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N뉴스] 정명달 기자┃인천시가 공공시설 103개소 적용 성과 바탕 민간 확산…인천형 예방모델 국가 표준화 추진한다.
화학사고는 단 한 번의 착오로도 대형 인명피해와 지역사회 안전 위협으로 번질 수 있다.
화학물질을 잘못 확인하거나 서로 다른 물질을 잘못된 저장탱크에 주입하는 순간, 유독가스가 발생하고 화재나 폭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화학물질 취급시설은 사고의 영향이 사업장 내부에 그치지 않고 주변 생활권까지 확산될 수 있어 사전 예방과 현장 안전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
인천광역시는 이러한 화학사고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작업자의 주의에만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사람이 순간적으로 실수하더라도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작업환경 자체를 바꾸는 새로운 예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인천시가 지난해 인천환경공단 13개 사업장, 103개 화학물질 취급시설에 도입한 ‘화학사고 안전신호등’이 그 중심이다.
시는 공공시설에서 축적한 현장 경험과 운영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부터 민간 유해화학물질 취급사업장까지 사업을 확대하고, 향후 업종과 시설 특성에 맞는 표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국가 화학물질 안전관리 정책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사고 원인에서 찾은 정책 전환
인천형 화학사고 안전신호등은 지난해 지역에서 잇따라 발생한 화학물질 오주입 사고를 계기로 추진됐다.
지난해 8월 인천환경공단 공촌사업소에서는 차아염소산나트륨이 황산알루미늄 저장탱크에 잘못 주입되는 사고가 발생해 작업자 4명이 다쳤다.
이어 같은 해 9월 미추홀구의 한 반도체 제조공장에서는 염소산나트륨이 염산 저장탱크에 잘못 투입되면서 25명이 부상을 입었다.
화학물질과 주입구를 잘못 확인한 순간적인 착오가 화학 반응과 유독가스 발생으로 이어지며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인천시는 사고 원인을 작업자의 개인적 부주의로만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봤다.
작업자에게 더 세심한 주의를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반복될 수 있는 사고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사람이 실수할 가능성을 전제로 안전관리 체계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이는 ‘실수하지 말라’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수하더라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예방 중심 안전정책이다.
화학사고 10건 중 9건 이상, 시설·안전관리 문제
화학물질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5년까지 인천에서 발생한 화학사고는 모두 49건이다. 이 사고로 5명이 숨지고 92명이 다쳤다.
사고 원인을 살펴보면 시설 결함이 23건, 안전기준 미준수가 23건으로 전체 사고의 93.9%를 차지했다.
특히 2025년에는 화학사고 8건이 발생해 1명이 숨지고 30명이 다치면서 최근 12년 가운데 가장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화학사고는 대규모 설비 파손이나 복잡한 공정 이상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작업자가 배관이나 주입구를 잘못 확인하는 작은 착오도 위험한 화학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누출된 화학물질은 호흡기와 피부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서로 반응하는 물질이 섞이면 유독가스와 고열이 발생해 화재나 폭발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물질의 독성과 누출량, 당시 기상 조건, 주변 환경에 따라서는 사업장 밖 시민 생활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화학물질 취급 현장에서는 시설별 표시 방식이 통일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저장탱크에는 화학물질명이 표시돼 있어도 배관에는 유체의 이동 방향만 표시되거나, 밸브에는 관리번호만 부착된 사례가 있다.
주입구에 물질명이 없거나 오래된 라벨이 남아 있어 작업자가 별도의 도면과 작업지시서를 확인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화학물질 정보를 여러 곳에서 따로 확인해야 하는 환경에서는 숙련된 작업자도 순간적으로 배관이나 주입구를 혼동할 가능성이 있다.
같은 약품은 같은 색…눈으로 확인하고 연결 단계에서 한 번 더 차단
화학사고 안전신호등은 화학물질마다 고유한 색상을 정하고, 저장탱크부터 배관·밸브·주입구까지 동일한 색을 적용하는 시각적 식별체계다.
