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정채원 인턴기자】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오후 2시가 가까워지자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하나둘 법당으로 들어섰다. 수능을 111일 앞둔 지난달 31일 조계사에서는 수험생들의 합격을 기원하는 ‘111일 화엄성중 기도’ 입재식이 봉행됐다. 대웅전 안은 이미 방석을 깔고 앉은 신도들로 빈자리가 없었고 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들은 대웅전 앞마당에 놓인 의자에 앉거나 뒤편에 선 채 두 손을 모았다.
화엄성중은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신중(神衆)을 일컫는다. 조계사에서는 1년에 세 차례 111일 기도를 봉행하는데 여름부터 가을까지 이어지는 이번 화엄성중 기도는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을 위한 기도다. 이날 입재를 시작으로 앞으로 111일 동안 매일 오후 2시에 약 1시간 동안 대웅전에서 기도가 이어진다.
대웅전 관리팀 관계자는 “오늘은 입재라 평소보다 사람이 더 많은 것도 맞지만 수능 화엄성중 기도는 매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기도”라며 “학생들은 대부분 학교나 학원에 있기 때문에 법당에는 어머님이나 할머님들이 더 많이 오신다. 저도 오늘 손녀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고 말했다.
대웅전 한쪽에서는 재수생 자녀를 둔 한 어머니가 홀로 불경을 읊조리고 있었다. 그는 “아이는 공부하느라 혼자 왔다”며 “괜히 부담을 느낄까 봐 절에 와서 기도하고 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자녀의 합격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면서도 그 간절함조차 아이에게는 짐이 될까 숨기는 부모의 마음이 기도 소리 사이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스님의 집전이 시작되자 외국인 관광객들도 발걸음을 멈췄다. 낯설게 느껴져 처음에는 낯을 가리는 듯했지만 곧 스님의 소리를 따라 입을 움직이기도, 사람들을 따라 허리를 숙이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여행을 왔다는 한 관광객은 “프랑스는 대학 입학이 추첨제로 이뤄져 입시를 위해 가족들이 함께 기도하는 문화는 낯설다”면서도 “시험을 위해 기도해본 적은 없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좋은 마음이 든다”고 엄지를 들어보였다.
스님은 한 치의 나태함 없이 학업에 정진하고 건강한 몸으로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며 의지와 용기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살펴달라는 내용의 축원을 올렸다. 이어 법당 안은 ‘화엄성중’을 반복해 외우는 소리로 가득 찼다. 한 시간이 넘도록 신도들은 더운 줄도 모른 채 절을 올리고 허리를 숙이며 경을 따라 읊조렸다.
대웅전 마당 맨 뒷줄에 앉아 있던 한 할머니의 경전 앞장에는 아들 내외와 손주 두 명의 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손주가 이번 수능을 치르냐고 묻자 그는 “고등학교 2학년이라 내년에 수능을 본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이 학생이던 40년 전부터 매일 조계사에 와 기도를 올렸다”며 “아들은 명문대에서 학위까지 받았고 손주들도 똑똑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자식의 행복을 비는 일이 어느새 40년 동안 그의 일상이 된 셈이다.
혹시 본인을 위한 기도도 하느냐고 묻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그런 건 안 해도 된다"고 말한 뒤 다시 기도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곳곳에서 붉어진 눈시울을 소매로 닦으면서도 끝까지 경을 따라 외우는 가족들의 모습이 비춰졌다. 저마다의 자세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자식의 학업 성취를 비는 그 간절함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이날 입재한 화엄성중 기도는 앞으로 111일간 매일 오후 2시부터 조계사 대웅전에서 이어지고 오는 11월 18일 회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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