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27일 19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동명동에 위치한 카페 오리엔스에서 개최된 인플루언서 ‘김은샘’씨의 강연에 윤동욱 크루가 다녀왔습니다. 강연 주제는 <당신의 결핍이 사실은 축복인 이유>입니다. 윤동욱 크루가 현장 취재를 해온 걸 토대로 박효영 기자가 두 편에 걸쳐 기획 시리즈 기사를 작성합니다. 이번 기사는 1부입니다.
[평범한미디어 →현장 취재: 윤동욱 크루 / 기사 작성: 박효영 기자] 과일 먹방 영상 하나로 조회수 200만뷰를 기록하며 인도네시아를 사로잡은 해외 6만 인플루언서 김은샘씨. 은샘씨는 본인의 강연회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솔직한 실패담과 칩거 생활 그리고 결핍을 기회로 전환한 경험을 고백했다. 김씨는 강연 시작과 함께 “나의 이야기는 성공담보다는 실패담에 좀 더 가깝다”며 “실패를 전환한 실제 경험을 통해 여러분이 용기와 희망을 얻고 각자의 결핍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인사말을 건넸다.
성공에 대한 이야기는 온오프라인을 통해서 많이 들을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내가 이것저것 이렇게 도전을 하면서 넘어지고 좌절했던 그런 실패를 또 전환할 수 있는 이런 이야기는 오히려 접하기가 어렵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 경험하고 느꼈던 이야기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용기와 희망을 좀 얻어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 키워드가 결핍인데 각자가 가지고 있는 그 결핍들을 조금은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은샘씨가 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윤동욱 크루>
김씨가 해외 인플루언서와 해외 취업이라는 길을 택한 바탕에는 학창시절의 가난과 인정 욕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원래 엄청 유명해지고 싶었다. 사람들한테 인정도 받고 돈도 많이 벌고 누가 봐도 진짜 너무 멋있다! 성공했네! 이런 말을 듣고 싶었다. 왜냐면 내가 학창시절 내내 좀 어렵게 살았다. 90년대생인데 그때 당시에 노스페이스 바람막이가 엄청 유행했다. 혹시 아는가? 사서 입었던 분들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난 그런 고가 브랜드의 바람막이를 다 입을 수 없는 약간 그런 형편이었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마음속에는 나도 위축되지 않고 싶고 무시당하지 않고 싶다.
그래서 스무살이 되자마자 여러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20대 초반 말레이시아 해외 봉사활동이 결정적이었다. 그때 배우기 쉬운 말레이어(인도네시아에서도 사용)를 만나고, 인구 2억4천만명에 달하는 인도네시아의 시장성 그리고 동남아 현지의 강력한 한류 열풍을 포착해서 인도네시아를 도전 과제로 삼았다.
내가 인도네시아를 선택하게 된 계기를 말씀을 드리면 20대 초반에 말레이시아로 해외 봉사를 가게 됐다. 그래서 거기서 처음으로 이제 말레이어를 배우게 됐다. 말레이어가 배우기 쉬운 언어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근데 또 말레이어를 쓰는 인도네시아가 엄청 크다. 나라가 진짜 어마어마하게 큰 섬나라다. 인구도 세계 4위 정도에 들 만큼 한 2억명 정도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그래서 그렇게 인도네시아를 선택하게 됐고, 동남아에서 1년 넘게 살아보니까 한류 열풍이 장난이 아니더라. 그래서 기회가 보였다. 여러분들도 인도네시아를 가면 박보검, 장원영이 될 수 있다. 진짜다! 한국인이라고 하면 정말 호의적이고 한국 문화를 진짜 우리보다 좋아한다. 근데 한국은 어떤가? 조금이라도 약간 유명해지면 시기질투를 받기도 하고 또 나락으로 가기도 하지 않은가. 그래서 난 유명해지기 전부터 그런 걱정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인도네시아라는 해외를 이제 고르게 됐다.
가슴이 뛰고 설레어서 빨리 인도네시아로 가고 싶은데 하필 코로나 시국이었다. 놀고만 있을 순 없어서 한국에서 독학으로 어학 자격증 2개를 취득했을 만큼 노력했다. 참고로 인도네시아어와 말레이어는 한국어로 치면 “남한 말과 북한 말 정도의 차이”라고 한다. 그렇게 방역 조치 완화 이후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두 달만에 중견 해외 기업 취직에도 성공했다.
하늘길이 막혀 있으니까 독학으로 어학 자격증을 2개나 땄다. 코로나가 끝나고 나니까 어학 연수를 바로 갔고 또 마음 한켠에는 해외 인플루언서라는 꿈을 품으면서 또 해외 취업에도 도전을 하게 됐다.
그러나 동료와 상사로부터 받은 심각한 개인정보 및 사생활 침해, 언어폭력 등으로 인해 4개월만에 지옥 같은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퇴사를 결심했다.
