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사람들의 감정이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로 위에서의 사소한 운전자 시비, 온라인 공간에서의 비난과 혐오,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 주차 문제, 직장 내 갈등 역시 작은 오해에서 시작되지만 쉽게 감정싸움으로 확대되고 법정분쟁으로까지 비화된다. 갈등은 길어지고 분쟁은 깊어지지만 정작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현대사회는 이전보다 분노에 취약한 환경을 만들고 있다.
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을 타인으로부터 억압받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끊임없이 몰아붙이는 존재로 설명한다. 이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같은 것도 폭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과거 사회가 금지와 통제를 통해 인간을 억눌렀다면, 오늘날 사회는 성과와 경쟁을 통해 인간을 지치게 만든다. 더 좋은 직장, 더 높은 실적, 더 나은 삶을 위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현대인은 자유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끝없는 경쟁과 비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누적된 스트레스와 불안, 좌절감, 박탈감은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직장에서는 유능한 사람처럼, 사회에서는 이성적인 사람처럼, 가정에서는 아무 문제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칼 융은 인간이 일종의 가면인 페르소나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페르소나는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가면으로 인해 자아와 괴리가 커질수록 문제가 발생한다. 지쳤지만 괜찮은 척하고, 억울하지만 참아야 하는 삶이 반복되면 감정은 해소되지 못한 채 무의식 속에 쌓인다. 이렇듯 그림자 영역에 축적된 감정은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폭발한다. 경적 한 번, 댓글 한 줄이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송실무 현장에서, 이렇듯 억제하지 못할 감정으로 인해 불필요한 소송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법이 사회질서 및 권리구제의 중요한 수단임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으나, 법을 통한 분쟁해결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 민사소송은 생각보다 입증이 어렵고, 승소를 한다고 해도 기대보다 배상금이 적은 경우가 많다. 형사고소를 통해 상대가 벌금형 등 처벌을 받아도,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거나 해소되지는 않는다. 나아가 상대방이 무혐의로 종결되면 그 트라우마는 더 크게 남는다.
그래서 이를 완화할 수 있는 것으로 조정제도가 마련돼 있다. 민사분쟁의 경우 소송 이전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고, 소송이 진행되는 중에도 조정을 진행할 수 있다. 형사절차에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피해 회복과 합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형사조정 절차가 있다.
조정은 법으로 승패를 가르는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갈등을 끝내는 제도다.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조금씩 양보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법률적으로는 다소 양보하는 결과가 될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훨씬 큰 가치를 창출한다. 갈등의 장기화를 막고, 관계를 회복하며, 공동체의 신뢰를 지켜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분노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아니라 분노를 관리하는 지혜일지도 모른다. 피로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지쳐 있다. 그리고 각자의 가면 뒤에서 말하지 못한 상처를 숨기고 살아간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분노 뒤에도 나와 비슷한 피로와 상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갈등이 없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다. 법정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갈등을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조정은 단순한 법적 절차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는 사회적 약속이며 화해를 위한 제도적 장치다. 분노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화해의 기술은 더욱 중요해진다. 이제 우리 사회가 상대방을 향한 비난보다 이해를, 대결보다 조정을, 분노보다 배려를 선택하는 성숙한 공동체로 나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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