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스테이지] 71세에도 벗지 않은 토슈즈… 조윤라의 시간은 아직 현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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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스테이지] 71세에도 벗지 않은 토슈즈… 조윤라의 시간은 아직 현재형

뉴스컬처 2026-08-07 12:2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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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조윤라. 사진=MCT
발레리나 조윤라. 사진=MCT

 

[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지금도 무대에 설 수 있음에 감사하고, 공연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발레리나 조윤라가 71세 나이에 다시 토슈즈를 신는다. 1966년 발레 입문 후 60년이 흘렀다. 어린 무용수 시절, 일본 발레단 활동, 발레블랑 창단, 안무가 데뷔, 대학 교수, 발레단 대표를 거쳐 2026년 현역 무용수에 이른 긴 시간을 신체 언어로 재해석한다. 과거 회고에 얽매이지 않고 노화하는 육체, 무용가의 굳은 의지, 다가올 미래를 무대 위에 펼쳐낸다. 

조윤라 발레 인생 60주년 기념 공연 '어제…오늘 그리고 내일은 Ⅲ'은 1995년 창무포스트극장에서 초연한 자전적 연작의 세 번째 작품이다. 2012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두 번째 무대를 선보인 후 14년 만에 돌아왔다. 초연 시점부터 31년간 한 안무가의 삶과 신체 변화를 하나의 연작 안에 기록했다. 조윤라는 세 번째 작품을 연작의 마침표로 구상했다. 60년간 경험한 무대의 환희, 예술가의 현실적 고뇌, 나이 들며 변하는 신체, 여전히 춤추려는 의지를 세 구간에 담았다. 형식적인 기념식 성격을 배제하고 무용가 개인의 생애를 자전적 창작 발레로 재구성했다.

◇'흐르는 거리', '추억의 시간', '새로운 길'

프로그램은 '흐르는 거리', '추억의 시간', '새로운 길' 세 부분으로 나뉜다. 안무는 조윤라가 직접 맡았다. 공연 전반을 지배하는 이미지는 안개다. 짙은 안개 속에서 홀로 선 인물이 자신의 향방을 묻는다. 과거, 현재, 미래를 직선적 연대기 대신 서로 교차하는 기억의 형태로 다룬다. 젊음은 지나간 시절에 국한할 이유가 없으며 현재의 육체 안에서 약동하고, 미래는 계속 춤추기 위해 감당해야 할 현실로 다가온다.

첫 막 '흐르는 거리'는 이동과 시간 감각을 앞세운다. 60년 무용 인생을 사건별로 나열하는 대신 멈추지 않는 삶의 속도 안에서 무용가의 몸이 어떻게 변모했는지 탐색한다. 이동 방향, 보행 속도, 정지 직전의 몸짓, 발걸음을 떼기 전의 망설임은 나이 든 무용수의 시간성을 나타낸다. 두 번째 막 '추억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의 몸을 대조한다. 20대 시절 동작을 71세 신체로 완벽히 재현하는 데 집착할 이유가 없다. 과거 기교 복원보다 동일한 동작이 수십 년 후 어떤 질감으로 변모했는지 집중한다. 회전 횟수나 다리 높이 대신 움직임 직전의 호흡, 발을 내린 후의 정지, 팔끝 방향에서 세월의 흔적을 감지하도록 유도한다.

마지막 막 '새로운 길'은 회고 이후 다가올 시간을 조명한다. 60주년을 경력의 종착점으로 여기기 쉽지만, 조윤라에게 2026년은 현역 무용수로서 겪는 한 지점일 뿐이다. 공연 제목에 '내일'을 명시한 까닭도 과거 정리에 매몰될 이유가 없다는 굳건한 다짐이다. 세 구간을 관통하는 핵심은 과거와 현재 신체 능력의 우열을 가리는 무의미한 과정 배제다. 고도의 신체 능력을 요구하는 발레에서 노화를 어떻게 예술 언어로 승화시킬지가 핵심 질문이다.

발레리나 조윤라. 사진=MCT
발레리나 조윤라. 사진=MCT

 

◇1966년 발레 입문… 육체 경험을 창작 언어로 승화

조윤라는 1966년 발레에 입문했다. 이화여대 진학 후 홍정희 교수를 사사하며 전문 무용가 길로 들어섰다. 스승의 추천을 받아 일본으로 건너가 1978년부터 3년간 다니모모꼬발레단 단원으로 활약했다. 귀국 후 한국 창작 발레 토대를 다지는 데 앞장섰다. 1981년 홍정희 교수를 중심으로 김민희, 김정숙 등 여러 무용수와 의기투합해 '발레블랑'을 창단했다. 발레블랑은 고전 레퍼토리 재현에 치중하던 국내 무용계에 창작 발레의 지평을 개척한 단체다.

