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사교육 시장만 더 불타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논술학원만 쾌재를 부르는 소식이다”, “지금도 등골이 휘는데 뭘 더 시켜야 하나...”
6일 최근 이재명 정부 교육정책에서 새롭게 거론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절대평가와 서·논술형 문항 도입을 두고 확인된 학부모들의 반응이다. 평가 방식이 바뀌더라도 입시 경쟁 자체가 완화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사교육 시장이 커지고 자녀의 입시 실패 위험과 가계 부담만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앞서 경기도교육청은 2032학년도 수능부터 5단계 절대평가를 적용하고 서·논술형 문항을 도입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고교 내신 절대평가와 수시·정시 통합까지 포함한 대입 체제 전반의 개편안이다. 이후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 교육감협의회,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참여하는 논의로 이어지면서 수능 절대평가와 서·논술형 전환은 차기 대입 개편의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이재명 대통령도 객관식 중심 평가 방식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교육부·국가교육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객관식 시험에 대해 “주관적 사고를 하는 게 아니라 제시된 데서 고르는 역량을 강요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AI 시대에는 정답을 찾는 능력보다 질문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역량이 중요하다는 취지다. 같은 자리에서 서·논술형 평가가 대안으로 거론되면서 수능과 내신의 평가 방식 전환 논의에도 힘이 실렸다.
절대평가와 서·논술형 시험은 몇 점 차이로 학생을 줄 세우는 평가에서 벗어나 분석력과 표현 능력을 중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수능의 변별력이 낮아질 경우 대학별 논술·면접이나 내신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사교육 부담이 다른 형태로 옮겨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십만 명을 대상으로 한 서·논술형 시험에서 채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어떻게 확보할지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학부모와 일부 교육계에서 제기되는 이 같은 우려는 수도권 상위권 대학을 둘러싼 경쟁 구도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평가 방식만 바꿔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대학 간 서열과 선호도 격차가 유지되는 한 경쟁이 다른 전형으로 옮겨갈 뿐 사교육 수요 역시 크게 줄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이재명 정부의 교육개혁 논의도 수능 개편과 더불어 대학 간 격차와 수도권 쏠림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지방대 등록금 지원 확대 등 지역대학의 경쟁력을 높여 대학 서열구조를 완화하려는 정책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대통령에게 지난 5일 전달된 교육부 업무보고 자료를 보면 ‘지역’이라는 단어가 43차례 등장한다. 수도권과 상위권 대학으로 쏠린 교육 기회를 지역으로 분산하고 장기적으로 대학 간 격차와 과도한 입시 경쟁을 완화하려는 정책 방향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가장 먼저 구체적인 실행 단계에 들어선 정책은 지방대 육성이다. 정부는 이른바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구체화해 올해 거점국립대 3곳을 우선 선정, 지역 전략산업과 연계한 교육·연구 거점으로 집중 육성하기로 했다. 대학당 약 1000억원의 추가 재정을 투입하는 방안으로 현재 지원 대학 선정을 위한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지역 대학을 선택하는 학생들의 경제적 부담을 낮추기 위한 장학 지원 확대도 같은 맥락이다. 교육부는 2027학년도부터 30개 지방 국립대 신입생 약 6만명을 대상으로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는 ‘지역 균형 장학금’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 사립대에 진학하는 우수 학생에 대한 장학 지원도 확대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지역대학의 채용조건형 계약학과 규모를 수도권 대학 수준으로 늘려 진학 이후 취업까지 연계한다는 구상이다. 지역 대학 진학과 취업·정주를 하나의 경로로 연결해 청년들의 지역 유입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이 같은 지역대학 육성이 실제 대학서열체제 완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두고는 교육계 내부에서도 견해가 엇갈린다. 교육의봄·사교육걱정없는세상·좋은교사운동이 지난 7월 15일 연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 점검 토론회’에서는 정책의 목표와 실효성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김태훈 정책위원장은 토론회에서 “현재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의미 있는 출발이지만 당초 정책이 겨냥했던 대학서열체제 개혁이라는 문제의식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 정책은 단순한 지역균형발전이 아니라 입시경쟁과 교육지옥을 낳는 대학서열체제에 균열을 내기 위한 고등교육 개혁안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거점국립대 육성에 그칠 경우 대학 간 순위만 일부 바뀐 채 기존 서열구조가 유지될 수 있다”며 “서울대의 명칭과 상징자본을 공유하는 대학연합체제를 구축하고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국공립대와 사립대가 참여하는 방향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수능의 줄 세우기를 완화하더라도 대학 간 격차가 그대로라면 입시 경쟁은 다른 전형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역대학 지원 역시 대학의 실질적인 경쟁력과 학위 가치를 높이는 데까지 이어지지 못한다면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이날 논평을 통해 “상대평가 체제를 그대로 둔 채 객관식 문항만 서·논술형으로 바꾼다면 줄 세우기의 도구만 더욱 정교하고 값비싸게 바뀔 가능성이 있다”며 “논·서술형 평가 확대 자체가 사교육 확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평가를 유지한 채 이를 도입하는 땜질식 개편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학교 교육과정과 수업, 학교평가, 대학입시를 하나의 체계로 연결해야 한다”며 “이 같은 토대 위에서 추진될 때 서·논술형 평가는 학생의 사고력과 창의성을 기르고 학교교육을 정상화하는 미래형 평가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짚었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