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에 열린 '지역·필수·공공의료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역·필수·공공의료에 대한 국가 책임과 공적 역할을 강화하고, 이를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정주여건 조성의 중요한 수단이란 관점에서 접근하겠다고 밝혔다(☞관련영상 바로가기). 이를 위해 내년 1월부터 집행될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는 연 1조 원이 넘는 재원을 담뱃세로 조성하여 "수도권에서 멀수록 더, 공공의료기관에 우선하여, 지역주도로" 집행한다는 원칙을 발표했다.
하지만 집행 5개월을 앞두고도 지방정부의 준비상황을 전혀 알 수 없고, 재정당국이 '건강보험 재정구조 개혁'을 들어 특별회계 규모를 삭감하거나 기존 일반회계사업의 이름만 바꾸는 '돌려막기' 움직임도 감지된다. 이에 시민사회는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 전액을 삭감·이관없는 순수 신규 예산으로 편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특별회계로 충분한가
한국의 재정분권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회계의 규모는 커졌지만, 이름만 바꿔 재포장한 국고보조사업이나, 지방정부가 정책기획자가 아닌 사업수행자에 불과한 사례를 확인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가장 가까운 선례는 2022년 도입된 지방소멸대응기금인데, 매년 1조 원을 조성하여 '취약할수록 더 지원한다'는 점에서 재원 철학이 같다. 2022년 기금의 집행률은 37.6%에 불과했는데(나라살림연구소, 2023), 미집행 문제는 지속되어 2025년 말 기준 미집행액은 약 9500억 원에 달했다(국회예산정책처, 2026a).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재원을 신규로 편성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예산주기와 불용 및 이월 관리 등의 제도 설계와 재정 투명성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돈이 남아도는 역설이 반복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04년 국가균형발전특별법과 함께 설치된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현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는 '경직적·중복적 예산운영을 벗어나 지역 자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출발했다. 그러나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의 집행 지연과 이월의 문제, 형식적 평가제도로 인해 실질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2026년 지역자율계정의 대규모 증액이 실은 기존 사업의 계정이관에 불과해 지자체 자율성 강화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평가된다(국회예산정책처, 2026b; 2026c).
1995년 조성된 국민건강증진기금은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와 재원과 부처가 일치하는 사례이다. 정부가 일반예산으로 편성해야 할 사업까지 이 기금을 끌어다 쓴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반복적으로 제기되어왔고, 최근 연구는 건강보험 지원 비중이 크고 병원 건립과 운영 같은 인프라성 사업까지 포함되면서 기금의 정책적 정체성이 흐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이한솔·이유리, 2025).
세 선례들은 모두 특별회계·기금이라는 형식이 곧바로 지역의 분권 강화와 안정적·추가적 재원 확보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전한다.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가 진료권 단위에서 지역주도를 강조하는 진전된 관점에도 불구하고, 급박한 계획제출 일정과 지방정부에 대한 기술지원체계가 없고 지방정부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사업들이(책임의료기관 역량강화와 필수의료 안전망 구축) 포함되어 지방정부가 핵심 권한을 가지기 어렵다는 우려(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가 나오는 배경이다.
'국가책임 강화'라는 상징정치를 넘어
그렇다면 정부는 왜 이런 방식을 또 꺼내드는 것일까. 정치학자 머레이 에덜먼의 상징정치론에 따르면, '국가책임 강화',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같은 문구는 즉각적 안도감과 강한 정서적 반응을 주는 응축상징(condensed symbol)이고, 특별회계의 실제 세입·세출 항목은 확인 가능한 지시상징(referential symbol)이다. 대통령 주재 간담회라는 이벤트, 대통령의 선언, 부처의 종합대책 발표는 이 응축상징을 반복 생산하는 절차이며, 이는 실제 문제 해결 여부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유효하다.