1984년 대한민국무용제에서 '수레'를 발표하며 안무가로 데뷔했다. 이후 1987년 '길 떠나는 바람', 1999년 '펠리아스와 멜리장드', 2013년 '스크루지' 등을 꾸준히 선보였다. 솔로 작품 '축배' 이후 'Waltz#' 연작 10편을 제작하는 등 왕성한 창작열을 과시했다. 직접 출연한 2인무 작품은 15편, 안무를 맡은 소품은 10편에 달한다.

60년 경력 중 돋보이는 강점은 공연자와 안무가 역할을 철저히 병행한 태도다. 무대에 서며 얻은 신체 경험을 창작 소재로 활용했고, 안무 과정에서 도출한 고민을 다시 몸짓에 투영했다. 고전 발레 훈련을 거친 무용수가 창작 영역으로 이동할 때 기존 문법 폐기가 정답이라 단정하기 어렵다. 정확한 중심 이동, 신체 선, 음악 해석력 등 고전적 기법을 새로운 서사에 입히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조윤라의 작품에는 문학적 뼈대와 개인적 기억이 빈번히 등장한다. 자전적 연작은 생애 자체를 창작 원천으로 삼은 산물이다. 71세 나이에 세 번째 연작을 무대에 올리는 행위 자체가 작품의 메시지다. 후배 무용수에게 동작을 지시하는 수준에서 멈춘다면 60년 세월은 과거 기록에 불과하다. 그가 현역 무용수로 직접 무대에 오름으로써 세월의 더께는 살아있는 신체 언어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노화에 따른 근력 저하, 관절 가동 범위 축소, 회복 속도 지연은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 반면 연륜이 빚어낸 깊은 음악 해석, 경제적인 움직임, 농밀한 감정 표현은 노련한 예술가만이 쟁취한 강력한 무기다. 신작은 이 두 조건 사이에서 조윤라가 어떤 춤을 택할지 증명하는 무대다.

◇후학 양성과 창작 레퍼토리 개발, 대중화

현재 충남대 명예교수, 한국발레연구학회 이사장 등을 맡고 있는 조윤라는 1998년부터 2020년까지 충남대 무용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교육자로서의 발자취는 개인 예술 활동과 밀접하게 엮여 있다. 강단에 서는 동안 꾸준히 무대에 올랐고, 대전을 거점으로 창작 발레 제작에 매진했다. 수도권 위주 발레 생태계 밖에서 대전 지역 무용계 발전을 견인한 공로가 지대하다. 안무, 연기, 학술 연구를 아우르는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한국발레협회상 올해의 예술가상(2014), 대한민국 무용대상 우수상(2015), 한국춤평론가상 특별상(2023) 등을 품에 안았다. 특히 2016년 안무작 '황진이'로 대전무용제 대상과 전국무용제 은상을 거머쥐며 장기적인 창작 역량을 입증했다.

1995년 출범한 조윤라발레단은 고전 발레 기법을 토대로 다양한 창작 레퍼토리를 발굴했다. '해설이 있는 발레'(2004), '찾아가는 발레이야기'(2008) 등 대중 친화적인 기획을 도입해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주력했다. 창작물 제작에 얽매이지 않고 잠재 관객 발굴과 지역 문화 소외 계층 해소에 힘쓴 결실이다. 세 번째 자전적 연작 무대에는 공연자, 안무가, 교육자, 단체장으로서 치열하게 살아온 수십 년 세월이 응축돼 있다. 대학 강의실과 연습실, 지역 공연장을 부지런히 오간 땀방울이 무대 위에서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발레리나 조윤라. 사진=MCT
발레리나 조윤라. 사진=MCT

 

◇'71세 현역' 수식어 이면의 땀방울

'71세 현역 발레리나'라는 타이틀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고강도 훈련이 필수적이며 신체 노화와 직결되는 발레 장르 특성상 극히 이례적인 사례다. 예술적 성패는 나이라는 희소성보다 현재의 신체를 어떻게 매력적인 안무 언어로 번역하느냐에 달렸다. 과거 기술을 그대로 복제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반면 현재의 호흡, 움직임의 제약마저 창작 요소로 수용한다면 60년 세월은 젊은 무용수가 범접하기 힘든 독보적 자산이 된다.

발끝으로 체중을 버티는 '포앵트' 기술은 발목과 종아리에 극심한 부담을 준다. 이런 맥락에서 조윤라가 다시 신은 토슈즈는 청춘의 상징을 초월해 매일 반복한 고된 훈련의 응축물이다. 현재도 매일 아침 연습실로 향해 구슬땀을 흘린다. 과거 인터뷰에서 발레를 "신앙처럼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행복을 찾게 해준 존재"로 묘사하기도 했다. "지금도 춤출 수 있어 감사하며,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길 희망한다"는 그의 말에서 공연 지향점을 엿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춤추고 있다는 굳건한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젊음을 유지한 기적을 과시하는 대신 세월의 순리를 수용한 무용수의 담담한 고백록이다. 1984년 첫 안무작을 올렸던 안무가는 2026년 가을, 마포아트센터에서 자신의 생애를 한 편의 예술로 완성한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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