차아염소산나트륨은 초록색, 황산알루미늄은 파란색, 수산화나트륨은 노란색 등으로 구분해 작업자가 저장과 이송, 주입 과정에서 화학물질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탱크에 표시된 색상과 배관·밸브·주입구의 색상이 연결되기 때문에 작업자는 여러 표지와 문서를 반복해서 확인하지 않아도 화학물질의 이동 경로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 현장 여건에 따라 서로 다른 화학물질의 배관과 주입 호스가 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전용 연결장치도 적용한다.
연결구의 직경이나 나사산, 핀 또는 키의 위치 등을 화학물질별로 다르게 설계해 작업자가 색상이나 물질명을 잘못 확인하더라도 연결 단계에서 오주입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즉, 색상으로 한 번 확인하고 전용 연결장치로 한 번 더 차단하는 ‘이중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화학사고 안전신호등은 새로운 법적 규제를 추가하는 정책도 아니다.
기존 법령에 따른 화학물질 취급기준과 경고표지, 안전교육, 시설검사, 비상대응체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각적 식별과 물리적 연결 차단 장치를 더해 사고 가능성을 낮추는 예방 중심 정책이다.
인천시는 지난해 공촌사업소에서 염소가스 사고가 발생한 직후 화학물질 사고 대책회의를 열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했다.
이어 2025년 9월 17일부터 11월 6일까지 인천환경공단이 운영하는 13개 사업장의 화학물질 취급시설을 전수 점검했다.
차아염소산나트륨과 황산알루미늄, 수산화나트륨 등 15종의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103개 시설을 대상으로 안전신호등 적용과 현장 개선을 완료했다.
시설별 약품 저장탱크와 주입구에는 화학물질명과 전용색상을 표시하고, 주입구에는 명패와 시건장치를 설치했다.
탱크 주변에는 물질안전보건자료 보관함을 배치했으며, 약품 주입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주변 작업자도 쉽게 알 수 있도록 회전경고등도 설치했다.
공공시설에서 현장 적용 가능성과 운영 효과를 확인한 인천시는 올해부터 민간 유해화학물질 취급사업장으로 사업 범위를 확대한다.
지난 7월 20일에는 지역 사업장을 대상으로 화학물질 안전관리 교육을 실시해 안전신호등의 도입 취지와 현장 적용 방법을 안내했다.
희망 사업장에는 현장 맞춤형 안전 컨설팅도 지원한다.
전문가가 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취급 화학물질과 저장·이송 공정을 확인하고, 오주입 위험 구간과 기존 표시 상태를 분석한다.
이후 사업장별 시설 구조와 작업환경에 맞춰 색상 표시와 전용 연결장치 적용 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인천의 현장 경험, 국가 화학안전 표준으로
인천시는 민간사업장의 자율적인 참여를 확대하고, 2026년부터 2027년까지 현장 적용 결과와 운영 사례를 축적할 방침이다.
이를 토대로 업종과 시설별 특성을 반영한 적용 방법과 유지관리 기준을 정립하고, 2027년 이후 관계기관과 협의해 표준 가이드라인 마련을 추진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인천에서 실증한 화학사고 예방체계를 국가 안전관리 정책에 반영하도록 중앙정부에 제도 개선을 건의할 계획이다.
주요 내용은 ▲화학물질별 시각적 식별체계 도입 ▲저장탱크·배관·밸브·주입구의 일관된 표시기준 마련 ▲오주입 예방을 위한 전용 연결장치 적용 등이다.
지역에서 발생한 사고를 현장 개선으로 연결하고, 공공시설에서 먼저 검증한 뒤 민간사업장으로 확산해 국가 제도로 발전시키는 ‘상향식 화학사고 예방모델’을 인천이 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윤은주 인천시 환경안전과장은 “화학사고 안전신호등은 작업자에게 더 주의하라고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순간적인 착각이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작업환경과 안전관리체계를 함께 개선하는 정책”이라며 “공공시설에서 축적한 현장 경험을 민간사업장으로 확대하고, 인천의 예방모델이 국가 화학물질 안전관리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 마련과 제도 개선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화학사고 안전신호등은 단순한 색상 표시 사업이 아니다.
사고가 발생한 뒤 대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 자체를 줄이는 예방 중심의 안전정책이다.
인천시는 현장에서 확인한 경험을 민간으로 확산하고 국가 표준으로 발전시켜,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산업 현장과 시민 생활권을 함께 보호하는 새로운 안전관리 모델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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