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김성민 기자·박희영 기자 = 국민체육진흥법을 위반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이상현 전 한국청년회의소(JC) 중앙회장이 대한체육회 산하 경기단체의 부회장으로 확인됐다. 정작 해당 연맹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스포츠 경기를 대상으로 한 불법도박 사이트 운영에 가담한 인물이 국가대표 선수와 종목을 관할하는 대한체육회 회원종목단체의 부회장이 된 셈이다.
이유는 범죄 경력을 직접 확인하지 않고 임원 후보자가 작성한 ‘결격사유가 없다’는 서약서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이씨가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부회장으로 선임된 과정을 들여다보니 체육계 임원 검증 시스템의 허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사라진 양심
“범죄 이력 조회 과정은 없어요. 다 서약서를 냅니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이하 봅슬레이연맹) 관계자가 <일요시사>에 밝힌 임원 검증 방식이다.
봅슬레이연맹에 따르면 부회장과 이사 등 임원은 대의원총회에서 선임한다. 대의원총회가 임원 선임 권한을 회장에게 위임할 경우 회장이 직접 임원을 선정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임원 후보자가 범죄 전력을 가졌는지 봅슬레이연맹이 직접 확인하는 절차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봅슬레이연맹 관계자는 “(봅슬레이연맹이) 범죄 경력을 다 일일이 조회하지 않고 대신 임원 후보가 ‘결격사유 규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제출한다”고 설명했다. 말 그대로 ‘셀프 검증’인 셈이다.
후보자가 자신에게 결격사유가 없다고 판단해 서약서를 제출하면 이를 전제로 임원 선임 절차가 진행된다. 과거 범죄 전력이 있더라도 본인이 밝히지 않거나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봅슬레이연맹이 이를 사전에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현재 봅슬레이연맹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상현씨는 2018년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 운영에 가담한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청주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이씨는 국민체육진흥법위반(도박개장등) 및 도박공간개설 혐의로 기소돼 2018년 7월3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판결은 같은 해 11월16일 확정됐다.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에도 2024년 부회장 선임
연맹 “범죄 이력 조회 안 해…본인이 서약”
단순한 인터넷 도박 사건이 아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조직은 중국에 운영 사무실을 두고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운영했다. 국내서는 사이트 운영에 필요한 통장을 모집하고 중국 현지에서는 사이트 운영과 회원 관리, 송금 업무 등을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을 나눴다.
이씨는 다른 공범들과 함께 2015년 3월경부터 2017년 1월경까지 범행에 가담했다. 법원은 이씨가 국내서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에 필요한 통장을 모집해 중국 운영 사무실에 제공하는 역할 등을 한 것으로 인정했다. 사이트에서는 축구와 야구, 농구 등 운동경기는 물론 사다리게임과 달팽이 레이싱, 포커 등에 돈을 걸 수 있었다.
재판부는 범죄의 폐해도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가 일반 국민들의 도박 접근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과도한 사행심을 조장하고 건전한 근로 의식을 저해해 사회적 해악이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씨에게 불리한 사정으로 ‘범행으로 인한 수익 또는 영업의 규모가 큰 점’을 들었다. 다만 이씨의 가담 정도가 다른 공범들과 비교해 제한적이었고, 얻은 이익이 두드러지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일요시사>가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김재원 의원실(문화체육관광위원회)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이로부터 6년 뒤인 2024년 이씨는 봅슬레이연맹 임원으로 들어왔다. 봅슬레이연맹은 이 과정에서 이씨의 범죄 경력을 직접 조회하지 않았다.
<일요시사>가 “국민체육진흥법 위반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이 현재 부회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고 설명하자 봅슬레이연맹 관계자는 “(임원 중에) 집행유예가 없으실 텐데”라며 관련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씨라고 밝히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봅슬레이연맹 관계자는 판결 시점을 확인한 뒤 “그러면 2020년에 집행유예가 끝나신 것”이라며 “이분이 2024년도에 저희 임원으로 들어오셨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들어오셨을 때 서약서를 내셨다”며 “본인이 이거를 판단하셨는지 모르겠으나 그 시점에서는 집행유예가 끝났다고 보시니까 내셨지 않았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봅슬레이연맹이 이씨의 과거 범죄이력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뒷배’엔 강신성 전 한국JC중앙회장
김민석 총리 불법 정치자금 공여·후원 관계 논란
봅슬레이연맹 측은 현재 이씨의 판결 내용과 관련 규정을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저희 내부적으로 확인하고 있다”며 “만약에 이게 문제가 된다면 사실 확인되는 순간 바로 해임”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자격 여부’와는 별개로 또 다른 문제가 남는다. 후보자가 제출하는 서약서에 의존한다면 임원의 과거 경력을 실질적으로 검증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정부도 최근 체육단체 임원의 결격사유 확인을 위한 범죄 경력 조회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일요시사>가 취재한 봅슬레이연맹 관계자는 현재 임원 검증 방식을 설명하면서도 “범죄이력 조회는 없다”고 말했다. 법적 제도와 현장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얘기다. 이번 논란이 이씨 개인의 자격 문제를 넘어 체육단체 전체의 임원 검증 시스템 문제로 확대되는 이유다.
혁신당 김재원 의원은 “봅슬레이연맹은 국민체육진흥법상 임원 결격사유를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서약서만 제출받고 임원을 선임해 왔다. 법률이 정한 취지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형식적 검증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연맹 스스로 ‘믿고 뽑는’ 방식으로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인사 검증이 이뤄질 수 없다”며 “이제는 서약서 한 장에 의존하는 관행을 끝내고, 객관적인 결격사유 확인 절차를 의무화해 체육단체의 인사 시스템 전반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씨가 체육계로 들어온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JC 인맥’도 눈길을 끈다. 이씨는 한국JC중앙회장을 지냈다. 한국JC중앙회장 출신인 강신성 전 회장은 봅슬레이연맹의 제7·8·10대 회장을 지냈다. ‘한국JC중앙회장’ 출신 인사가 같은 봅슬레이연맹의 회장과 부회장으로 이어진 셈이다.
한편, 강 전 회장을 둘러싼 정치권 논란도 거세다. 강 전 회장은 김민석 국무총리와 오랜 관계를 이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김 총리의 과거 정치자금법 사건에서 자금 공여자로 지목됐고, 이후 김 총리의 국회의원 후원회장을 맡은 이력 등도 정치권에서 논란이 됐다.
수상한 커넥션
김 총리 인사청문 과정에서도 야권은 강 전 회장을 과거 불법 정치자금 공여자로 지목하며 두 사람의 금전 관계를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강 전 회장이 2018년 김 총리에게 상당한 금액을 빌려준 사실과 이후 후원회장을 맡았던 점 등을 놓고 야권에서는 ‘스폰서’ ‘정치자금 로비’ 의혹까지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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