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아프리카 축소판' 카메룬, 청년·난민의 절망 보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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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분투칼럼] '아프리카 축소판' 카메룬, 청년·난민의 절망 보듬나

연합뉴스 2026-08-06 07:00:0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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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대 부산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장

임기대 부산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장 임기대 부산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장

[임기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중앙아프리카경제통합체(CEMAC)의 맹주이자 역내 국내총생산(GDP)의 40% 이상을 견인하는 카메룬이 역사적 전환의 변곡점에 서 있다. 고질적인 '석유 의존형' 경제 구조에서 탈피해 철광석과 보크사이트 등 대규모 광산 프로젝트를 가동 중인 카메룬이 국가 체질 개선에 나선 모습은 가히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유가 변동에 온 대륙이 요동치던 자원의 저주를 깨고, 내륙 이웃국들과 에너지·물류 인프라를 나누겠다는 카메룬의 상생 리더십은 중앙아프리카 전체의 생존 방정식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아프리카 카메룬 지도 아프리카 카메룬 지도

[제작 양진규]

그러나 화려한 거시경제 지표와 외교적 수사(修辭)의 커튼을 걷어내면, 카메룬 내부의 현실은 차갑게 얼어붙고 있음을 현지에서 체감하게 된다. 국경 너머로 상생을 외치기 전에, 과연 카메룬이라는 국가 공동체가 내부의 치명적인 정치적 모순과 무너져 내리는 청년들의 삶, 그리고 기후 위기가 몰고 온 거대한 난민의 파고를 포용하고 있는지 되물어야 할 시점이다. 국가의 외형적 성장이 내부의 불평등과 인도적 위기를 가리는 포장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카메룬 경제가 21세기형 광업 대전환을 실험하고 있다면, 이를 뒷받침해야 할 국내 정치 체제는 도리어 거꾸로 행보하며 극심한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 카메룬 정치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구조적 모순은 '노인정치'(Gerontocracy)와 권력의 사유화, 그리고 지난해 10월 대선 이후의 선거 불복 위기다.

폴 비야 카메룬 대통령 폴 비야 카메룬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오랜 기간 집권해 온 폴 비야 대통령이 또다시 8선에 성공한 이후, 카메룬 사회는 대선 불복과 선거 사후 위기라는 유혈 긴장 상태에 직면했다. 야당 측의 강력한 반발과 독자 승리 주장, 이에 따른 야당 인사에 대한 탄압과 정부의 강경 진압은 카메룬이 자랑하던 최소한의 제도적 안정성마저 뒤흔들고 있다. 거국내각 구성의 난항 등 권력 배분을 둘러싼 극심한 정치적 교착 상태는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구조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할 관료체제를 마비시키고 있다.

대통령의 아들인 프랑크 비야를 앞세운 세습파와 고령의 관료 그룹 간 보이지 않는 암투 또한 민생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자신들만의 다툼이다. 여기에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영어권 지역과 분리주의 갈등은 정치적 타협과 통합 기능을 상실한 채 평범한 시민들의 희생만 요구하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보다 더 무서운 것은 청년들의 내면에 깊게 자리 잡은 경제적 절망과 지독한 냉소주의다. 카메룬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18∼35세 청년층은 현재 이 나라에서 가장 취약하고 고통받는 집단이다. 청년 실업과 불완전 고용률은 무려 74%에 육박한다. 비공식 부문 고용률은 거의 90%에 이르고 있다. 이 숫자가 증명하는 것은 국가 시스템이 거의 붕괴 수준에 달할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카메룬 수도 야운데의 출근길 시민들 카메룬 수도 야운데의 출근길 시민들

[임기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 교육을 마친 엘리트 청년들조차 국가가 보장하는 정상적인 사다리를 타지 못한다. 이들은 오직 스스로 악착같은 생존 본능에 의지하는 '데부르야르디즈'(Debrouillardise)의 삶으로 내몰리고 있다. 프랑스어 '데부르야르디즈'는 카메룬 청년들에게 단순한 단어가 아닌 하나의 생존 종교와도 같다. 이는 국가와 제도가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아비규환의 현실 속에서 법과 제도의 테두리 바깥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알아서 살아남는 각자의 능력을 뜻한다.

이 능력의 이면에는 무능하고 부패한 국가 권력을 향한 뼈아픈 비웃음이 깔려 있지만 현지의 청년들은 거리낌 없이 이 단어를 사용한다. 청년들은 공정하지 못한 국가에 더 이상 분노를 낭비하지 않는다. 대신 규칙을 지키면 손해를 보는 사회 시스템을 철저히 냉소하며 '나와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는 각자도생의 길을 택하고 있다.

승객을 기다리는 오토바이 청년 기사 승객을 기다리는 오토바이 청년 기사

[임기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 결과 번듯한 졸업장을 쥔 엘리트들이 길거리 노점, 오토바이 택시(벤스킨), 비공식 중개업을 전전하며 법망의 사각지대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위태로운 삶을 이어간다. 그들에게 국가는 보호자가 아니라 오히려 단속과 뇌물 수수로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약탈자에 불과하다. 이처럼 교육 시스템과 노동 시장의 심각한 미스매치 속에서 국가라는 울타리를 지워버린 청년들의 거친 서바이벌 게임은 눈물겹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데부르야르디즈의 삶은 결국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각자도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청년들은 극단주의 무장단체(보코하람)의 유혹이나 마약 범죄, 혹은 목숨을 건 지중해 밀입국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지로 내몰린다. 청년들이 국가의 미래를 가꾸는 성장 동력이 아니라, 무능한 권력을 비웃으며 스스로 시스템 밖의 사회적 시한폭탄이 되어가는 이 비극적 현실이야말로 카메룬이 마주한 가장 시급하고 본질적인 안보 위기이다.

