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지역인재 채용 제도가 지역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화 해소라는 본래의 취지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수도권 대학에 진학한 지방의 우수한 인재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지역 발전에 기여하게끔 유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도의 내용은 오히려 그들의 귀향을 가로막는 걸림돌에 가깝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제도는 최종 졸업 대학의 소재지를 기준으로 지역인재 여부를 판단하다 보니 지방에서 나고 자란 학생이 수도권 대학에 진학할 경우 지역인재 자격을 상실해 결국 수도권에 정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수도권에서 성장한 학생이 지방 대학을 졸업하면 지역인재로 인정받는다. 수도권 출신 학생들 중 상당수는 이미 수도권에 삶의 기반이 갖춰져 있다 보니 지방 공기업 등에 취업을 한다 해도 수도권과 지방을 오가며 생활하거나 경력을 쌓은 후 다시 수도권에 둥지를 트는 경우가 빈번한 편이다. 다수의 청년들과 전문가들은 지역인재 제도는 그 내용만 놓고 봤을 땐 지역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화 해소에 핵심 수단이 되기에 충분한 만큼 실제 지역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인재를 우선적으로 선발할 수 있도록 고등학교 졸업 지역으로 기준을 변경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수도권大 지역 토박이 안 되고 지방大 수도권 출신은 되는 '이상한' 지역인재 채용제도
현행 지역인재 채용 제도는 수도권에 집중된 인재와 일자리를 비수도권으로 분산해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고자 도입됐다. 지역의 유능한 인재가 굳이 수도권에 자리 잡지 않아도 지역에서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준 것이다.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과 '혁신도시 조성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비수도권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은 신규 채용 인원의 35% 이상을 지역인재로 채워야 한다. 제도의 취지와 내용만 놓고 봤을 땐, 해당 지역에서 35% 안에만 들면 양질의 일자리로 분류되는 공기업 취업을 통해 본인이 나고 자란 곳에 정착해 살 수 있는 셈이다. 이는 수도권 집값폭등의 핵심 원인 중 하나인 '인구 과밀화' 문제의 해결책 중 하나로도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의 효과는 현실과 동 떨어진 기준에 가로 막혀 사실상 유명무실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혁신도시 조성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 제29조의2에 따르면 지역인재는 이전 지역 소재 대학 또는 고등학교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한다. 다만 같은 조 단서 조항에 따라 이전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더라도 타 지역 대학에 진학한 경우는 채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즉, 부산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한 학생이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면 부산 지역인재 대상에서 제외되는 반면 수도권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학생이 부산 소재 대학을 졸업할 경우엔 부산 지역 인재로 인정받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대다수 청년들은 우수한 인재를 지역에 정착하게 만드는 제도 취지에 반하는 기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역 고등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학생들이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는 게 고착화 된 상황에서 그들의 유턴을 유도해도 모자를 판에 오히려 장벽을 쌓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아울러 수도권 학생의 경우 성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방 소재 대학에 입학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결국 공기업의 경쟁력 약화와 역차별 유발 등의 부작용만 낳고 있다는 지적도 상당했다. 현재 정부는 '공공기관 이전 등 균형성장 거점 육성'을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에 대한 전수조사를 거쳐 추가 지방 이전 로드맵을 추진 중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한국투자공사, 7대 공제회 등이 추가 이전 대상 기관으로 거론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론 안팎에선 출신 대학 소재지와 무관하게 고등학교 졸업 이력을 지역인재 인정 기준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방에서 성장한 뛰어난 학생들이 수도권 대학에 대거 진학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지역 발전과 수도권 과밀화 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르데스크가 최근 강남역과 코엑스,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등에서 20·30세대 1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결과에서도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도 지역인재로 인정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무려 96%(120명)의 응답자가 '그렇다'라고 답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하철 2·3호선 교대역 인근에서 만난 직장인 장연우 씨(33·남)는 "대전에서 초·중·고를 모두 졸업한 뒤 중앙대학교에 진학했다"며 "졸업 후 대전 소재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면서 지역인재 전형을 알아봤는데 인서울 대학 출신이라는 이유로 배제됐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에서 10년 넘게 교육을 받고 성장한 사람보다 대학 4년을 지방에서 다닌 사람이 지역 인재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제도 취지와도 맞지 않는 것 같다"며 "나름 지역에서 공부 좀 해서 인서울 대학에 입학한 사람을 고향에서 자리 잡게 하는 게 진짜 지역 인재 제도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직장인 이현우 씨(29·남)는 "대구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모두 다닌 뒤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했다"며 "공기업을 준비하는 학교 선후배들 가운데 같은 이유로 지역인재 대상에서 제외돼 현 정책을 비판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이어 "20년을 대구에서 살고 대학 때문에 서울에서 4년을 보낸 사람은 지역인재가 아니고 반대로 서울에서 20년을 살다가 지방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지역인재가 되는 구조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며 "지역에서 실제 성장한 사람을 우선 인정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르데스크가 만난 청년들 중에는 현행 지역인재 인정 기준 자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청년들도 상당수 존재했다. 강남역에서 만난 대학생 김민수 씨(25·남)는 "지역인재라면 당연히 어디에서 자라고 학교를 다녔는지를 보는 줄 알았다"며 "고등학교가 아니라 대학 주소만 기준이라는 이야기를 오늘 처음 들었는데 오히려 지역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을 배제하는 제도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코엑스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박소연 씨(23·여)는 "처음에는 지방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모두 우대하는 제도인 줄만 알았다"며 "대학 때문에 잠시 다른 지역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제도 혜택에서 배제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도 현행 지역인재 인정 기준이 지역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화 해소라는 입법 취지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영국(정의당 대표) 변호사는 "지역인재 제도의 목적이 지역균형발전과 지역 정착이라면 고등학교 졸업 이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등학교까지 해당 지역에서 다녔다는 것은 부모와 가족, 친구, 생활권 등 삶의 기반이 지역에 형성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며 "이들은 취업 이후에도 해당 지역에 정착할 가능성이 큰 만큼 제도의 취지에도 가장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방에서 태어나고 자란 학생이 수도권 대학에 진학했다는 이유만으로 지역인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획일적인 기준이다"고 지적했다.
