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식탁] "우아하고 기괴한 진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풍자한 19세기 영국 티파티
전 세계 수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 온 루이스 캐럴의 대표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흔히 환상적인 동화로만 알려진 이 작품 속에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허례허식과 배타적인 상류층 사교계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이 숨어 있습니다. 특히 앨리스가 모자 장수, 3월 토끼와 마주치는 ‘매드 티파티(Mad Tea Party)’ 장면은 당대 사교계의 가식과 체면 문화를 완벽하게 비꼬고 풍자한 대목입니다.
■ "자리 없어!" 배타적인 귀족 사회와 의미 없는 말장난
앨리스가 테이블에 다가왔을 때, 커다란 테이블이 훤히 비어 있음에도 모자 장수와 3월 토끼는 “자리가 없다”며 소리를 지릅니다. 이는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티파티가 철저히 초대에 기반하여 운영되었던 배타적인 문화를 반영합니다. 초대장이 없는 외지인의 출입을 극도로 경계하던 상류층의 폐쇄성을 꼬집은 것입니다.
이어 모자 장수는 앨리스에게 "까마귀는 왜 책상처럼 생겼을까?"라는 느닷없는 수수께끼를 던집니다. 앨리스가 고민 끝에 답을 묻자 당당하게 "나도 모른다"고 답합니다. 실속 없이 상대의 말꼬리를 잡고 무의미한 대화로 면박을 주는 이 장면은 당시 사교계의 껍데기뿐인 대화법을 폭로합니다. 당대 예절론에 따르면 티타임에서 정치, 종교 같은 무거운 주제는 무례한 것으로 간주되어 오직 가벼운 가십이나 일상 대화만 허용되었는데, 이것이 결국 아무런 알맹이 없는 허례허식에 불과함을 보여줍니다.
■ 와인 없는 와인 권유와 끊임없이 자리를 바꾸는 사치
있지도 않은 와인을 마시겠냐고 권유하는 3월 토끼의 행동 역시 당대 겉치레 문화를 풍자합니다. 손님이 오면 푸짐하게 권하는 것이 에티켓이었지만, 속으로는 손님이 거절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위선적인 체면 문화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또한 찻잔을 제대로 비우지도 못한 채 계속 자리를 옮겨 다니는 기괴한 규칙은 상류층의 무능함과 사치를 드러냅니다. 당시 귀족들은 손에 흙이나 물을 묻히지 않는 것을 계급의 상징으로 여겼고, 설거지 같은 실질적인 노동은 모두 하인들의 몫이었습니다. 하인이 없는 테이블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무의미하게 자리만 옮기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상류층의 무능함을 희화화한 것입니다.
■ 약자에 대한 착취와 사소한 규칙으로 편 가르기
두 인물 사이에 끼여 팔받침대로 쓰이거나 학대를 당하는 ‘겨울잠 쥐’는 산업혁명 시기 가혹한 환경에서 착취당하던 아동 노동자와 하층민들을 상징합니다. 또한 날짜만 가리키다 버터를 바르고 완전히 고장 나 버리는 시계는, 산업혁명을 거치며 시간을 엄격하게 통제하려다 오히려 삶을 엉망으로 꼬이게 만들던 당대의 강박적인 사회 분위기를 비판합니다.
사교계는 차를 마시는 사소한 순서로도 계급을 나누었습니다. 싼 도자기를 쓰던 하층민들은 찻잔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해 우유를 먼저 부었고(MIF: Milk In First), 최고급 본차이나를 쓰던 상류층은 홍차를 먼저 부었습니다(MIA: Milk In After).
■ 맺음말
결국 앨리스가 "내가 가본 것 중 가장 멍청한 티파티야"라며 분통을 터뜨린 것처럼, 매드 티파티는 지나치게 굳어진 예절과 규칙으로 타인을 검열하고 급을 나누던 19세기 영국 티파티의 완벽한 축소판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우아함을 표방하지만 속은 비합리적인 가식으로 가득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단면을, 루이스 캐럴은 동화라는 그릇에 담아 날카롭게 증명해 보였습니다.
Copyright ⓒ 위키트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