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오미경 기자]
‘어디’보다 ‘어떻게’... 올여름 휴가는 ‘쉼’을 향한다
올여름 휴가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기록적인 폭염과 고물가, 바쁜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더 멀리 떠나기보다 제대로 쉬는 시간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관광지를 많이 둘러보는 여행보다 한곳에 머물며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휴가가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휴가는 여전히 떠나는 일이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이 찾는 것은 새로운 경험보다 ‘쉼’이다. 달라진 여름휴가 풍경을 통해 오늘날 사람들이 원하는 ‘쉼’의 의미를 들여다봤다.
관광보다 휴식을 선택하는 사람들
휴가를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한정된 휴가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곳을 둘러보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만족스러운 여행으로 여겨졌다면, 최근에는 관광 일정을 줄이는 대신 한 공간에 오래 머물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늦잠을 자고, 숲길을 걷고, 책을 읽거나 아무 계획 없이 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오히려 휴가의 가장 중요한 일정이 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현실적인 여건이 자리한다. 기록적인 폭염으로 장거리 이동 자체가 부담이 된 데다 숙박비와 교통비, 외식비까지 크게 오르면서 긴 여행을 계획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쉬지 못하는 삶’이 일상이 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업무와 인간관계, 계속 울리는 스마트폰 알림까지 하루 종일 긴장을 놓기 어려운 생활이 이어지면서 휴가만큼은 무언가를 더하기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원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여름휴가 관련 조사에서도 휴가 계획은 유지되지만 여행 기간은 1~2박의 짧은 일정이 가장 많았고, 여행 선택 기준으로는 ‘휴식과 힐링이 가능한 환경’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휴가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휴가의 목적이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어디에 가는가’보다 ‘어떻게 쉬느냐’가 중요해져
휴가의 목적이 바뀌면서 여행의 모습도 다양해지고 있다. 호텔에서 온전히 쉬는 호캉스는 이제 익숙한 휴가 문화가 됐고, 여기에 책 한 권을 읽으며 조용히 머무는 북캉스, 숲길을 걸으며 자연 속에서 휴식을 찾는 숲캉스, 명상과 요가·숙면 프로그램 등을 경험하는 웰니스 여행까지 ‘회복’에 초점을 둔 여행이 확산되고 있다.
이들 여행은 형태는 달라도 공통점이 있다. 어디를 갔는지보다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는 점이다. 여행의 만족을 이동 거리나 관광지의 개수가 아니라 얼마나 편안하게 쉬었는지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체류형 여행도 하나의 새로운 휴가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글로벌 여행업계 역시 독서를 목적으로 떠나는 여행, 조용한 환경에서 머무는 여행, 건강 회복을 위한 웰니스 여행 등을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주목하고 있다. 휴가가 특별한 경험을 소비하는 시간을 넘어 일상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쉼도 하나의 선택이 된 시대
이러한 회복형 휴가가 보여주는 가장 큰 변화는 사람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대목이다. 예전에는 휴가에서도 부지런히 일어나 관광지를 둘러보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하루를 빈틈없이 보내야 알찬 휴가를 보낸 것처럼 느끼곤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일정을 줄이고,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아무 계획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 역시 휴가의 중요한 시간이 됐다. 또한,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집에서 쉬거나 디지털 기기 사용을 줄이며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한편, ‘잘 쉬는 법’ 역시 하나의 새로운 소비시장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호텔과 리조트는 숙면과 명상, 건강식을 앞세운 웰니스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지방자치단체들도 산림치유와 치유관광 상품을 확대하는 일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를 두고 회복을 위한 선택지가 다양해졌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잘 쉬는 법’마저 비용을 들여야 하는 소비와 상품의 영역으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도 공존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변화는 있다. 사람들은 휴가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으려 하기보다,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려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빽빽한 일정 대신 여유를, 새로운 자극 대신 평온함을 선택하는 것이다.
폭염과 고물가라는 현실은 올여름 휴가의 방식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변화는 단순히 여행의 거리나 기간을 줄인 데 그치지 않는다. 휴가를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올여름 사람들이 찾고 있는 것은 새로운 여행지가 아니라, 잠시 잊고 지냈던 ‘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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