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고예인 기자 | 효성가 ‘형제의 난’은 현재 진행형이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과 친동생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의 갈등은 퇴사와 비상장 계열사 지분, 민·형사소송과 언론전이 얽힌 장기 분쟁으로 이어졌다. 현재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과 박수환 전 뉴스커뮤니케이션즈 대표는 관련 혐의로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한스경제는 단독 입수한 재판 증언과 대응 문건, 취재 내용을 토대로 효성 형제분쟁의 전말을 6회에 걸쳐 추적한다. <편집자주>편집자주>
박수환 전 뉴스커뮤니케이션즈 대표가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 측에 합류한 출발점은 '언론 대응'이었다. 조현문과 가족을 둘러싼 소문에 대응하고 향후 언론 보도에 대비하기 위한 자문 역할이었다는 게 피고인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관련 재판에서 나온 증언을 따라가면 박수환의 역할은 언론 문의를 관리하거나 해명자료를 작성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박수환이 합류한 뒤 조현문 측 논의의 무게중심은 효성에 재직하며 현안을 해결하는 방안에서 회사를 어떤 방식으로 떠나고, 퇴사 이후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로 이동했다. 박수환은 조현문의 퇴사 보도자료를 작성했고 효성 측에 전달할 메시지와 접촉 방식에도 관여했다.
박수환은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의 사임 의사와 요구사항을 전달하기 위한 본사 방문에도 참여했다. 첫 방문에서 효성 명의의 보도자료 발표가 결정되지 않자 박수환은 법률대리인과 함께 본사를 다시 찾아 관계자들과 협의했다.
한스경제가 확보한 증언자료를 종합하면 내부 역할은 일정 부분 구분돼 있었다. 조현문이 대응 방향과 접촉 상대를 정하면 박수환이 대외적으로 사용할 문구와 표현 방식을 제안했다. 법률대리인은 협의 내용을 문건으로 정리하거나 지정된 상대에게 전달했다.
박수환이 법률분쟁 전체를 지휘한 것은 아니었다. 주요 판단은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내렸고 소송 실무는 변호사들이 맡았다. 다만 조현문의 의사가 보도자료와 대상별 메시지로 만들어져 효성 본사와 가족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박수환이 문안 작성자이자 협의자로 움직인 정황은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 2월 26일 첫 방문…수취인별 메시지 전달
박수환이 조현문 측에 합류한 뒤 회의에서 다루는 의제는 달라졌다. 조현문의 법률대리인이었던 공승배 변호사는 재판에서 박수환이 참여하기 전에는 조현문이 효성에 재직한 상태에서 당면한 법률 현안을 해결하는 방안을 주로 논의했다고 증언했다.
박수환이 조현문에게 '회사를 떠나는 편이 낫다'는 의견을 제시한 뒤에는 어떤 방식으로 퇴사하고, 이후 발생할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는 취지다. 퇴사 방침이 구체화되자 효성 경영진과 가족에게 전달할 메시지도 수취인별로 마련됐다. 공 변호사는 2013년 2월 26일 효성 본사를 방문할 당시 이상운 당시 부회장과 조현준 회장, 조현상 당시 부사장 등에게 전달할 메시지와 발언의 수위를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으로부터 전달받았다고 증언했다.
메시지를 받을 인물은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정했다. 공 변호사는 지정된 상대를 만나 각각 준비된 문건을 전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밝혔다. 접촉 대상이나 메시지의 방향을 법률대리인이 독자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조현문이 정한 구도를 변호사가 실행하는 방식이었다.
피고인 측은 이를 효성과 가족에게 사임 의사와 입장을 전달하고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절차였다고 주장한다. 반면 검찰은 메시지 전달과 보도자료 요구 과정에서 조현준 회장 관련 자료와 수사기관을 의미하는 ‘서초동’이 함께 거론됐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검찰은 공 변호사에게 (효성이)보도자료를 내지 않으면 조현준 회장 관련 비리 자료를 들고 ‘서초동에 가겠다’는 내용이 메시지에 포함된 것 아니냐고 물었고, 공 변호사는 해당 내용이 포함됐다고 답했다. 다만 ‘서초동’ 발언이 보도자료 발표 요구와 직접적인 조건관계였는지는 증언 과정에서도 공방이 이어졌다.
공 변호사는 처음에는 누구에게 해당 표현을 했는지 특정하지 못했고, 보도자료뿐 아니라 효성 내부의 불법행위에서 벗어나려는 더 큰 목적이 있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피고인 측은 자체 보도자료를 낼 수 있는 대안이 있었던 만큼 보도자료를 관철하기 위해 수사를 언급할 이유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공 변호사는 재반대신문에서 보도자료를 내지 않으면 ‘서초동에 간다’는 발언을 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해당 표현의 근원적 동기가 보도자료 한 건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증언했다. 누구에게 어떤 조건을 붙여 말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고도 했다.
