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여러분,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 어디인지 다들 아시죠? 굳이 잠실 근처가 아니더라도 서울 웬만한 곳에서는 어디서든 보이는 압도적인 건물이 하나있죠. 바로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타워'입니다. 123층, 높이 555미터. 화려한 서울 야경의 중심이자 '롯데'라는 브랜드가 가진 엄청난 자본과 힘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죠. 그런데 오늘은 이 높고 화려한 건물에 담긴 수많은 사건과 사연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롯데월드타워에 얽힌 이야기부터 그 뒤에 숨은 롯데그룹의 비화까지, 지금 만나보시죠.
[마천루를 향한 신격호 회장의 집념과 결실]
'롯데월드타워'의 역사를 말할 때 이 사람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바로 롯데그룹의 창업주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입니다. 사실 롯데월드타워는 단순한 부동산 개발 사업이나 수익을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었습니다. 일본에서 껌을 팔며 롯데를 거대한 기업으로 키워낸 신격호 회장이 수십 년 동안 품어온 숙원사업이었죠. 자신이 평생 일군 롯데를 상징할 만한 건물, 서울 한복판에 오래도록 남을 랜드마크를 세우고 싶었던 겁니다.
1980년대, 당시에 신격호 명예회장이 자주 하던 말이 있었어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한국에도 파리 에펠탑 같은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있어야 합니다." 이른바 '관광 보국'이라는 확고한 신념이었죠. 그리고 1987년, 이 꿈을 현실로 옮기기 시작합니다. 잠실에 약 2만6000평 규모의 땅을 그 당시 돈으로 무려 819억원에 사요. 지금 돈으로 수천억대죠. 그리고 지금이야 잠실이 막 화려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뭐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여기다가 당시 제일 높은 건물이었던 63빌딩(약 250m)보다 2배나 높은, 10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고 한 거죠. 그런데 막상 공사를 하려고 보니까 문제가 있었어요. 근처에 있는 서울공항, 흔히 성남비행장이라는 군 공항 때문이었는데요. 여기 100층이 넘는 건물이 들어오면 전투기 이착륙에 위험하다 이거죠. 국방부랑 공군이 결사반대를 한 겁니다.
어떡해요 그럼. 다른 문제도 아니고 국민의 안전이 걸린 국가 안보와 관련된 문제라고 하니까요. 무슨 명분을 가져와도 상대가 안 됐겠죠. 그런데 신격호 명예회장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정권이 몇 번이고 바뀌는 동안 계속 이방법 저방법 내놓으면서 계속 두드린 거죠. 건물 높이를 낮추라는 요구도 있었는데, 신격호 명예회장은 "아니, 100층 이상이 아니면 의미가 없어."하고 버텼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돌파구가 마련됩니다. 서울공항의 활주로 방향을 3도 정도 조정하는 방안이 받아들여지면서 최종 건축 허가가 난 겁니다. 롯데는 여기서 활주로 변경에 들어가는 천억원대 비용까지 직접 부담하겠다고 나서는데요. 한 기업인의 집념이 군 공항의 활주로 방향까지 바꾸게 된 셈이죠. 물론 이 협상을 두고 "정경유착이다", "특혜다" 등의 비판도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롯데는 20년 넘게 꿈꿔왔던 초고층 빌딩 사업을 마침내 현실로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하늘에 닿은 기네스 기록들, 거침없던 영광의 시간]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공사가 시작됐는데요. 건물이 워낙 높다보니 한층한층 쌓일 때마다 기록도 같이 쌓였습니다. 2014년에는 국내 건축물 최초로 100층을 넘겼고요. 2015년에는 123층 골조 공사까지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2017년 4월, 드디어 롯데월드타워가 정식으로 문을 열죠. 신격호 회장이 잠실 땅을 산 지 무려 30년 만이었습니다. 완성된 높이는 555미터. 당시 기준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건물이었어요. 여러분 롯데월드타워 118층에 있는 '서울스카이' 전망대 가보셨어요? 거기에 바닥이 통유리로 된 스카이데크가 있는데요. 높이가 약 478미터라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유리 바닥 전망대로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엄청납니다. 지하 2층에서 121층까지 올라가는 데 1분밖에 안 걸려요. 이동 거리만 496미터, 속도는 분당 600미터.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운행거리와 가장 빠른 더블데크 엘리베이터 기록으로 기네스북에도 이름을 올렸죠. 그런데 롯데월드타워가 이렇게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던 시기에 정작 롯데그룹 안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마천루에 가려진 위협…롯데그룹 뒤흔든 형제의 난]
그런데 정작 이 시기에 롯데월드 내부에서는 위기가 일어나요. 아마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2015년 터진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경영권 분쟁, 이른바 '롯데 왕자의 난'이죠. 시작은 2015년 7월이었습니다. 일본 롯데 경영에서 밀려나 있던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이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과 함께 일본 롯데홀딩스 본사로 향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신격호 회장이 임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너 해임, 너도 해임" 이렇게 지시를 내렸다고 하죠. 그 유명한 '손가락 해임' 사건인데요. 그 중엔 심지어 차남인 신동빈 회장도 포함돼있었어요. 근데 사실 당시 당시 신격호 회장은 이미 90대 중반의 고령인데다가 치매 치료약까지 먹고 있었다고 알려졌거든요. 그래서 이게 정말 신격호 회장 본인의 판단이었는지 아니면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의 뜻이었는지가 논란이었죠.
