임으로써 예술을 활성화하는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진흙에>
1958년 뉴욕의 마사 잭슨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를 통해 일본의 구타이 장르가 미국 관객들에게 처음 소개되었을 때 시라가 역시 함께 포함되었다. 그는 일본의 전시 군국주의를 거부하는 급진적 개인주의를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 속에서, 손이 너무 훈련되었다고 생각해 붓을 버리고 손을 거부하며 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새롭고 직관적인 표현 방식을 가능하게 했다. 바닥에 펼쳐진 종이나 캔버스 위에 그는 많은 양의 유화 물감을 뿌리고, 천장에 밧줄을 묶어 매달린 채 맨발을 이용해 그림과 영상을 남겼다.
"나는 '액션 페인팅'이 나의 표현 방식임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으며, 결코 멈추지 않았다. 나는 진심 어린 바람으로 한결같이 내 그림을 계속 그려, 그림을 만드는 즐거움이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이 작품들의 색채와 분위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했지만, 강렬한 에너지와 거의 조각품에 가까울 정도로 극적으로 풍부하고 살아 있는 질감은 사실주의적 표현으로 하나로 묶여 있다"고 그는 말한다.
1955년에는 액션 페인팅의 혁신뿐만 아니라, 앨런 카프로의 <미국과 유럽에서의 사건들> 보다 앞선 <진흙에 도전하며> 와 같은 획기적인 퍼포먼스로 미국과 유럽의 플럭서스—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 국제적 전위예술 운동—에 기여한다. 진흙에> 미국과>
파괴적 실천과 물질성의 확장
시마모토 쇼조는 액션 페인팅과 수제 대포로 물감을 쏘는 등 폭발적인 연기로 유명한 공동 창립자다. 전통적인 기법이나 형태를 뛰어넘는 독특한 물질성과 과정에 집중하며, 그의 작품들은 종종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적극적인 실천의 흔적을 담고 있다. 그의 화법은 때로는 물감이 담긴 꽃병을 캔버스에 던지거나, 단순히 칼로 캔버스를 베어 상징적으로 보통 숭상받는 그림의 평면을 꿰뚫는 행위를 포함했다.
1955년에 제작된 <무제(흰색)> 에서 시마모토는 흰색으로 칠한 신문지를 겹겹이 쌓은 뒤 단단한 표면에 구멍을 만들었고, 그 구멍을 통해 작품 뒤에 있는 벽이 드러나도록 구성했다. "내 방식이 충격적으로 보일지라도··· 나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내 목적은 작품을 아름답게 만들어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다"고 그는 말한다. 무제(흰색)>
전후 일본의 상황들이 가득 담긴 신문들, 패전의 상처와 무너진 군국주의, 그리고 파괴된 도시와 외세의 치하 밑에서 가난과 국제적 고립으로 가득 찬 신문의 기사들, 그 많은 불쾌한 사실들이 신문이 덧붙여지며 쌓이지만 그것들은 흰색으로 덮여지고 마침내 파괴의 수단인 날카로운 칼과 힘으로 찢어지며 캔버스 뒷면의 빈 공간을 보여준다. 파괴와 불쾌한 사실들은 숨을 쉬고 빈자리로 남겨진다.
그와 같은 예술적 시도는 일본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연이라 하기엔 필연적으로 나타난 현상은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다. 루치오 폰타나의 <콘체토 스파치알레, 아테차> (1965)는 전후 이탈리아의 아방가르드 운동의 하나인 공간주의 장르에서 일본의 구타이 운동과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콘체토>
여러 겹의 종이를 찢는 것과는 달리 단색의 흰 캔버스를 예리한 칼로 잘라 선명하게 그 상처를 보여주고, 캔버스는 파괴해야 할 장벽으로 2차원 회화 평면을 뚫고 나간다. 패전국의 급진적인 열망을 공유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아방가르드 네트워크를 통해 상호 소통하며 예술을 공간을 여는 행위로 상호 재정의했다.
