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앞둔 구룡마을, 주민들의 조용한 외침, "우리는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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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앞둔 구룡마을, 주민들의 조용한 외침, "우리는 어디로"

아주경제 2026-08-06 11:26:2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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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한 주민이 굴착기 인근에서 진행되는 철거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AJP 유준하
5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한 주민이 굴착기 인근에서 진행되는 철거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AJP 유준하

살인적인 폭염이었다. 잠시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른 아침부터 기온은 이미 30도를 훌쩍 넘었고, 습도까지 겹쳐 철거는커녕 야외에 버티고 서 있는 것조차 곤욕이었다.

그런 날씨 속에서도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는 굴착기 한 대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흙더미와 파이프, 뒤틀린 철근, 찢긴 파란 천막 사이를 오가며 잔해를 걷어냈다. 안전모를 쓴 인부들은 골함석 가림막 너머로 남은 구조물을 하나씩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 가림막 뒤에서, 몇몇 주민들은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서울시가 철거 일정을 확정한 뒤 남은 화재민 이제 10여 명뿐이다. 이들은 자신의 집과 생계, 안전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뚜렷한 답을 듣지 못한 채,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 이 자리에서 홀로 피말리는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아주경제는 서울시가 '강남 최후의 판자촌'으로 불리는 구룡마을 재개발에서 또 한 번 큰 고비를 넘긴 시점에 맞춰 현장을 찾았다.

지난달 21일, 서울시 제3차 공공주택 통합심의위원회는 개포 구룡마을 공공주택 건설사업 M·B2블록 계획을 조건부로 통과시켰다. 두 블록에는 통합공공임대 758가구, 서울시 미리내집 장기전세 1342가구, 공공분양 20가구 등 총 2120가구가 들어선다. M블록은 최고 15층 규모로 300가구가, B2블록은 최고 28층 규모로 1820가구가 각각 조성될 예정이다.
 
5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재개발 현장에서 굴착기가 흙과 잔해를 걷어내고 있다. AJP 유준하
5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재개발 현장에서 굴착기가 흙과 잔해를 걷어내고 있다. AJP 유준하

서울시는 올 하반기 중 건설계획 승인을 마치고 2027년 착공, 2031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후 인허가 절차에 따라 세부 계획은 바뀔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시기 강남구는 폭염 대응에도 분주했다. 

강남구청에 따르면 김현기 구청장은 지난달 30일과 이달 3일, 4일 세 차례 마을을 직접 찾아 냉방시설과 식수, 의료 지원 상황을 점검했다. 구는 지난 4일 SH공사와 함께 주민들이 모이는 공간 두 곳에 이동식 에어컨 3대를 추가로 설치했고, 강남수도사업소를 통해 아리수 생수 1000병을 긴급 공급했다. 폭염중대경보 발령에 따라 이달 4일부터 14일까지는 임시 진료소도 운영한다. 첫날에만 주민 13명이 진료소를 찾았다.

하지만 주민들에게 이런 조치는 가뭄에 단비는커녕, 곧 사라질 마을에 잠시 뿌려진 물 한 방울일 뿐이다. 배씨를 비롯한 주민들이 정작 요구하는 것은 철거 이후의 보상과 재정착 문제이다. 
 
5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공사 구역을 따라 인부들이 철제 가림막을 설치하고 있다 AJP 유준하
5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공사 구역을 따라 인부들이 철제 가림막을 설치하고 있다. AJP 유준하

서울시로서는 반가운 진전이다. 땅값이 비싼 강남 한복판에 안전한 주거지와 대규모 공공주택을 조성하려는 사업이 한 걸음 더 나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마을을 떠나지 못한 주민들에게 새 아파트 계획은 당장 눈앞에 놓인 물음에 답이 되지 못한다. 삶의 터전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이주는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훗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이런 질문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보상이 먼저다"