▲ ‘뉴스컴 발표’보다 ‘효성 발표’…플랜A가 우선
박수환의 관여가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부분은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의 퇴사 보도자료다.
공 변호사는 재판에서 해당 보도자료의 작성자가 박수환이라고 증언했다. 자료에는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효성 중공업 부문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성장시키고 경쟁력을 높였으며 효성이 그의 앞날을 축복한다는 취지의 문구가 담겼다.
조현문 측은 효성이 보도자료를 발표하지 않을 경우 박수환이 운영한 뉴스커뮤니케이션즈나 법률대리인 명의로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방안도 준비했다. 내부에서는 효성이 직접 자료를 발표하는 방안을 ‘플랜A’,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 측이 자체 배포하는 방안을 ‘플랜B’로 구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 수단이 있었음에도 조현문 측은 효성 명의의 발표를 우선했다. 자신이 경영 성과를 주장하는 것보다 효성이 이를 인정하고 퇴사 배경을 긍정적으로 설명하는 형식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자체 배포라는 플랜B가 있었음에도 효성 명의의 플랜A를 관철하기 위해 본사를 방문한 것 아니냐고 물었고, 공 변호사는 이를 인정했다. 첫 방문에서 보도자료 요구를 관철하지 못하자 조현문이 아쉬움을 나타냈고, 이틀 뒤인 2월 28일 박수환과 공 변호사를 다시 보냈다는 게 검찰 신문의 요지다.
공 변호사 역시 두 번째 방문은 첫날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 문건을 전달하기 위해 미리 예정된 일정이 아니라, 첫 방문 결과를 보고받은 조현문이 다시 지시해 이뤄졌다고 증언했다. 그는 “효성 명의로 내는 것이 중요했다”며 두 번째 방문 목적이 플랜A를 다시 관철하려는 시도였다고 밝혔다.
피고인 측은 효성 명의 발표를 요구한 이유가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공 변호사는 조현문이 회사 내부 문제를 피해 도망가거나 가족 관련 소문 때문에 물러나는 것으로 비치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고 증언했다. 효성이 “경영을 잘해왔지만 새로운 길을 위해 사임한다”는 취지로 정리해주기를 원했다는 설명이다.
보도자료가 사임 이후 허무맹랑한 음해를 막으려는 목적도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다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보도자료를 내지 않으면 무엇을 하겠다’는 요구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 두 번째 본사 방문서 박수환이 협의 주도
첫 번째 효성 본사 방문에서 플랜A가 성사되지 않자 박수환은 2월 28일 공 변호사와 함께 효성 본사를 다시 찾았다. 공 변호사는 두 번째 방문의 세부 대화는 대부분 기억하지 못한다고 전제했다. 다만 첫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자 조현문이 박수환을 동행시켰으며, 이날 협의에서는 박수환이 주도권을 잡았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박수환의 주된 대화 상대는 노재봉 당시 효성 지원본부장을 비롯한 효성 측 관계자였던 것으로 재판에서 다뤄졌다. 박수환이 보도자료 문안만 작성한 것이 아니라 효성이 발표 주체가 되도록 직접 본사를 찾아 협의했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은 통상적인 문안 작성과 차이가 있다.
다만 박수환이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표현을 사용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공 변호사는 두 번째 방문 당시 대화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고 밝혔고, 자신이 직접 듣지 않은 박수환과 조현준 효성 회장의 별도 면담 내용에 대해서는 이후 공유받았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검찰은 2013년 7월 16일 박수환이 서울 조선호텔 나인스게이트에서 조현준 회장을 만나 사과하지 않으면 효성이 ‘서초동에 가게 될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내용을 제시했다. 공 변호사는 만남이 이뤄진 사실은 알지만 해당 발언은 기억나지 않으며, 박수환이 만남 이후 팀 내부에 공유한 내용을 통해 알게 됐을 수 있다고 답했다. 직접 목격한 진술은 아니었던 셈이다.
박수환이 조현문의 정상적인 퇴사 발표 협의를 한 것인지, 효성 측의 결정을 바꾸기 위해 압박성 발언을 사용했는지는 법원이 가려야 할 쟁점이다.