기후변화로 차드호가 축소되고 가뭄이 심화하면서 한 어린이가 양동이를 들고 지나가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기후변화로 차드호가 축소되고 가뭄이 심화하면서 한 어린이가 양동이를 들고 지나가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설상가상으로 카메룬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은 내부 모순만이 아니다. 카메룬은 현재 국경 지대에서 몰려오는 기후변화와 난민 유입이라는 이중의 인도적 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다. 카메룬 최북단 지역과 맞닿은 차드호(Lake Chad) 분지는 기후 위기의 비극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장이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호수가 메마르고 예측 불가능한 대홍수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농민과 유목민들은 생계 수단을 잃고 기후 난민이 되어 남하하고 있다.

여기에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나이지리아의 무장 갈등을 피해 국경을 넘은 수십만 명의 난민까지 카메룬으로 유입되면서 역내 자원 부족 현상은 극에 달했다. 물과 목초지를 둘러싼 이주민과 원주민 간의 유혈 충돌은 기후 위기가 어떻게 사회적 갈등과 강제 이주로 이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일하기 전 아침 식사를 하는 시민 일하기 전 아침 식사를 하는 시민

[임기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수많은 난민과 실향민을 품어내야 하는 경제적·인도적 부담은 이미 한계치에 다다랐으며, 국제 사회의 지원마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는 카메룬의 치안과 경제 안정성을 흔드는 뇌관이 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카메룬 내부에는 이주, 난민, 인구 통계 등을 다루는 국가 차원의 전문 연구 기관들이 적지 않게 설립돼 있다. 위기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할 학술적 기반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작 카메룬 정부의 미미한 재정 지원과 국제기구의 지원 중단으로 인해, 이들 연구소는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며 데이터 수집조차 쉽게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필자가 만난 중앙아프리카 이주연구 및 관리연구소(LARGEHMAC) 소장은 국제기구와 정부의 지원이 끊긴 채 통제 불능으로 밀려드는 난민 문제 앞에서, 기본적인 인구 통계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해진 연구 환경의 한계를 토로했다. 위기를 진단해야 할 지식의 산실마저 재정적 고사 상태에 빠진 현실이다. 카메룬이 직면한 인도적 재앙이 얼마나 대책 없이 방치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뼈아픈 증거다.

중앙아프리카 이주 연구 및 관리연구소 관계자 인터뷰 중앙아프리카 이주 연구 및 관리연구소 관계자 인터뷰

[임기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다시 상생과 공존이라는 아프리카의 오랜 공동체 정신을 돌아본다. 카메룬 정부가 CEMAC 무대에서 주도하려는 지역 통합과 경제적 연대는 훌륭한 비전이다. 하지만 내 집 안의 불도 끄지 못하면서 이웃집의 번영을 도울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대선 이후의 정치적 갈등으로 국론이 찢기고 청년들이 절망하는 국가가 국경 너머에서 진정한 맏형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는 없다.

카메룬이 진정한 중앙아프리카의 리더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광산에서 캐낸 자원의 과실이 독점적 권력 엘리트의 기득권 수호를 위한 방패막이로 쓰여선 안 된다. 그 부(富)는 청년들의 미래 인프라와 기후 난민을 포용할 사회적 안전망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정치·경제 시스템의 전면적인 대혁신에 투입해야 한다.

청년들에게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기후변화와 이주 문제에는 역내 국가들과 공동의 녹색 인프라 구축으로 대응해야 한다. 내부적으로 갈등의 실타래를 풀고 청년의 절망을 치료하며, 외부적으로는 기후·난민 위기에 포용적으로 대처하는 카메룬이라야 국경 너머의 이웃들에게도 진정성 있는 연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 이러한 상생의 논리는 카메룬 내부의 청년 세대, 밀려드는 난민, 그리고 카메룬과 중앙아프리카 국가 모두에 적용되어야 할 과제다.

시내 노점을 운영하는 청년 노점상 시내 노점을 운영하는 청년 노점상

[임기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현지에서 만난 수많은 지식인과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당부했다. 국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청년들이 더 이상 '데부르야르디즈'라는 각자도생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이들의 무너진 내일에 단단한 희망의 이정표를 세워주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아프리카 대륙의 모든 기후와 지형, 문화적 다양성을 품고 있어 한때 '아프리카의 미니어처'(miniature)라 불리며 대륙의 자부심으로 통했던 카메룬이다. '미니어처'라는 말은 곧 대륙이 겪는 모든 위기의 축소판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반대로 카메룬이 이 내부의 모순과 거대한 난민의 파고를 지혜롭게 넘는다면 아프리카 전체에 위기 극복의 표준을 제시하는 사례가 될 수 있다. 카메룬이 해묵은 권력의 탐욕을 내려놓고 청년들의 눈물을 닦아내, 진정으로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축소판'이자 중앙아프리카의 번영을 이끄는 중심 국가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임기대 교수

현 부산외대 아프리카연구소장 및 중앙도서관장, 프랑스 파리7대학 박사(언어역사인식론), 저서 '베르베르문명', '7인 7색 아프리카' 외 다수. 한국프랑스어권아프리카학회장과 한국연구재단 인문한국(HK)3.0 과제 주관연구소 연구 책임자 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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