다시 7월 22일 간담회로 돌아가보자. 예비 타당성 조사가 주민들의 절박한 현실과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지역 공공병원 설립을 가로막는 부당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발언에 대통령은 "지방 공공병원 문제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크다"며 공감을 표하고 "공공병원을 확충하게 되면 그 부분을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또한 진료현장의 산부인과나 소아과 의사, 공보의와 전공의 대표들에게는 충분한 발언시간을 주고, 구체적인 관심과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반면 지역·필수·공공의료의 분권성을 강화하려면 지방정부와 지역주민들이 당사자 주체로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제도화와 특별회계의 신규 편성이 중요하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다른 발언들과 달리 대통령의 코멘트가 이어지지 않았다. 예타 평가기준 개선이나 의료인력 부족 문제처럼 눈에 보이는 개별 현안에 대해 즉각 공감하고 정책검토를 약속한 것과 대조적으로, 소수 전문가나 시민사회가 제기하는 재정 배분과 중앙-지방 권력관계의 근본적 개편과 같은 구조적 문제에는 답하지 않는, 그 자체로 응축상징의 현장이었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정부가 뭔가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지역의료 문제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다. 지방소멸대응기금,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국민건강증진기금은 다름 아닌 바로 국가기구(국회예산정책처)로부터 애초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정책으로 평가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소수일 뿐이다.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가 같은 경로를 밟더라도 다음 정부가 '이미 재정을 많이 쓰고 있다'는 상징을 통해 또 다른 이름으로 '국가책임'을 선언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 이유이다.
사람들의 생명이 위태로운 현실에서 만들어지는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가 이 순환을 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국가가 지역의료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메시지와 의례로 정부가 얻는 정치적 이익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주민들이 체감하는 이익과 이어지도록 하는 계획과 재원편성 이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름만 바뀐 예산 이관", "지방 자율성이라는 명분과 실제 경직적 운영 간의 괴리", "배분의 불투명성" 등 이미 지적된 문제들이 개선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공간 정의(spatial justice)와 재정민주주의 관점에서 균형발전을 재정의하자는 논의를 참고할 수 있다. 핵심은 구조적으로 주변화된 지역과 집단이 자신의 삶의 조건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역량과 자원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정성호, 2026).
현장에서 답을 찾는 지역 주도 지역필수의료가 돼야
현재 지역필수의료 논의는 정부의 최근 추진전략에서 드러나듯 병상 수·의사 수를 인구비례로 맞추자거나 모든 지역에 큰 병원을 세우자는, 대도시 의료모델의 이식에 가깝다. 하지만 인구가 줄고 이미 20년 전에 초고령사회가 되어버린 지역에 그런 인프라를 갖추자는 것은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그런 토대에 기반한 평가지표는 주민 구성과 의료체계의 근간이 달라진 지역을 다시 '실패한 곳'으로 낙인찍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규모를 키우는 성장 모델이 아니라, 인구와 인프라가 줄어드는 지역에서 무엇을 축소하고 어떻게 존엄을 유지할지 지역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지역 주민의 질병구조, 교통조건 등 접근성, 지역 보건의료체계, 인구특성 등 각기 다른 지역의 특수성에 근거해 지역의 필수의료 수요를 정의하는 권한이 지역에 있어야 한다. 둘째, 수요를 진단할 뿐 아니라 지역이 자체적으로 의료인력을 양성·정착시키고, 그들이 일할 수 있는 공공병원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 파견의사나 단기순환근무 인력을 외부에서 유입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도 않고, 지역의 기능적 완결성을 가로막는다. 셋째,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의 배분기준과 성과평가의 기준은 처음부터 지역정부와 지역주민들이 참여해 설계해야 한다. 지역이 중앙정부의 기획과 예산배분에 수동적으로 협력하는 구조라면, 지역 스스로 계획하고 대응하는 구조는 만들어질 수 없다.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오래된 권력과 자원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이다.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가 기존사업비로 전용되지 않고 신규사업비로 지역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투입되고, 그 배분과 평가의 기준을 지역이 직접 설계하는 조건이 갖춰질 때 비로소 "지역주도 원칙"은 선언과 상징이 아니라 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나라살림연구소 (2023). 지방소멸대응기금 2024년 배분액 및 2022년 배분액 집행률 현황
국회예산정책처 (2026a). 지방소멸대응기금 운용 현황 평가
국회예산정책처 (2026b).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 평가
국회예산정책처 (2026c).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 포괄보조 확대에 따른 향후 개선과제
이한솔, 이유리 (2025). 국민건강증진기금의 법적 운영체계 분석과 제도 개선 방향. 한국의료법학회지, 33(1)
정성호 (2026). 균형발전이라는 환상 : 개념, 재정, 공간의 정치경제학. 한국행정연구,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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