실험과 예술사적 의의
시마모토는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며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 도전하고 붓을 해방시켜 물감 자체의 물질성에 집중하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로서 중요한 이름을 만들어냈다. 그의 창작 활동에서는 창조의 과정이 파괴와 함께 이루어진다. 전쟁의 영향을 받은 그는 재료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파괴하는 작업 방식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1949년 그의 첫 번째 연작인 <아나(구멍)> 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며 독창성과 자유를 추구한다. 아나(구멍)>
1956년 두 번째 구타이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대표 기법을 선보였다. 그는 컬러 안료가 묻은 병들을 거대한 캔버스 위에 부수어 감각의 장관을 만들어냈고, 그 자리에 물감과 유리, 그리고 예술가의 생생한 에너지의 흔적을 남겼다. —‘Bottle Crash’— 시마모토의 '보틀 크래시' 그림들은 액션 페인팅의 새로운 형태적 기준을 세우며 미국의 잭슨 폴락 등과 같은 표현주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시마모토의 그림은 연출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큰 스케일로도 특징지어진다. 1990년대 초반에 그는 클래식 연주회 레퍼토리에서 가장 대규모의 합창 작품 중 하나인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8번에서 영감을 받은 여러 대형 회화를 제작했다. 거대한 크기 때문에 그는 종종 공연 후 작품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었으며, 색채와 힘, 그리고 즉흥성이 모두 7m 길이의 캔버스 작품에 담겨 있다.
2005년에는 헬리콥터에서 대형 캔버스에 물감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트레비 같은 역사적인 장소에서도 펼쳤다. 그가 남기고 싶은 작품은 단순히 캔버스에 남아 있는 흔적이 아니라 작가의 몸과 재료의 관계 자체를 퍼포먼스로 보여주며 기록하고 싶었던 것이다. 뉴욕 타임스의 미술 평론가 로버타 스미스는 그를 1950년대 전후 국제 미술계에서 가장 대담하고 독립적인 실험주의자 중 한 명으로 평가했다.
전후 구타이 운동의 세계 미술사적 영향과 의미
구타이 작가들은 그들의 몸과 생활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재료들과 긴밀하게 관계하며 가짜와 전통의 양식과, 아카데믹 회화를 거부했다. 그들의 예술 행위는 정신과 연결되며 인간이 자유롭다는 것을 보여주고 물질과 인체가 직접 상호작용하기를 원했다. 전쟁과 군국주의 그리고 사회적 관습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으며 기술과 야외 공간, 그리고 상호작용하는 공공 예술을 활용해 현대 미술을 선도했다.
구타이는 미국의 '해프닝'과 유럽의 퍼포먼스 아트보다 앞서 존재하며 일회적 사건, 행동, 그리고 관객들을 함께 참여시키는 플럭서스와 같은 그룹에도 영감을 주며 세계 추상미술사에 중심이 되는 족적을 남겼다. 그들은 일본 예술문화가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에 올라갈 수 있도록 파격적이고 미술 형태의 한계를 넘어서는 작품들을 남겼지만, 정작 일본의 대중사회는 구타이의 입지를 체감하고 있지 않다.
나는 그들의 도전과 실험정신을 보며 우리가 외면하고 무시했던 일본의 문화 역사의 역량과 품위를 경애하며 우리와 함께 공유하고 발전시켜 서구 주도의 미술 역사에 아시안만의 독창적인 예술 문화를 세계와 나누길 원한다. 구타이 운동의 그 영화롭던 시대가 부활하여 세계 미술사의 전환 시대가 도래하기를 고대한다.
여성경제신문 윤세라 Glenstone Museum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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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라 Glenstone Museum 근무
한양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교육심리를 부전공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재직 중 1997년 도미하여 Northern Virginia Community College(NOVA)와 조지타운, 조지 워싱턴, 조지 메이슨 대학교에서 미술사와 지질학 등을 수학했다. NOVA 지질학 랩(Geology Lab) 연구 부교수와 메릴랜드 포토맥의 글렌스톤 뮤지엄(Glenstone Museum)에서 근무하며 학술과 예술을 넘나드는 전문성을 쌓았다. 2023년 귀국 후 설악산 한계령에 농업회사법인 모란재를 설립했으며, 현재 자연과 농업, 전통과 예술을 결합한 뮤지움을 기획함과 동시에 Upper East 전시기획사 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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