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임준혁 기자 | 조선·철강업계의 하반기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교섭이 난항을 거듭하며 하투(夏鬪·하계투쟁)가 장기화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시행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은 조선·철강업의 성과급 갈등 전선을 정규직 노사를 넘어 하청·협력업체까지 확산시켰다.
조선업은 노란봉투법뿐 아니라 호황에 따른 노조의 N% 성과급 지급 요구, 중대재해까지 추가되며 노사 간 임단협의 3대 변수로 작용하는 형국이다. 철강업은 업황 부진 속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와 사측의 제안 사이의 큰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 노조가 지난 5월 12일 확정한 올해 임단협 요구안에는 처음으로 영업이익의 30% 성과급 지급이 담겼다. 사내하청 노조 역시 원청과 같은 수준의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외에도 노조는 기본급 14만9600원 인상, 상여금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 2분기 영업익 1.6조...勞 “성과 공유”
반도체 호황으로 불붙은 노조의 성과 배분 요구가 조선업계로 번진 것이다. 조선 슈퍼사이클 수혜로 조선3사 기준 3.5년치 이상의 역대급 수주잔고와 1·2분기 호실적이 노조의 ‘영업이익 N% 성과급 지급’ 요구에 불을 당겼다. 실제 HD한국조선해양의 2분기 영업이익은 1조6451억원에 달한다.
HD현대중공업 노사는 5월 말부터 지난달 21일까지 14차례 교섭을 진행했지만 합의안 마련에 실패했다. 사측은 2~3년 전 고가에 수주한 선박이 매출에 반영돼 올해 실적이 급상승했지만 환율과 원자재 가격 등 외부 변수와 조선소 경쟁력 제고를 위한 투자를 고려하면 단기 실적만으로 성과급 보상 체계를 확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노조는 조합원 대상 파업 찬반투표 및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 신청 등 쟁의 절차를 진행하려 했지만 최근 울산·군산조선소에서 중대재해가 잇따르면서 절차를 미뤘다.
▲ HD현대중공업, 올해 중대재해로 3명 숨져
HD현대중공업에서는 올들어 근로자 3명이 중대재해로 사망했다. 지난 4월 울산조선소에서 정비 중이던 잠수함에 불이 나 협력업체 근로자가 숨졌고 지난달 18일에는 외국인 근로자가 곤돌라와 작업 발판 사이에 끼여 사망했다. 이어 엿새 만인 7월 24일 군산조선소에서 협력업체 근로자가 용접 작업을 위해 선박 블록 하부에서 입식 지게차를 이용해 자재를 고정하던 중 후진하다가 지게차 지붕과 선박 블록 하부 구조물 사이에 머리가 끼여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목숨을 잃었다.
이에 회사는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 사흘간 전 사업장에서 ‘안전셧다운(가동중단)’을 실시하고 전 직원을 대상으로 특별 안전 교육과 현장 점검을 병행했지만 노조는 근본적인 안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군산조선소의 중대재해 발생 3일 후 성명서를 통해 “지게차의 지붕 역할을 하는 ‘헤드가드’를 낮추다 보니 (지게차 운전원이) 불완전한 자세에서 작업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며 “노조에서 헤드가드 불법 개조로 분명히 중대한 사고 위험성이 있다고 2년 전부터 개선을 요구해 왔지만 반영되지 않아 이번에 사고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 군산조선소 사망사고, 노조 안전개선 요구안 미수용
노조는 여름휴가 이후인 이달 14일 중노위에 쟁의조정을 신청할 계획이다. 사측이 임단협 요구안에 대한 제시를 미루고 있고 최근 잇따른 중대재해와 관련한 안전 특별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쟁의조정 신청의 가장 큰 사유다.
한화오션은 임단협 과정에서 원청(직영) 노조의 성과급 지급 기준의 투명성·제도 개선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여기에 최근 중노위가 거제조선소 구내식당과 통근버스 등을 운영하는 협력업체 ‘웰리브’ 노동자에 대해 회사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 하청 교섭 문제까지 새 변수로 떠올랐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교섭 구도 자체가 복잡해진 양상이다.
한화오션은 웰리브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성을 인정한 중노위 판정에 불복해 지난달 20일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과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청이 사용자성 판정에 소송으로 대응한 첫 사례다.
▲ 한화오션, 웰리브 노동자 사용자성 인정에 불복
한화오션의 소송에 하청노조의 연대 투쟁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하청노조인 금속노조 웰리브지회,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원청인 한화오션을 상대로 쟁의조정 신청을 한 것과 관련 경남지방노동위원회가 지난달 초 조정 중지 결정을 내렸다.
경남지노위의 결정으로 금속노조 양 지회(웰리브지회·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원청을 상대로 합법적인 파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웰리브지회는 조합원 투표에서 84.2%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가결했고 금속노조는 한화오션이 직접 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공동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철강업계도 임단협을 놓고 노사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포스코 노조는 지난달 23일 교섭 결렬을 선언한 뒤 중노위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포스코 노사는 지난 6월부터 6차례 교섭을 진행했으나 기본급과 격려금에서 접점을 찾지 못했다. 노조는 기본급 7.1% 인상과 격려금 600%, 우리사주 50주, 명절상여금 200% 지급 등을 요구했다.
이에 사측에서 기본급 1.2% 인상과 격려금 200만원 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양측의 입장 차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노조는 지난달 초 조합원 투표에서 92.2%의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가결했다. 조합원 찬반 투표에서 쟁의행위가 가결된 만큼 노조는 중노위의 조정이 중지되면 합법적인 파업권을 확보하게 된다. 실제 파업까지 이어진다면 포스코는 1968년 창사 이후 첫 파업에 맞닥뜨리게 된다.
▲ 반도체-타 제조업종 간 격차 극명...노사 분규 범위 확대
현대제철은 지난달 31일 기본급 8만원 인상과 성과급 300%, 현금 500만원 등을 담은 잠정합의안을 도출하며 한발 앞서 접점을 찾았다. 다만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가 남아 있어 최종 타결 전까지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분석이다.
국내 산업에서 반도체와 나머지 제조업종 간의 격차는 구조적으로 점점 크게 벌어지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최근 발간한 '2026 대한민국 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반도체 생산지수는 2015년 43.3에서 2025년 180.6으로 4배 이상 증가하며 제조업 전체 성장(연평균 3.0%)을 크게 웃돌았다. 반면 철강은 같은 기간 118.5에서 89.8로 하락하며 주요 업종 중 기준년도(2020년=100) 수준을 하회하는 유일한 업종이란 오명을 남겼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은 3~4년치 수주잔고를 확보한 상태이며 철강업도 연속 공정 특성상 생산 차질에 따른 부담이 있다”며 “파업이 현실화 할 경우 협력업체와 공급망 전반으로 영향이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하청 교섭 구조 변화 가능성이 커졌고 호황 국면 속 성과 분배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며 “올해는 예년보다 노사 갈등 범위와 간극의 골이 깊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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