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만 가자."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이런 처세술을 조기 이수한 우리는 영혼 없는 끄덕임과 '모르는 척'으로 무장한 생존의 고수들이다. 퇴근길 소주 한 잔에 "오늘도 버텼다"며 스스로를 마취하고, "받은 만큼만 일한다"며 핏대 세우는 걸 훈장처럼 여긴다. 그런데 이상하다. 성공했다는 이들의 삶은 왜 우리와 이토록 딴판일까. 어쩌면 우린 그저 거대한 '펜듈럼(Pendulum)'의 진동판 위에서 시키는 대로 춤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공력을 낭비하며 '잉여 포텐셜'을 공급하는 건전지 신세로 말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도덕 교과서 대신, 왜 이 지겨운 장면이 무한 반복되는지 그 메커니즘이 궁금했다. 내게 그 프리즘을 빌려준 바딤 젤란드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의 '트랜서핑' 이론을 메스 삼아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김현우의 핫스팟]을 시작한다.
광고 속 자동차는 언제나 텅 빈 해안 도로나 웅장한 숲길을 달린다. 바람을 가르는 자유와 성공한 사람의 여유를 속삭인다. 한데 그 환상에 지갑을 여는 순간 당신에게 주어지는 현실은 꽉 막힌 도로의 붉은 브레이크등 행렬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벌어지는 지독한 의자 뺏기 게임이다.
한국의 자동차 등록 대수는 이미 2500만대를 훌쩍 넘겼다. 인구 2명당 1대꼴이다. 이쯤 되면 자동차는 생존 필수품이다. 차가 없으면 마트도 병원도 아이들 통학도 불가능하도록 도시가 설계됐다. 펜듈럼은 큰 차를 타야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허영심까지 부추기며 우리를 철저히 길들였다. 이런 마당에 출근길 정체 속 운전자들을 향해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이라며 비난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반발심이라는 에너지만 펜듈럼에 가져다 바칠 뿐이다.
그렇다면 전기차가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이 역시 트랜서핑이 경계하는 과잉 잠재력의 함정이다.
물론 전기차는 배기가스를 뿜지 않는다. 하지만 생산과 배터리 폐기 과정에서 막대한 자원이 들고 타이어 마모로 인한 미세먼지는 그대로다. 무엇보다 도로 위에서 차지하는 덩치와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본질은 내연기관차와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나는 친환경 차를 타니까 환경에 기여하고 있다는 도덕적 우월감이 과잉 잠재력을 형성해 가까운 거리도 무작정 차를 끌고 나가는 부작용을 낳는다. 먹이가 기름에서 전기로 바뀌었을 뿐 자동차 펜듈럼은 여전히 배를 불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 지독한 펜듈럼에서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까. 트랜서핑은 억지로 세상을 바꾸려 드는 내적 의지를 내려놓으라고 조언한다. 내일부터 무조건 차를 버리고 자전거만 타겠다며 스스로 괴롭히는 결심은 며칠 못 가 무너진다. 무너진 뒤엔 죄책감만 남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적 의지다. 억지로 환경운동가가 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차를 두고 나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다가오도록 만드는 것이다.
집과 직장의 거리가 좁혀지고 대중교통 환승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고 동네 골목길이 걷고 싶을 만큼 근사해지면 사람들은 굳이 피곤하게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 차를 타지 말라고 다그치는 대신 차를 탈 이유 자체를 없애 버리는 자연스러운 도시 구조의 개편이 외적 의지의 핵심이다.
자연스러운 도시 구조 개편의 시작
이런 맥락에서 매년 돌아오는 세계 차 없는 날은 트랜서핑에서 말하는 수많은 미래의 가능성 즉 가능태 공간 중 하나를 잠시 엿보는 훌륭한 실험이다.
하루 동안 차가 사라진 도시는 새로운 현실을 보여준다. 매연에 가려졌던 나무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자동차 소음에 묻혔던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20분 거리를 지하철과 두 발로 이동해 보니 주차장을 빙빙 도는 시간까지 합쳐 오히려 더 빠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늘 걷던 길이 달라 보이고 도시를 느끼는 감각 자체가 바뀐다.
우리는 거대한 자동차 펜듈럼과 맞서 싸울 필요가 없다. 펜듈럼은 반대와 증오의 에너지조차 받아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저 관심을 거두고 다른 선택지에 눈을 돌리면 그만이다. 출퇴근길 정체는 모두가 자동차만 타도록 강요받은 설계 탓이다. 도로를 더 넓히는 것은 살찐 사람에게 더 큰 바지를 사주며 다이어트를 권하는 격이다. 자동차를 미워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걷기 편하고 대중교통이 쾌적한 도시를 상상하고 요구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자동차가 없어도 내 삶이 멈추지 않는다는 해방감을 맛보는 것이 중요하다. 2t짜리 철창에서 걸어 나와 온전히 두 발로 땅을 딛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도시라는 거대한 펜듈럼의 노예에서 벗어나 삶의 진짜 운전대를 쥐게 될 것이다. 드라이브 스루의 좁은 차선에 갇혀 앞차 범퍼만 멍하니 바라보는 행동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트랜서핑: 러시아 물리학자 바딤 젤란드가 제안한 개념으로 현실을 억지로 통제하려 하지 않고 원하는 흐름에 자연스럽게 올라타는 방법을 말한다.
☞펜듈럼: 사람들의 같은 생각과 행동이 모여 만들어진 거대한 집단적 에너지로 개인의 자유를 뺏고 조종하려는 성질을 뜻한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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