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약, 같은 성분, 같은 주 1회 주사. 그런데 국경을 넘는 순간 가격표의 4배 이상으로 가격이 뛴다. 중국에서 비만치료제 '위고비' 저용량 한 달치는 이제 5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같은 약을 한국에서 사려면 20만원을 넘게 내야 한다.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이 가격 차이가 최근 국내 소비자들이 마주한 '가격의 국적' 문제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약국 거리 / 연합뉴스
비만치료제 시장을 양분해온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는 지난해 말부터 중국에서 경쟁적으로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다. 방아쇠는 특허 만료였다. 위고비의 핵심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의 중국 내 물질특허가 지난 3월 20일 만료되면서 복제약 10여 종이 출시를 예고했다. 원조 제약사들은 복제약이 밀려오기 전에 스스로 값을 내려 시장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위고비(왼쪽)와 마운자로. AI툴로 합성한 사진이다.
낙폭은 가팔랐다. 중국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위고비 저용량(주 1회 시작 용량 4회분)은 1264위안대에서 230위안대로 약 80% 내렸다. 우리 돈으로 26만원대에서 4만원대로 주저앉은 셈이다. 고용량 제품도 2463위안에서 1284위안으로 반토막이 났다. 마운자로 역시 전자상거래 최저가가 599위안에서 559위안으로 내려가며 500위안대 초반에 형성됐다. 저용량 기준 우리 돈 11만원 안팎이다. 쓰촨성과 윈난성 약품 집중구매 플랫폼에서는 위고비 감량용 제품 두 규격이 각각 987위안, 1284위안으로 고시돼, 기존 가격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비만치료제가 미용 목적과 뒤섞여 있다는 이유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으로 묶여 있는 탓이다. 국내 약국 판매가 집계를 보면 위고비는 저용량 22만~28만원, 고용량 40만~60만원 선이다. 마운자로도 저용량 29만원대에서 시작해 고용량은 54만~60만원까지 올라간다. 저용량 구간만 놓고 봐도 중국의 다섯 배 안팎이고, 고용량으로 가면 절대 금액 차이는 더 벌어진다.
물론 단순 비교엔 함정이 있다. 중국의 최저가는 전자상거래 플랫폼 보조금과 지방정부 집중구매가 겹친 '바닥 가격'이라 실제 병원·약국에서 체감하는 가격과는 차이가 날 수 있다. 여기에 중국은 특허 만료와 복제약 진입이 임박한 반면 한국은 위고비 특허가 2028년께 만료될 예정이어서 가격 경쟁의 시계 자체가 다르다. 그럼에도 같은 다국적 제약사의 같은 제품이 소비자가 사는 나라에 따라 이렇게까지 값이 갈린다는 사실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가격의 국적' 현상은 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공지능(AI) 구독료에서도 똑같은 장면이 연출된다.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올해 초 내놓은 저가 요금제 챗GPT 고(GO)가 대표적이다. 이 요금제의 미국 이용료는 월 8달러(약 1만1500원)다. 그런데 한국 가격은 1만3000원이다. 고환율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소비자의 높은 지불 의향은 이 가격 책정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한국은 챗GPT 유료 이용자 규모가 세계 상위권으로 꼽힌다. 다운로드 대비 매출이 미국과 맞먹는 수준이라는 분석도 있다. 시장이 값을 견딜 수 있다고 판단되면, 요금은 그만큼 높게 매겨진다.
경쟁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구글은 오픈AI가 챗GPT 고를 선보인 지 열흘가량 뒤 광고 없는 저가 구독제 '구글 AI 플러스'를 한국을 포함한 35개 국가·지역에서 월 1만1000원에 출시했다. 챗GPT 고의 한국 이용료보다 낮게 책정해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오픈AI가 챗GPT 고와 무료 버전에 광고를 도입하겠다고 예고한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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