그런데 이러면 신동빈 회장이 가만히 있지 않았겠죠. 오히려 바로 긴급 이사회를 열어서 오히려 아버지인 신격호 회장을 대표이사 자리에서 해임하게 만듭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내쫓고 형제가 서로 주도권을 놓고 다투면서 이른바 '롯데 왕자의 난'이 전 국민이 지켜보는 싸움으로 번지게 된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국민들이 충격받았던 게 하나 더 있었어요. 사실 롯데가 일본에서 시작한 기업이라는 건 이미 알려져 있었거든요? 근데 왕자의 난이 터지면서 그동안 잘 보이지 않던 지배구조까지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한 거예요. 그 꼭대기에 있던 회사가 바로 일본의 '광윤사'였죠. 누가 봐도 "한국에서 벌어서 일본에 돈 갖주네"라고 오해를 딱 사기 좋은 상황이었던거죠. 물론 팩트와는 거리가 멀었지만요.여기에 막 두 형제 다 일본식 이름을 써왔다 그러고, 경영권 싸움 과정에서도 일본어로 된 문서와 녹취까지 계속 등장하니까 "이 정도면 일본 기업 아니야? 남의 나라 회사였네."하는 비판까지 나왔습니다. 아이러니하죠. 밖에서는 롯데월드타워가 계속 높아지고 있었는데 정작 롯데라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는 떨어지고 있던 겁니다.
['마천루의 저주'가 현실로?]
여러분 혹시 '마천루의 저주'라는 표현 아세요? 경제 쪽에는 꽤 유명한 속설인데요. 경제가 한창 좋거나 기업에 자금이 많을 때 높은 건물을 짓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건물이 완성될 무렵이면 거품이 꺼지고 경제위기가 찾아온다는 가설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롯데월드타워 역시 이 말을 피해가진 못한 것 같아요. 롯데는 오랫동안 '재계 5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2023년에는 포스코에 빌려 6위로 순위가 떨어졌죠, 2025년에 다시 5위를 되찾는가 했더니 이번엔 한화에 밀려서 다시 6위로 밀렸습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롯데를 먹여 살리던 본업이 흔들리기 시작한 거예요. 롯데 하면 원래 유통이잖아요. 백화점, 마트, 홈쇼핑까지 한때는 정말 컸죠. 그런데 이제는 소비가 온라인으로 확 넘어가면서 쿠팡 같은 이커머스 업체들이 엄청 치고 올라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전처럼 롯데가 시장을 이끌던 모습은 많이 사라졌고요. 화학은 더 심각했습니다. 롯데케미칼은 한때 그룹에 돈을 벌어다 주는 대표적인 효자 계열사였는데요. 석유화학 경기가 꺾이면서 2022년부터 무려 4년 연속 적자를 냅니다. 2025년에는 적자가 거의 1조원에 가까웠다고 해요.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롯데건설도 흔들렸습니다. 부동산 사업에 빌린 돈을 갚을 자금이 부족해지면서 다른 계열사들까지 돈을 보태야 했죠. 유통에 화학, 건설까지 소위 롯데그룹의 '캐시카우'로 여겨졌던 사업들에서 연거푸 악재가 터진거죠.
[롯데월드타워, 가설의 입증일까? 비상의 시작일까?]
여러분, 오늘 밤에도 잠실의 롯데월드타워는 서울 하늘을 밝히고 있을 겁니다. 한때 불가능하다는 말까지 들었던 123층, 555미터짜리 건물을 결국 현실로 만든 신격호 회장의 집념은 분명 대단한 일이죠. 그런데 참 묘합니다. 롯데월드타워가 가장 높이 올라간 뒤, 정작 롯데그룹은 경영권 분쟁부터 유통과 화학의 부진, 건설 문제까지 여러 위기를 차례로 겪고 있으니까요. 과연 롯데월드타워는 훗날 다시 전성기를 맞은 롯데의 상징으로 남게 될까요? 아니면 정말 '마천루의 저주'라는 말이 따라붙는 건물이 될까요? 건물은 이미 123층까지 다 올라갔지만, 롯데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르데스크 4인용 책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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