지역 인재부터 챙기는 해외 주요 도시들…전문가 "청년들의 지역 정착이 수도권 집값 해법"
그동안 다수의 연구에서도 현행 지역인재 인정 기준의 한계를 지적하며 고등학교 졸업 이력을 함께 반영하는 방향의 제도 개선안을 제시해 왔다. 대표적으로 부산연구원은 지난해 5월 발표한 '부산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률 향상 방안' 보고서에서 지역인재 채용 목표를 장기적으로 50%까지 확대하되 기존 부산 소재 대학 졸업생 등을 대상으로 한 채용 비율은 35%로 유지하고 나머지 15%는 'U턴 인재'를 위한 별도 전형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부산지역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수도권 대학에 진학한 지역 출신 인재에게도 지역인재 채용 기회를 부여하자는 취지다.
해당 보고서에선 지역인재를 대학 소재지만으로 구분하면서 해당 지역에서 성장한 다양한 인재를 폭넓게 선발하기보다 일부 대학 출신 위주로 채용이 이뤄지는 편향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일례로 전라북도 전주시에 본사를 둔 국민연금공단이 2022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채용한 대졸 지역인재 110명 가운데 전북대학교 출신이 전체의 76.3%(84명)를 차지했다. 전라남도 나주시에 본사를 둔 한국전력공사 역시 지난해 9월 선발한 대졸 지역인재의 70% 이상이 전남대학교 졸업생이었다. 한국전력공사가 지역인재 의무채용 제도를 시행한 2018년 이후 7년간 채용한 전남대학교 출신 학생은 총 410명에 달했다. 서울 주요 5개 대학(서울대·고려대·연세대·성균관대·서강대) 출신 신입사원(433명) 숫자와 맞먹는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지역인재 채용 제도와 비슷한 제도를 도입한 해외 주요 도시들은 지역인재를 선발할 때 단순히 대학 소재지만이 아니라 해당 지역에서 생활하고 교육받은 이력을 함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워싱턴 D.C. 정부는 지난 2018년 'Pathways to District Government Careers Act'를 제정해 워싱턴 D.C. 공립고등학교(DC Public Schools)와 공립 차터스쿨 졸업생을 지방정부의 초급 공무원 채용 과정에서 우선 검토하도록 하는 '커리어 패스웨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지역에서 성장한 청년들의 공직 진출을 지원하고 장기적인 정착을 유도하기 위한 취지다. 인도 신흥 산업도시 하이데라바드를 품고 있는 텔랑가나주 역시 지역인재를 선발할 때 출신 대학보다 해당 지역에서의 학업 이력을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다. 지역 후보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학창시절 해당 지역 교육기관에서 최소 4년 이상 연속 재학하는 등 일정한 학업 이력을 충족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해외 국가들이 지역인재 정책의 목적을 특정 대학 졸업생을 우대하는 데 두기보다 해당 지역에서 성장한 인재의 정착과 환류를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했다. 고장완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미국 일부 주에서는 해당 지역 학생이 지역 대학에 진학하면 등록금을 크게 감면해 주는 등 우수 인재가 지역에 남을 수 있도록 다양한 유인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지역의 우수 학생들이 지역대학에 남도록 하는 지원책도 미비할뿐더러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찾아 수도권 대학에 진학한 학생이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게끔 만드는 유인장치도 부족한 실정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려면 지역에서 성장한 우수 인재가 대학 졸업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며 "현재처럼 대학 소재지만을 기준으로 삼으면 소위 말하는 서울 명문대에 진학한 '진짜' 지역 인재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지역으로 돌아올 유인 자체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인재 제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지역균형발전에 있다면 대학 소재지보다 지역에서 성장한 이력을 함께 반영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지역인재 기준을 고등학교 졸업 이력까지 기준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일(현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 한국교통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지역인재 제도의 취지가 지역균형발전이라면 인정 범위를 최소한 고등학교 졸업자까지 확대해야 한다"며 "수십 년 동안 수도권에서 생활하다 지방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지역인재로 인정하는 현행 기준은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족과 친구, 생활 기반이 모두 수도권에 있는 경우에는 지방 공공기관에 취업하더라도 다시 수도권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반대로 지역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학생들은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고향과의 연결고리가 남아 있는 만큼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생각들을 하는데 현행 지역인재 제도가 오히려 이들의 의지를 꺾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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