해외 취업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되게 글로벌한 환경에서 외국어를 막 샬라샬라 하면서 되게 멋있어 보이는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나도 그런 멋있는 상상을 했고 이제 내 인생에 꽃길이 펼쳐졌구나. 어깨뽕이 장난이 아니었다. 우월감과 열등감은 한끝 차이라고 하는데 이제 신분 상승했네? 약간 이런 마음도 들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이 회사를 4개월만에 퇴사를 하게 됐다. 그리고 인생 최악의 회사가 된다. 동료들이나 상사 때문에 정말 지옥 같은 평일을 보냈었다. 사람 때문에 너무 괴로웠는데 이유를 다 말씀드리기가 어렵지만 개인정보 침해, 사생활 침해 그리고 약간 상사들이 나에 대한 욕을 나눈 그런 대화 내용을 내게 캡처해서 보낸다든가. 본사에 이야기하면 충분히 징계 사유가 될 정도인데. 업무와 관련이 없는 것들로 그렇게 날 힘들게 했다. 안 그래도 나는 사회적 민감성이 되게 높은데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데 인간관계가 힘들면 정말 너무 괴롭더라. 그래서 날 살리기 위해서 퇴사를 했다.
꿈꾸던 해외 취업이 비극으로 귀결되니 진짜 해외 인플루언서의 길이 열렸다. 본격적으로 인도네시아 현지 맞춤형 컨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김씨는 마트에서 산 과일을 즉석에서 먹는 대본 없는 영상 하나로 조회수 200만뷰를 달성했다. 팔로워는 1만, 2만, 5만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현재는 5.4만명에 달하는 인도네시아 틱톡 계정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현지의 낮은 물가 지수로 인해 광고 단가가 매우 낮았고, 취업 병행과 모델 활동에도 불구하고 생활 유지가 어려웠다. 거의 파산 직전에 내몰렸다고 한다. 결국 김씨는 몸과 마음에 번아웃이 왔다.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귀국해야 했다. 김씨는 3~4년의 도전 끝에 깨달은 자신의 진심을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 보이는 건 다르더라.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걸 구분하지 못하고 착각을 한다. 내 마음 깊은 곳의 욕망은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일을 찾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 유명해지고 싶다. 해외 취업해서 신분 상승하고 싶다. 결국 이런 마음도 누가 시킨 일이었을까? 나의 내면 깊은 두려움과 결핍이 시킨 일이었더라. 여러분들도 그런 생각을 한 번쯤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사회가 정의하는 그 정상성에 도달하지 못하면 어쩌지? 그런 두려움과 나의 어린시절 힘들었던 그 가난했던 결핍들이 시킨 일이었다.
김은샘씨는 거듭된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내 안의 결핍을 바라보게 됐다. <사진=윤동욱 크루>
한국으로 돌아온 김씨는 부끄러움과 자괴감에 친구들에게조차 귀국 사실을 알리지 못한 채 6개월간 은둔에 가까운 ‘쉬었음 청년’의 삶을 살았다.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었는데 초라한 모습으로 얼굴을 비출 순 없었다.
내가 해외 취업을 했을 때 엄청난 우월감을 느끼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어땠을까? 정말 자신감에 쩔어 있었다. 옛날에는 사실 은둔형 외톨이들의 마음을 솔직히 잘 이해를 못했는데 내가 ESFP여가지고 워낙 사람들을 만나고 뭔가 하는 걸 좋아해서. 아니 왜 그냥 하면 되지 약간 이런 마인드였다. 근데 그렇게 내가 한심하게 바라봤던 마음들이 나한테 돌아오니까 스스로를 너무 한심하게 보고 무시하고 있더라.
그러나 삶의 밑바닥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가 완전히 바뀌었다. 편의점 알바생, 새벽 택배기사, 길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다른 사람들의 삶이 눈에 들어오며 진정한 겸손을 배웠다. 김씨는 故 신해철씨의 어록을 인용하며 대기업이나 전문직, 화려한 인플루언서라는 외부 기준에 나를 맞출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내가 무슨 꿈을 이루는지에 대해서 신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그저 태어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태어난 것만으로도) 그것을 다 이뤘기 때문에 나머지 인생은 보너스 게임 같은 거다. 신께서는 여러분들이 행복하기만을 바란다. 나는 그냥 존재만 해도 되는데 내가 인플루언서가 되지 않아도, 대기업에 다니지 않아도, 전문직 시험에 붙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대기업 다니려고 태어난 건 아니지 않은가.
잘 되고자 하는 욕심과 남들의 시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니 나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패션 모델’이라는 것과 연이 닿게 됐다. 완벽하고 비현실적인 모델들의 영상 대신 자신의 체형 컴플렉스와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국내 계정을 즉흥적으로 개설했다. 기획안도 없고 얼굴을 가린 채 컴플렉스를 솔직하게 보여준 영상은 단 2~3일 만에 조회수 18만회를 기록했고 2주만에 팔로워 1000명을 모았다.
사람들은 완벽함보다 공감에 더 반응을 하는 구나. 우리는 뭔가 흠이 없고 매끈하고 완벽한 모습만 뭔가 사랑 받을 자격이 있고. 결함 없이 잘난 모습만 인정받을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감추게 되는데. 진정한 강함은 나의 그 연약함. 내가 결핍이라고 느꼈던 존재들을 드러낼 수 있다고 허용해주는 것이 진정한 강압이라는 걸 내가 알게 됐다.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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