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 작업을 마무리할 때쯤 되면 으레 첫 방송 시청률 이야기를 하잖아요. 저는 일부러 낮게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높게 나왔죠. 처음 든 생각은 홍보팀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드라마 홍보도 전체 산업에서 무척 중요한 역할이고, 첫 방송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많이 힘써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축포를 터뜨려도 좋을 법한 성공적인 출발이었으나 이승영 감독과 제작진은 방송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다만 그를 진정으로 안도하게 만든 건 업계의 거창한 찬사가 아닌 지인들이 보내온 소박한 시청 후기였다.
"촬영이 완전히 끝나면 '김부장'을 조금 편하게 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방송이 나가면서 더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먼 지인들에게서 가족들이 모여 TV를 본다는 문자가 오면 그게 그렇게 고맙더라고요. '주말을 즐겁게 보낼 수 있게 해줬다'는 말이 참 좋았어요. 코미디도 섞여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딸을 지옥에서 건져내야 하는 아빠의 이야기잖아요. 가족에 관한 서사이다 보니 감정이입이 쉬우셨던 것 같아요. 꼬마들도 잘 봤다고 하고, 연배가 높으신 분들도 즐겨 보셨다는 말을 들으며 결과적으로 폭넓게 즐길 수 있는 드라마가 된 것 같아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 감독이 기획 단계부터 끈질기게 밀어붙인 연출의 뼈대는 '캐릭터와 스토리를 관통하는 액션'이었다. 10시간짜리 서사 속에서 액션이 단순한 볼거리로 전락하지 않도록 변주와 빌드업에 공을 들였다. 그리고 이 철학을 현실로 구현해 낸 가장 강력한 동력은 스태프와 배우들이 빚어낸 굳건한 팀워크였다.
"화려한 볼거리 위주의 의미 없는 액션은 지양했어요. 각 액션의 디자인부터 공간, 촬영 스타일을 어떻게 변주해 마지막에 포텐을 터뜨릴 것인가를 목표로 움직였죠. 저희 팀의 최대 강점은 각 분야가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아이디어를 협력해 나갔다는 점입니다. 희한할 정도로 스태프와 연기자들이 성품 좋은 사람들이어서 현장에서 큰 소리가 안 났어요. 추운 날씨에 살수차 비를 맞아 배우들 옷과 머리가 꽁꽁 얼고, 바닥에 염화칼슘을 뿌려가며 촬영했는데 밤새 누구 하나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이런 팀의 일원이라는 게 자랑스럽고 벅차다고 말해줬을 때,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어요."
극의 중심을 묵직하게 지탱한 주연 배우 소지섭을 향한 신뢰는 남달랐다. 극을 이끄는 역량은 물론, 카메라 밖에서 현장을 아우르는 태도야말로 그가 소지섭을 향해 "완벽에 가까웠다"고 평하는 이유다.
"배우는 자기가 맡은 역할을 잘 이해하는 게 첫 번째고, 그다음은 스태프 및 상대 배우와의 시너지라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소지섭은) 퍼펙트했습니다. 농담으로 '가장 좋을 때 헤어져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할 정도였죠. 모니터를 보는 첫 번째 관객으로서 '이 남자 멋지다'고 생각하며 찍은 순간이 많았어요. 첫 방송 날이자 마지막 10부 완제를 입고한 날, 소지섭 배우에게 전화가 왔어요. 감독님 수고하셨고 지금까지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감사 인사를 대신 전해달라고요. 하나의 드라마를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일하는지 정확히 아는 주연 배우의 태도였습니다."
소지섭, 최대훈, 윤경호 세 배우가 빚어낸 이른바 '아빠들'의 앙상블 역시 철저한 준비와 치열한 현장 소통이 낳은 결실이었다.
"촬영장에서 셋이 자꾸 모여 이야기를 하길래 가보면 늘 장면에 관한 토론이었어요. 캐릭터에 영혼을 불어넣을 준비를 집에서 해와, 현장에서 협업으로 살려내는 과정이었죠. 저는 연출자로서 가끔 핀트가 안 맞거나 산만한 지점이 있어도 막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행착오를 통해 얻어내는 것들이 분명 있거든요. 최대훈, 윤경호 배우는 대사 하나의 표현 방식에 대해서도 예닐곱 가지를 준비해 와서 리허설을 통해 가장 적합한 걸 뽑아냈습니다."
무거운 범죄 스릴러에 매진해 온 이 감독에게 코미디와 액션이 짙게 배어 있는 '김부장'은 분명 낯선 도전이었다. 이 감독은 스태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작품의 디테일을 빚어나갔다.
"예전에는 답을 제가 내는 게 중요했어요. 그런데 경력이 쌓일수록 저보다 더 깊은 생각을 하는 스태프들의 의견을 잘 들으면 작품이 훨씬 탄탄해진다는 걸 깨달았죠. 액션과 코미디가 낯선 제게는 이를 잘 담아낼 팀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유쾌한 엘리베이터 신은 공동 연출자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였고, 악당 시점의 야투경 사우나 액션 역시 무술감독님의 데모 영상에서 출발했어요. 누가 낸 아이디어든 귀담아듣고 격려하는 저희 팀의 방식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극 초반, '김부장'의 과거를 다룬 에피소드는 AI를 통해 만들어졌다. 제작 여건과 상상력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은 과감한 시도였다. 이 감독은 작품이 가진 '리얼리즘'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AI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초반에 무시무시한 과거를 직접 보여주는 액션 신이 필요했는데, 실사로 다 찍자니 본편을 위한 재화가 너무 많이 들었죠. 고민 끝에 완성본이 나오기 6개월 전부터 파트너를 찾아 AI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땀내 나는 리얼리즘 드라마에서 AI는 무척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해요. 제가 가장 신경 쓴 부분도, 이 짧은 장면이 스태프들이 땀 흘려 찍은 나머지 99%의 리얼리티에 영향을 주지 않게끔 철저히 중심을 잡는 일이었습니다."
신드롬급 흥행은 자연스레 시즌2에 대한 대중의 염원으로 이어졌다. 이 감독은 시즌2에 관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방송이 나가는 한 달 동안 조마조마했어요. 실패할 때도 힘들지만, 성공의 과정을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게 더 힘들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그래서 그간 들떠서 '시즌2 가자'고 이야기한 적은 아예 없습니다. 본격적이고 진지한 논의는 최근 들어서야 긍정적인 방향으로 시작된 단계예요. 책임 있는 사람들이 질서 있게 자제하며 첫 스타트를 잘 잡아주면 그다음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시즌2에 대한 논의와 별개로 연출자로서 구상 중인 행보는 '위로'에 방점이 찍혀 있다. 거대한 장르물을 거쳐 이제는 시청자들에게 소박한 위안을 건네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제 개인적인 다음 스텝으로는 '위로'라는 키워드가 자꾸 떠올라요. '김부장'은 사이즈가 큰 드라마였지만, 다음번에는 규모가 작더라도 시청자가 우연히 보고 큰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드라마를 해보고 싶습니다."
Copyright ⓒ 지라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