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그렇다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우리는 수많은 '당연한 말' 속에서 살아간다. 어떤 선택은 현명하고 어떤 삶은 뒤처졌으며 특정 집단은 사회 문제의 원인이라는 판단이 반복된다. 여러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 설명은 점차 생략되고 어느새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게 된다. 하지만 널리 퍼진 말이 곧 사실인 것은 아니다. 익숙한 명제가 언제 어떤 맥락에서 생겼는지, 무엇을 근거로 유통되는지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 [김민의 꼬치꼬치]는 사회에서 사실이나 정답처럼 받아들여지는 명제를 다시 들여다본다. 통계와 제도, 시장 구조와 실제 사례를 통해 그 말이 어디까지 맞고 어디서부터 과장되거나 왜곡되는지 따져본다. 무조건 반박하거나 냉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검증 결과를 바탕으로 개인과 사회가 어떤 판단과 대응을 할 수 있을지 모색한다. [편집자 주] |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이어지면서 온열질환 예방과 고온 환경에서의 작업 방식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널리 쓰였다. 무더운 여름일수록 더운 음식을 먹거나 몸을 움직여 땀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무더운 지역에서 오래 산 사람은 폭염을 더 잘 견딜 것으로 생각하며 여름철 야외 활동이 힘들어도 처음에만 고생하면 몸이 적응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한다.
실제로도 더운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신체가 일정 부분 적응하는 '열 순응' 현상이 존재한다. 다만 열 순응은 더위를 무작정 견디거나 일부러 땀을 내는 행위와는 다르다. 올해도 폭염 속 온열질환과 현장 노동자의 사망이 이어지는 가운데 신체가 더위에 적응한다는 말이 어디까지 유효한지 살펴봤다.
더위는 정말 버티다 보면 익숙해지는 것일까.
오늘의 명제
신체가 더운 환경에 일정 부분 적응할 수 있다는 말 자체는 사실이다. 높은 기온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사람의 몸은 같은 환경에서 받는 생리적 부담을 낮추는 '열 순응'을 겪는다. 열 순응이 이뤄지면 체온 조절이 개선돼 신체가 받는 부담을 낮출 수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매일 1~2시간씩 더운 환경에서 적절히 운동할 경우 열 순응 변화의 대부분이 약 10일 안에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더위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몸이 이전보다 높은 열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열 순응은 몸이 적응할 때까지 무더위를 무조건 참는 것과는 다르다. 반복 노출이라는 결과만 떼어 놓으면 더위를 오래 견딜수록 적응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실제 열 순응은 노출시간과 작업 강도를 단계적으로 늘리는 과정을 전제로 한다.
국내 온열질환 산재 사망자 가운데 작업 투입 초기 사망자의 비중이 높다는 통계는 충분한 적응 기간 없이 고온 환경에서 일할 때 위험이 커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열 순응, 천천히 적응하는 게 핵심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은 더운 환경에서 처음 일하는 노동자에게 첫날부터 정상 작업을 맡기지 않도록 권고한다. 첫날에는 통상 작업시간의 20%만 더운 환경에서 일하게 하고 이후 하루마다 20%p 이내로 작업시간을 늘리는 방식이다. OSHA는 대부분의 노동자가 첫 주 말에는 정상 작업시간에 도달할 수 있지만 일부는 충분히 순응하는 데 최대 14일 이상 걸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렇듯 열 순응은 신체에 나타나는 생리적 변화로 직업 현장에서 이를 안전하게 형성하려면 폭염 노출시간과 작업 강도를 낮게 시작한 뒤 단계적으로 늘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외에도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은 냉방 공간에서 휴식하더라도 이미 형성된 열 순응 효과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산재 사망, 작업 투입 초기에 집중
국내 산업재해 통계에서도 적응 기간을 확보하지 못한 노동자가 얼마나 위험한지 드러난다. 고용노동부의 폭염 대응 지침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4년까지 발생한 온열질환 산재 사망자 31명 가운데 25명인 80.6%가 작업에 투입된 지 7일 이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첫날 숨진 노동자가 13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41.9%를 차지했다.
물론 해당 통계만으로 사망 원인을 모두 열 순응 부족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작업 당시 기온과 습도, 노동 강도, 휴식과 수분 제공 여부 등 여러 조건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작업 투입 초기 사망자가 집중됐다는 결과는 신규 노동자의 노출시간과 작업 강도를 단계적으로 늘리도록 한 노동부 지침을 뒷받침한다.
고용노동부도 올해 폭염 대책에서 물 제공과 그늘막 설치, 작업시간 조정, 휴게시설 및 휴식 제공, 개인 보냉장구 지급 등을 기본 수칙으로 제시했다. 체감온도 33도 이상에서 작업할 경우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부여하는 보호조치도 법제화됐다.
이런 면에서 열 순응은 적응을 위한 조치를 대신하는 이유가 아니라 보호조치가 특히 필요한 작업자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순응 효과 영구적이지 않아
그러나 조건을 통해 열에 순응했다고 해서 이 효과가 영구적으로 지속되는 건 아니다. 더운 환경에 노출되지 않으면 며칠에서 몇 주에 걸쳐 효과가 감소할 수 있다. 지난해 여름에 야외에서 일한 경험이 있더라도 올해 첫 폭염에 곧바로 적응했다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휴가나 병가 등으로 고온 작업을 일정 기간 중단했다가 돌아온 노동자에게도 점진적인 재적응 과정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더위에 순응했다고 해서 온열질환 위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바깥 기온과 습도가 높아 땀이 증발하지 않으면 몸이 내부에서 발생한 열을 충분히 방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체 체온 조절 능력보다 열이 쌓이는 속도가 빨라지면 더위에 익숙한 사람도 열 탈진과 열사병을 겪을 수 있다.
나이와 건강 상태, 복용하는 약도 차이를 만든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기간 일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열 순응 효과가 나타난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더위, 열사병 넘어 지병도 악화
세계보건기구(WHO)는 극심한 더위가 신체의 체온 조절 능력을 무너뜨리고 심장과 신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심혈관·호흡기 질환과 당뇨 등 기존 질환을 악화시키고 급성 신장 손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폭염 피해는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8월 2일까지 응급실 감시체계로 확인된 온열질환자는 누적 2000명을 넘어섰으며 추정 사망자는 16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국 응급실 참여 의료기관을 통해 집계된 잠정치로 향후 변동될 수 있다.
결론 : 열 순응은 무작정 버티기가 아니다
더위는 익숙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익숙해지는 방식은 더위 속에서 쓰러질 때까지 견디는 것이 아니다. 열 순응은 낮은 강도와 짧은 노출시간에서 시작해 휴식과 수분을 제공하면서 작업량을 단계적으로 늘리는 과정을 전제로 한다.
결국 "버티면 적응한다"라는 말은 절반만 맞는다. 신체가 고온에 적응하는 현상은 존재하지만 그 효과는 영구적이지 않고 나이와 건강 상태, 작업환경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열 순응만으로 극한의 폭염과 온열질환 위험까지 사라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열 순응= 더운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땀 분비와 피부 혈류 등 우리 몸의 체온 조절 기능이 더 효율적으로 변하는 적응 과정이다. 고온 작업 초기부터 작업·운동 강도와 노출시간을 단계적으로 늘리는 방식이 온열질환 위험을 낮추기 위한 조치로 권고된다.
여성경제신문 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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