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5세 미만 청년이 일정 기간 근무한 뒤 자발적으로 퇴사하더라도 생애 한 차례 구직급여를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중소기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청년층의 재도전과 원활한 노동 이동을 지원한다는 취지지만,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뒤 중견·대기업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국내 노동시장 구조에서 퇴사에 따른 소득 공백까지 보전할 경우 조기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35세 미만 청년이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한 뒤 자발적으로 퇴사할 경우 생애 1회에 한해 구직급여를 지급하는 고용보험법 개정 추진 계획을 밝혔다. 현행 고용보험 제도는 원칙적으로 비자발적 실직자에게만 구직급여를 지급하고 있으나 이번 개정안은 청년층에 한해 자발적 퇴사자에게도 1회 수급 자격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부는 이직 전 임금의 60%를 기준으로 월 최대 100만원 수준의 구직급여를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고용보험 재정 부담을 고려해 현행 실업급여처럼 최대 270일까지 지급하는 방식과는 다른 별도의 지원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관련 예산은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된다. 3일 권창준 고용노동부 차관은 사전 브리핑에서 "청년들이 정보 비대칭 떄문에 자신과 맞지 않는 직장에 취업했다가 이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자발적으로 이직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면 재취업에 어려움이 커진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정책 추진 소식이 알려지자 중소기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인력난이 만성화된 상황에서 자발적 퇴사에 따른 소득 공백까지 국가가 보전해 줄 경우, 중소기업을 '경력 쌓기용 직장'으로 활용한 뒤 이직하는 사례가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역 인근에서 프린팅 업체를 운영하는 조인수 씨(51·남)는 "중소기업은 사람 한 명 구하기도 쉽지 않은데, 신입사원을 채용하면 최소 몇 달간 업무를 가르쳐야 한다"며 "겨우 업무가 손에 익을 시점에 이직하겠다고 나가도 붙잡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고 토로했다. 이어 "자발적 퇴사에도 국가가 구직급여를 지원한다면 퇴사 결정을 내리는 부담이 훨씬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청년 지원 취지는 이해하지만 결국 교육 비용과 인력 공백 부담은 온전히 중소기업이 떠안게 되는 것 같아 걱정이 크다"고 덧붙였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서비스업체를 운영하는 강진화 씨(47·남)는 "IT업계는 경력을 조금만 쌓아도 대기업이나 더 큰 규모의 회사로 이직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회사 입장에서는 프로젝트 투입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인재를 육성했는데 정작 실무를 맡길 시점에 퇴사하면 채용과 교육을 처음부터 다시 반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성장이 필수적이다"며 "청년 지원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이 인력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 조성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중소기업의 청년 인력 이탈 문제는 갈수록 심화되는 양상이다. IBK경제연구소의 '중소기업 인력난 현황 조사'에 따르면 제조 중소기업에서 39세 이하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32.0%에서 2021년 28.2%로 하락했으며 장기적인 감소세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통계에서도 중소기업의 낮은 고용 유지력이 확인된다. 국가데이터처의 일자리 이동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 등록취업자 중 전년도와 같은 일자리를 유지한 비중은 64.7%에 그쳤다. 이는 대기업(75.5%)보다 10%p 이상 낮은 수치다. 지난해 전체 이직 인원 415만9000명 가운데 70% 이상도 중소기업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추진 중인 자발적 퇴사 청년 구직급여는 해외 주요국에서도 사례를 찾기 힘든 제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은 도덕적 해이와 자발적 실업 유인을 차단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자발적 퇴사자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다만 일부 유럽 국가의 경우 자발적 퇴사자에게도 실업급여를 허용하되 엄격한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독일의 경우 자발적 퇴사자의 수급 자격은 인정하지만 초기 12주 동안은 급여 지급을 유예하며 이후에도 적극적인 구직활동과 재취업 노력이 입증되어야 정상적인 지급이 이뤄진다.
스웨덴 역시 정당한 사유 없이 자발적으로 퇴사한 근로자에게는 약 45일(약 9주) 동안 실업급여 지급을 정지한다. 이후에도 일반 실업급여가 자동으로 지급되지는 않는다. 스웨덴은 한국과 달리 근로자가 별도의 실업보험(A-kassa)에 가입해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며 가입 이력과 기간, 과거 소득 수준 등에 따라 지급 여부와 소득대체율이 결정된다. 자발적 퇴사자에게 일정 수준의 보호를 제공하더라도 한국보다 훨씬 엄격한 보험 가입 요건과 제재 장치를 함께 운용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국내 노동시장 구조와 중소기업의 인력 수급 현실을 함께 고려한 제도 설계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근로조건 격차가 이미 매우 큰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충분한 보완 장치 없이 자발적 퇴사자에게까지 구직급여를 지급하게 되면 중소기업을 거쳐 더 큰 기업으로 가기 위한 이들이 늘어나는 현상이 가속돼 중소기업들의 만성적인 인력난과 근로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국내 중소기업의 현실적인 인력 수급 여건을 함께 고려한 정교한 보완 장치가 반드시 병행돼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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