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현지시간) 북아프리카 해안에 있는 스페인의 역외 자치령 세우타로 헤엄쳐 들어온 수만 명의 이주민 대부분은 현재 스페인 군인과 경찰의 호송을 받아 모로코로 돌아간 상태다.
그러나 대규모 인원이 이례적으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최소 72명이 사망했으며, 버려진 고무 튜브와 오리발과 함께 떠다니던 이들의 시신은 바다에서 차례로 수습됐다.
이번 사건은 유럽 정치계를 뒤흔들었으며, 이민이라는 민감한 사안을 둘러싼 분열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또한 갑작스러운 대규모 유입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남아 있다. 유럽에 쉽게 갈 수 있다는 SNS(소셜미디어) 게시물이 단순히 입소문을 탔을 뿐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 의도적으로, 심지어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움직임이었는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정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스페인의 사회당 소속 페드로 산체스 현 총리는 이러한 대응에 분노하고 있다.
산체스 총리는 이번 위기 상황에서 지지 대신 정치적 공세를 펼치며 스페인을 "공격"한 유럽연합(EU) 내 일부 세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은 무엇보다도 이탈리아를 겨냥했다는 평가다.
조르자 멜로니 현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의 극우 정당 '이탈리아의 형제들'당은 세우타 거리를 질주하는 이민자들의 사진을 재빨리 게시하며 "이것이 바로 이탈리아 좌파가 그토록 좋아하는 산체스 모델"이라고 득의양양하게 적었다.
이후 멜로니 총리는 안보 위협이 우려된다며 스페인과는 자유로운 인적 이동을 허용하는 솅겐 협정 적용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스페인 측은 격분하고 있다.
스페인의 입장에서 이번 위기는 이미 통제된 상태이며, 세우타는 원래 솅겐 지역에 속하지 않는 만큼 이번 모로코 이주민들이 아무런 제지 없이 유럽 본토로 향할 가능성은 없었다.
물론 멜로니 총리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이탈리아에서는 내년 선거가 예정돼 있으며, 현 총리의 연립 정권은 극렬한 반이민 신생 정당을 상대로 지지 기반을 잃어가고 있다.
이번 사태는 멜로니 총리가 강경하게 반이민 목소리를 높이고 표를 되찾을 기회였고,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아챘다.
스페인의 안이한 대응?
하지만 이민 문제와 관련해 스페인의 대응이 안이하다고 말하는 나라는 이탈리아뿐만이 아니다.
오는 4일 EU 내무장관 긴급회의를 소집하자고 촉구한 멜로니 총리의 성명에는 EU 회원국 정상 20여 명이 서명했다. 이들은 유럽으로의 '유인 요인'이 될 수 있는 모든 정책을 폐지해달라고 요구한다.
이들이 가장 문제 삼는 부분은 바로 미등록 이주민 수십만 명이 거주 및 취업 허가를 신청할 수 있고, 체류 작업을 '정규화'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스페인 정부의 논란 많은 정책이다.
스페인 정부의 입장은 실용적이다. 스페인은 고령화 사회이며,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주 세우타 해변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이미 신청 마감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온 것이 아니었다.
산체스 총리는 대신 자국 대법원의 최근 판결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나섰다. 최근 스페인 대법원은 바다를 통해 입국한 사람들은 즉시 강제 송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총리는 밀입국 브로거들이 해당 판결의 의미를 잘못 해석해 유럽으로 가는 쉬운 길이 있다는 메시지를 퍼뜨리며 이번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이번에 세우타로 향한 사람들 대부분은 모로코인이었고, 이동 경로도 이미 잘 알려진 경로였기에 브로커에게 돈을 지불할 필요는 없었다.
실제로 이 같은 메시지는 온라인을 통해 확산됐다.
이민자들은 기자들에게 "스페인의 문이 열렸다"며 뛰어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SNS 게시물을 보여주었다.
취재진은 잠수복과 오리발을 착용한 젊은이들이나 이미 헤엄치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 및 세우타 내부에서 찍힌 사진들을 게시한 여러 계정을 확인했다.
이러한 계정 중 일부는 개설된 지 불과 몇 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몇몇 계정은 이미 수만 건의 '좋아요'를 기록했다.
이러한 계정이 내세운 약속과 메시지는 모두 거짓이었다.
기쁨과 기대로 세우타 해변에 도착해 땅에 입맞춤하는 사람들을 맞이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음식도, 머물 곳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 본토로 들어갈 방법도 없었다. 이에 대부분 곧바로 되돌아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었나?
그렇다면 몇 년 전 벨라루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민자들이 "정치적 도구"로 이용된 사태일까.
그렇다면, 그 배후는 누구일까.
현재로서는 이번 사태의 결과에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의 안드레아 리지 기자가 지적했듯, 전 세계 우익 세력은 "기쁨에 들떠" 있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자신의 전쟁에 반대하는 스페인에 분노하며, 이번 사태는 "재앙"이자 "침략"이라고 표현했다. 멜로니 총리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자국 선거를 앞두고 있다.
러시아 역시 슬쩍 웃음 짓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의 혼란과 분열을 좋아한다. 우크라이나의 동맹국들을 약화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환영이다.
모로코의 경우, "범죄 조직" 탓을 하고 있다. 하지만 모로코 국경 경비대원들은 몰려드는 사람들을 분명히 목격했을 것이다.
규모는 더 작았으나 과거 비슷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스페인과 모로코가 옛 식민지였던 서사하라 문제를 놓고 대립하던 시기였다.
현재 새로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산체스 총리는 이번 사태에 대해 모로코를 강하게 비난하지 않으며, "좋은 동맹국"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비판자들은 달래기에 불과하다며, 그가 "이빨을 보여야 한다"고 말한다.
결과
현재로서 스페인 당국은 향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우타를 방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스페인은 바다 쪽으로 울타리를 확장하고, 주황색 부표를 길게 줄지어 설치해 선박이 수시로 이 경로를 순찰하며 수영해서 건너오려는 사람들을 저지할 계획이다.
EU 내무장관들은 다음 주 외부 국경 강화 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며, 포퓰리즘 우파 세력들은 한층 기세가 오른 분위기다.
스페인에서 이탈리아로 이동하는 여행객들은 앞으로 몇 주 동안 경찰의 무작위 신분증 검사를 받게 된다.
그러니 큰 변화는 없는 셈이다.
단, 인터넷에서 본 환상을 좇아 바다로 나섰다가 관에 실려 모로코로 돌아가고 있는 수십 명의 젊은이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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