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부터 5위까지 불과 24점 차에 묶인 2026 모토GP가 영국 실버스톤에서 후반기를 시작한다.
챔피언십 구도만으로도 결과를 점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번 주말에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기록이 걸려 있다. 실버스톤에서 열린 최근 11차례 모토GP 결선에서는 매번 새로운 우승자가 탄생했다. 올해는 이 행진이 12경기로 늘어날 수도,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다.
2013년 호르헤 로렌소(야마하)를 시작으로 마르크 마르케즈(혼다), 발렌티노 로시(야마하), 매버릭 비냘레스(스즈키), 안드레아 도비지오소(두카티)가 차례로 정상에 올랐다. 이어 알렉스 린스(스즈키), 파비오 콰르타라로(야마하), 프란체스코 바냐이아(두카티), 알레이스 에스파가로(아프릴리아), 에네아 바스티아니니(두카티)가 계보를 이었다. 지난해에는 마르코 베체키(아프릴리아)가 11번째 이름을 올렸다.
우승자의 얼굴도 다양하다. 월드챔피언뿐 아니라 당시 모토GP 첫 승을 거둔 라이더까지 포함됐고, 다섯 제조사의 팩토리팀이 번갈아 피니시 라인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특정 머신이나 주행 방식이 실버스톤을 오랫동안 지배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기록의 출발점부터 승부는 치열했다. 로렌소는 2013년 마지막 랩까지 이어진 마르케즈의 압박을 버텨 챔피언십 추격의 불씨를 살렸다. 이듬해에는 그가 로렌소를 꺾고 시즌 11번째 승리를 챙겼다.
2015년에는 비가 판도를 바꿨다. 젖은 노면에서 강점을 보인 로시가 실버스톤 첫 승과 함께 챔피언십 선두를 되찾았다. 이듬해 비냘레스는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모토GP 데뷔 승을 거두며 스즈키에 2007년 이후 첫 우승을 안겼다.
2017년에는 도비지오소가 경기 후반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마르케스가 리타이어한 가운데 비냘레스와 로시를 제치고 피니시 라인을 통과해 챔피언십 정상으로 올라섰다.
폭우와 배수 문제로 2018년 대회가 취소된 뒤 다시 열린 2019년 영국 GP는 실버스톤을 대표하는 명승부를 남겼다. 린스는 마지막 랩 마지막 코너에서 마르케즈를 추월해 불과 0.013초 앞서 결선을 마쳤다.
2020년에는 영국 GP가 열리지 않았지만 서로 다른 우승자의 행진은 이듬해 재개됐다. 콰르타라로가 압도적인 페이스로 첫 모토GP 타이틀을 향한 발판을 마련했고, 2022년에는 바냐이아가 안정적인 경기 운영으로 정상에 올랐다.
2023년 에스파가로는 결선 막판 바냐이아를 제치고 아프릴리아에 드라이 컨디션 첫 모토GP 승리를 안겼다. 이듬해 바스티아니니는 스프린트와 결선을 모두 제패하며 시즌 후반 반등의 계기를 만들었다.
지난해 영국 GP도 실버스톤의 예측하기 어려운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첫 스타트에서 알렉스와 마르크가 넘어졌지만 오일 유출에 따른 레드 플래그로 재출전 기회를 얻었다. 재시작 후에는 폴포지션의 콰르타라로가 차이를 벌리며 선두를 달렸으나 리어 라이드 하이트 장치 이상으로 멈췄다.
10그리드에서 출발한 베체키는 혼란 속에서도 차분하게 순위를 끌어올렸다. 콰르타라로가 이탈한 뒤 선두로 올라선 그는 남은 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요한 자르코보다 먼저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아프릴리아 이적 후 첫 승과 함께 실버스톤의 11번째 서로 다른 우승자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실버스톤에서는 예선 순위나 초반 속도만으로 최종 결과를 예상하기 어렵다. 빠른 방향 전환과 고속 코너가 이어지는 긴 코스에서는 타이어를 끝까지 관리해야 한다. 변화가 잦은 영국 날씨까지 더해지면 한 랩의 기록보다 결선 전체를 조율하는 능력과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판단력이 중요해진다.
2026년에는 이 행진이 12경기로 늘어날 수도,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다. 마르케즈와 바냐이아, 베체키, 비냘레스, 콰르타라로는 이미 실버스톤 결선 우승을 경험했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이 다시 정상에 서면 11경기 연속 서로 다른 우승자 기록은 끝난다.
반대로 챔피언십 리더 호르헤 마틴(아프릴리아)을 비롯해 오구라 아이(트랙하우스), 파비오 디 지안난토니오(VR46), 페드로 아코스타(KTM), 라울 페르난데스(트랙하우스)가 승리하면 우승자 명단에 12번째 이름이 추가된다.
24점 차 5파전으로 막을 올리는 2026 모토GP 후반기. 기존 우승자가 실버스톤의 오랜 행진에 마침표를 찍을지, 새로운 얼굴이 12번째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릴지는 영국 GP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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