마을에 남은 주민 중 한 명인 배씨는 반복된 화재로 집을 잃은 이웃들을 대표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배씨는 "우리가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은 새 단지에 입주할 권리나 임대주택이 아니다"라며 "우리 재산을 제대로 된 주거지로 인정하고, 그에 맞게 보상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당수 가옥이 콘크리트 기초와 보일러, 지지 기둥, 창문, 부엌까지 갖추고 있는데도 보상 산정 과정에서는 '주거시설'이 아닌 '임시 구조물'로 분류돼 왔다고 주장했다. 번지수가 매겨진 문패, 상수도 사용, 수십 년간 낸 세금까지 있는데도 말이다. 배씨는 이런 것들이야말로 이곳이 오랫동안 평범한 살림집으로 기능해왔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배씨는 화재 피해를 입은 일부 가구가 제시받은 보상액이 수백만 원대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실제 보상 액수는 가구별 점유 형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는 임시 거처를 제공받는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더 큰 물음, 즉 재개발이 끝난 뒤 정말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느냐는 여전히 남는다는 것이다.
 
5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내 도로에 주민과 관계자들이 모여 있다 인근에서는 재개발 관련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AJP 유준하
5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내 도로에 주민과 관계자들이 모여 있다. 인근에서는 재개발 관련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AJP 유준하

"임시 임대주택을 제공받는 게 끝이 아니다"라고 배씨는 말했다. "공사가 끝난 뒤 어떻게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그 부분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배씨는 철거 전에 명확한 재정착 보장이 마련되지 않으면, 지금 남아 있는 주민 중 실제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시의 재개발 계획에는 기존 거주자를 위한 통합공공임대주택 공급 방침이 담겨 있다. 그러나 분쟁 중인 가구를 어떻게 분류할지, 개별 보상금을 어떻게 산정할지, 재입주 시 각 가구가 얼마를 부담해야 할지는 아직 명시돼 있지 않다.

낯설지 않은 중장비
 
5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굴착기 한 대가 판잣집과 그 위로 지나는 전선 근처에 서 있다 AJP 유준하
5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굴착기 한 대가 판잣집과 그 위로 지나는 전선 근처에 서 있다. AJP 유준하

주민들에게 굴착기의 등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2월 6일, 강남구청은 주민자치회관으로 쓰이던 임시 건축물의 존치 기한이 만료돼 위법 건축물이 됐다며, 안전 문제까지 거론하면서 행정대집행에 나섰다. 주민들은 이 건물이 마을에 남은 유일한 공동체 공간이라며 철거에 맞섰다. 이후 서울행정법원이 집행 정지를 결정했지만, 이미 건물 상당 부분은 파손된 뒤였다.

이번 철거와 2015년 철거가 같은 법적 절차를 밟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때의 충돌을 떠올리면, 왜 마을 주민들에게 중장비가 단순한 공사 장비가 아니라 마을의 또 다른 조각이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번에는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다. 일부 주민만이 가림막 너머로 굴착기가 잔해를 헤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봤을 뿐이다. 세간의 관심은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간 지 오래지만, 여전히 마을에 남은 이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게 될지, 혹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5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한 주민이 공사 현장 쪽을 가리키고 있다 판잣집 인근에는 인부와 방문객들이 서 있다 AJP 유준하
5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한 주민이 공사 현장 쪽을 가리키고 있다. 판잣집 인근에는 인부와 방문객들이 서 있다. AJP 유준하

서울시는 올해 안에 건설계획을 확정하고 2027년 착공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시 입장에서 이 사업은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을 2000가구가 넘는 새 공공주택으로 대체하는 과정의 또 다른 단계일 뿐이다.

하지만 배씨에게 재개발을 가늠하는 기준은 따로 있다.

그는 정부로부터 조용히 나가는 조건으로 500만원을 제안받았다고 했다. 공공임대주택 보증금조차 채우기 빠듯한 액수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의 등 뒤에서는 또 다른 굴착기가 한때 집들이 늘어서 있던 자리를 밀어내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진짜 갈 곳이 없습니다." 배씨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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