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쏟아지는 호기는 대개 '나를 아무도 특정할 수 없다'는 믿음 위에 서 있다. 그 믿음이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지가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에서 벌어진 소동으로 드러났다. 스스로 흘린 몇 조각의 정보와 공개된 기록 몇 장이 맞물리자 몇 달간 다른 회원들을 겨냥해 수많은 조롱을 뱉은 남성이 하루아침에 발가벗겨진 처지가 됐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발단은 부동산 채널이었다. 나스닥에 상장된 미국계 회사에 다닌다고 밝힌 50대 이용자 A씨는 무주택자였다. 집을 사기 전 A씨는 "지금 가격은 거품이다. 당연히 내려가야 한다"며 하락을 점쳤다. 무주택자라는 점을 앞세워 젊은 이용자들에게 훈수를 두던 그의 언사는 훈수를 넘어 조롱과 비하로 흘렀다.
자신에게 딴지를 거는 이용자를 향해 A씨는 "나스닥에 상장된 회사가 ‘듣보잡’이냐. 그냥 웃고 간다", "엔지니어들에겐 정년이 없다. 헛소리하지 말고 가서 일이나 하라", "똘똘한 한 채를 없애고 합산 과세를 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서울에 살아야지 왜 노인들이 수입도 없으면서 서울에 사느냐", "부자는 부자끼리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끼리 살면 된다" 등의 조롱을 건넸다.
특히 A씨는 자신의 연봉을 무기처럼 앞세웠다. 자신보다 어린 이용자들에게 연봉 명세를 들이대며 "연봉 1억원을 받는 내가 뭘 모르겠느냐"는 식으로 상대를 눌렀고, 자신에게 반박하는 젊은 이용자들을 '중소기업이나 다니는 애들'이라는 취지로 깎아내렸다. 한 이용자는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연봉 명세서를 공개하며 으름장을 놓았다"고 당시 정황을 전했다.
태도가 완전히 뒤집힌 것은 A씨가 수원 지역의 한 신축 아파트를 5억원대에 사들인 뒤였다. 집값이 하락할 것이라고 외치던 A씨는 돌연 자신이 산 단지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여기 좋다. 대단지 신축이고 평지다. 단지에서 5분 안에 버스 정거장이 있고 버스를 타면 10분이면 지하철"이라고 말했다. 집값이 더 오를 것이냐는 물음에는 "폭등을 점치는 사람들이 계속 활동해 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답했다. 급기야 "10억원이 되면 팔고 떠나겠다. 평생 놀고 살려고 한다"고 으스댔다. 한 이용자는 "등기를 치기 전에는 폭락한다고 하더니, 등기를 치고 나서 가격이 오르니 폭등한다고 말을 바꿨다. 미국, 수원, 50대, 연봉 1억원, 이 네 단어로 압축되는 삶"이라고 꼬집었다.
문제는 A씨가 자신의 우위를 증명하려는 과정에서 스스로 지나치게 많은 것을 노출했다는 점이다. A씨는 회사가 미국계라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했고, 급여명세서 일부를 캡처해 게시판에 올리기까지 했다. 실수령 월 600만원 수준이라는 액수와 각종 수당·공제 항목이 그대로 담긴 명세서였다. 자신의 처지를 과시하려던 자료가 자신의 정체를 좁히는 단서로 되돌아왔다.
A씨를 벼르던 다른 이용자 B씨가 이 조각들을 이어 붙이기 시작했다. B씨는 A씨가 그동안 자진해서 공개한 회사 성격, 거주 지역, 매입 시점, 급여 정보를 하나씩 대조하며 "공개된 기록만 몇 개 확인해도 신원을 특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A씨가 뒤늦게 원 게시물과 댓글을 지웠지만 소용없었다. B씨는 "이미 다 캡처해뒀다"며 "이제 당신은 발가벗겨진 상태다. 미국이 아니라 어디로 가도 도망갈 수 없다"고 압박했다.
B씨의 공세는 단순한 신상 추적에 그치지 않았다. B씨는 A씨가 회사 기밀에 해당할 수 있는 급여 정보를 불특정 다수가 보는 공간에 스스로 유출했다는 점을 물고 늘어졌다. 나아가 A씨가 다닌다고 밝힌 회사 측에 "직원이 회사 급여 정보를 외부에 공개한 정황을 제보하겠다"고 예고했다.
다른 이용자들 역시 추적에 가세했다. 한 게임회사 재직자는 “자체 튜닝한 AI 에이전트 모델을 활용해 해당 기업의 위치와 오피스 정보를 5초 만에 확인했다”며 “소득 정보가 원 단위까지 나와 있다면 인사팀은 엑셀 파일로 단 2초 만에 대상자를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지켜보던 이용자들의 반응은 갈렸다. "직접 올린 정보로 자멸한 것"이라며 A씨의 경솔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B씨 방식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한 이용자는 "스스로 조각난 정보를 공개한 것과 타인이 그 정보를 모아 남의 집 등기부까지 열람해 신원을 특정하겠다고 공개 게시판에 올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짚었다. "온라인에서 부동산 말다툼으로 감정이 이렇게까지 상할 일인가"라는 반응도 나왔다.
타인의 신상을 특정해 공개된 공간에 밝히는 행위는 당연히 위법한 행위다. 신상을 특정했다며 상대를 압박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먼저 잘못했다는 사정만으로 면책되지 않는다. 현재 A씨는 관련 글을 대부분 삭제한 채 침묵하고 있다.
Copyright ⓒ 위키트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