▲ ‘HJ Talk Point’에 담긴 세 가지 목적
박수환의 대외 메시지 관여를 보여주는 또 다른 자료는 2013년 3월 18일 작성된 ‘HJ와의 Talk Point’다. 이 문건은 조현준 회장과의 면담 가능성에 대비해 마련됐다. 공 변호사는 문건에 적힌 표현이 당시 회의에서 나온 발언을 자신이 받아 적은 것이라고 증언했다.
검찰이 제시한 문건의 ‘목적’ 항목에는 크게 세 가지 내용이 담겼다.
첫째, 모친과 효성 경영진 등에 의한 추가적인 음해나 공격을 차단하는 것. 둘째, 이를 위해 조현준 회장을 제압하고 충분히 겁을 먹게 하는 것. 셋째, 향후 부동산 계열사와 노틸러스효성 등 비상장 지분 정리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공승배 변호사는 문건에 해당 내용이 기재된 사실은 인정했다. 검찰이 조현준 회장을 겁먹게 해 향후 지분 거래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 한 계획도 포함된 것 아니냐고 묻자 “그렇게 읽힌다”고 답했다.
반면 피고인 측은 문건의 핵심 목적이 비상장 지분을 비싸게 팔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효성 및 가족과의 불필요한 특수관계를 정리하고 회사 내부의 위법행위로부터 벗어나는 데 있었다고 주장한다.
공 변호사도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지분관계를 정리하려 한 동기 가운데 특수관계인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가격을 높이기 위한 의도였는지는 당사자의 내심에 해당한다며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HJ Talk Point’가 실제로 조현준 회장에게 전달됐는지도 중요하다. 공 변호사는 해당 문건이 내부에서만 공유됐고 자신은 조현준 회장을 만나지 못해 내용을 전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문건 속 강한 표현을 누가 제안했는지를 둘러싼 기억도 명확하지 않았다. 공 변호사는 이전 증언에서 박수환의 표현이라고 답했지만 반대신문에서는 발언자가 기억나지 않으며, 문건과 당시 역할을 토대로 “굳이 고른다면 박수환”이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내부 문건에 강한 표현이 포함된 사실과 박수환이 그 표현을 실제 조현준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은 구분돼야 한다.
▲ 법률전략은 조현문, 박수환은 표현 수정에 관여
재판에서는 박수환이 언론 대응을 넘어 법률 업무에 관여했는지도 다뤄졌다. 공 변호사는 박수환이 일부 법률 문건의 표현을 수정하거나 의견을 보낸 기억이 있다고 증언했다. 특히 자신이 조현문에게 보낸 문건에 박수환의 의견이(반영돼) 돌아와 놀랐던 기억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박수환이 법률서면 전체를 작성하거나 소송 방향을 정한 것은 아니라는 게 공 변호사의 증언이다. 일부 문구에 대한 의견인지 문서 전체에 대한 수정인지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공승배 변호사는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효성 내부 사정을 잘 알고 법률지식도 갖춰 실제 법률 대응을 주도했으며, 자신이 작성한 문건에도 여러 차례 수정 의견을 냈다고 답했다. 박수환과는 각자의 전문영역에서 의견을 내는 방식으로 역할을 나눴다고 설명했다.
박수환이 합류하기 전부터 진행된 민사 절차도 있었고, 그의 참여 이후 기존 소송 방향이 바뀌지는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박수환이 분쟁 전체를 설계하거나 법률 대응을 지휘한 인물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반면 검찰은 박수환이 퇴사 보도자료 작성과 두 번째 효성 본사 방문, 대외 메시지 구상, 일부 법률 문건에 대한 표현 수정까지 연속적으로 참여한 점을 주목한다. 단순히 언론의 질문에 대응한 것이 아니라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 측의 요구를 외부에 전달하고 관철하는 실행 과정에 참여했다는 시각이다.
피고인 측은 박수환이 언론과 표현 분야에서 의견을 냈을 뿐 법률적 판단과 최종 결정은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과 변호사들이 했다고 맞서고 있다.
박수환이 효성 형제분쟁을 시작한 당사자는 아니다. 효성을 떠날지,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낼지, 법률 대응을 어디까지 진행할지를 결정한 사람도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었다.
그러나 조현문의 의중(意中)이 퇴사 보도자료와 수취인별 문건으로 구체화돼 효성 본사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박수환은 문안을 작성하고 직접 협의에 참여했다.
재판이 가려야 할 경계도 이 지점이다. 박수환은 의뢰인의 입장을 외부에 전달한 언론 자문가였는가. 아니면 효성 측의 결정을 움직이기 위해 메시지를 설계하고 관계자 접촉에 나선 실행자였는가.
Copyright ⓒ 한스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