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이 글로벌 산업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면서 수소와 이차전지,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에너지저장장치(ESS), 폐배터리 재활용, 스마트팜 등 이른바 ‘기후테크(Climate Technology)’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 초기 투자와 기술 상용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위험은 여전히 산업 확대의 걸림돌이다. 기술 경쟁력만으로는 시장을 키우기 어려운 만큼 투자 불확실성을 낮추는 ‘위험관리’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면서 보험산업의 역할도 보장 중심에서 산업 생태계를 뒷받침하는 금융 인프라로 확대되고 있다.
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보험사들은 기후테크를 미래 성장산업으로 보고 관련 보험상품과 위험관리 서비스를 잇달아 확대하고 있다. 사고 이후 손실을 보상하는 전통적인 보험 기능에서 나아가 사업 초기 단계부터 기술적 위험을 분석하고 투자 안정성을 높이는 ‘리스크 매니저(Risk Manager)’ 역할까지 수행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이는 기후테크 산업의 특성과도 맞닿아 있다. 기후테크는 막대한 초기 투자와 장기간의 기술 검증이 필요한 데다 상용화 이후에도 설비 사고와 성능 저하, 환경오염, 사이버 공격 등 복합적인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위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면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더라도 민간 투자 확대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보험연구원이 발표한 ‘기후테크와 보험의 역할’ 보고서 역시 같은 맥락이다. 보고서는 기후테크 산업이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보험이 단순한 보장 기능을 넘어 위험관리와 투자 활성화를 지원하는 금융 인프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커지는 기후테크 시장…투자 성패는 ‘리스크 관리’에서
기후테크는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기술 전반을 의미한다. 정부도 클린테크와 카본테크, 에코테크, 푸드테크 등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으며 산업계 역시 수소와 재생에너지, 이차전지, CCUS 등을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시장 성장세도 가파르다. 보험연구원이 인용한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퓨처마켓인사이트(Future Market Insights)에 따르면 세계 기후테크 시장은 올해 467억달러에서 2036년 4212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24.6%에 달한다.
글로벌 투자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사이트라인 클라이밋(Sightline Climate)에 따르면 지난해 기후테크 벤처투자는 405억달러를 기록하며 증가세로 전환했다. 다만 투자자금은 기술 검증이 일정 수준 이뤄진 성장 단계 기업에 집중되는 모습이다. 초기 기업일수록 기술력보다 상용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투자 판단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다.
국내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성장 잠재력은 높지만 사업화 과정의 불확실성을 줄여줄 금융 지원 체계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기술 혁신과 함께 위험을 관리하고 분산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시장 확대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술별 위험도 제각각이다. 수소 생산시설은 누출과 폭발, 금속 취성에 따른 설비 손상 위험이 있고, ESS와 리튬이온 배터리는 열폭주에 따른 화재 가능성을 안고 있다. CCUS는 저장된 이산화탄소의 장기 누출 가능성이,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사이버 공격과 시스템 장애가 주요 위험으로 꼽힌다. 폐배터리 재활용과 폐플라스틱 열분해, 스마트팜, 세포배양육 역시 사업 특성에 따른 다양한 위험요인이 존재한다.
해외는 ‘맞춤형 보장’ 경쟁…국내는 전문성 확보 과제
글로벌 보험사들은 기후테크를 새로운 성장시장으로 보고 관련 상품과 위험관리 서비스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취리히보험그룹은 글로벌 보험 브로커 에이온(Aon)과 함께 수소 및 CCUS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건설 지연과 영업중단, 배상책임 등을 보장하는 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 최대 재보험사인 뮌헨리(Munich Re)는 수소 설비와 리튬배터리 성능 저하 위험을 담보하는 상품을 선보였으며 일부 배터리에는 장기 성능보증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처브(Chubb)는 리튬배터리 제조·운송 과정의 화재와 배상책임 위험을 종합적으로 보장하는 상품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기차 충전 인프라 관련 보험도 확대하고 있다. 일부 글로벌 보험사들은 보험 판매를 넘어 기후테크 기업의 기술과 프로젝트를 사전에 분석하는 ‘리스크 엔지니어링’ 서비스까지 제공하며 산업 파트너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보험연구원 한진현 연구위원은 “국내 보험사들도 기후테크 분야에 특화된 위험평가 체계와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술 개발 초기부터 기업과 함께 위험요인을 분석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확대하는 한편 민간 보험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대형 위험은 정책보험과 재보험, 공공 지원 등을 연계해 보장 공백을 줄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기후테크 산업은 기술 혁신만으로 성장하기 어렵고,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위험관리 체계가 함께 구축돼야 한다”며 “보험도 단순한 손실 보상을 넘어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하는 금융 인프라로 역할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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