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똥 냄새가 코를 찌른다. 횃대에 앉은 닭들은 계속 노려보는 것만 같다. 왜는 왜? 약해 빠진 나를 공격하려고 그러겠지. 벌벌 떨며 닭장에 들어 까치발로 걸음을 뗀다. 조심조심, 살금살금. 몇 걸음 거리가 수십 걸음인 양 멀기도 멀더라. 휴우, 간신히 닭 둥우리 앞이다. 닭장에 가서 달걀을 가져오라는 할아버지의 특명. 어린 손자는 둥우리 안 누런 달걀 둘에 기쁠 새도 없다. 한 손에 한 알씩 냉큼 집어 걸음아 나 살려라 닭장을 탈출한다. 후다다닥, 후닥닥. 특명을 완수한 안도감에 달걀의 온기까지 퍼진다. 이내 푸근해진다.
사자성어 가계야치(家鷄野雉)를 만나 옛일이 떠올랐다. 집에 있는 닭은 언제나 그러했다. 밥상에 수시로 오르는 달걀부침에 신선한 재료를 내어 주었고, 선물 꾸러미 들고 집을 찾은 귀한 손님이나 오랜만에 고향에 온 가족들에게 온몸을 던져 백숙이 되어 주었다. 그 넉넉한 생산성이란, 그 뜨거운 헌신이란. 어려서부터 느낌으로 알았다. 집닭(家鷄)이 들꿩(野雉)보다 귀하다는 사실을.
그러나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고 했던가. 살면서, 가까이 있는 흔한 것(집닭)을 하찮게 여기고 멀리 있는 드문 것(들꿩)을 귀하게 여기기 일쑤다. 가계야치는 그런 어리석음 자체를 이르는 말이다. 어려서부터 느낌으로 알았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아는 게 아는 게 아니었나 보다. 가계야치는 유래가 있는 말이다. 서성(書聖)으로 추앙받는 왕희지(307∼365)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서예와 관련이 있다.
중국 동진 시대, 왕희지 글씨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인물이 있었다. 유익이다. 어느 날 유익이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 자식놈들이 집안의 닭(유익 자신의 글씨)은 하찮게 여기고 들판의 꿩(왕희지의 글씨)만 사랑하여" 모두 왕희지 글씨만 배운다고 탄식했다. 그건 그럴만했다. 왕희지는 끊임없이 갈고닦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며 내일 다를 서예를 성취했다. 서성이라는 영예를 거저 얻은 게 아니다. 반면 절차탁마하지 못한 유익은 더는 진보할 수 없었다. 이 이야기에서는 유익의 서예가 집닭이지만, 오늘날 가계야치가 가리키는 집닭은 가깝고 흔한 모든 것의 소중함이겠다. 가계, 냄새까지도 사랑하라.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김철호, 『언 다르고 어 다르다』, 돌베개, 2020
2. 중앙일보 더 차이나 [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가계야치(家鷄野雉)와 왕희지(王羲之) (입력 2024.07.23 06:00)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5378
3.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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