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농가 손실만 벌써 7조원 규모…와인 농가도 타격
농작물 수확 포기하기도…기후 변화에 생업 유지 고민 커져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25년 동안 이런 일은 본 적이 없습니다"
프랑스 중부 욘 지방에서 밀, 보리, 옥수수를 재배하는 브누아 플레시는 숨 막힐 듯한 7월을 보내고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다.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의 작물들은 타는 듯한 더위와 심각한 물 부족 사이에서 서서히 말라 죽어 가고 있다.
플레시는 30일(현지시간) 일간 르피가로에 "작물들이 완전히 망가졌다. 섭씨 35도가 넘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남아있다. 그는 "이미 비축해 둔 물도 거의 바닥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와인 업계도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이번 달 보르도의 AOC(프랑스 원산지 명칭 제도) 와인 산지 12곳은 포도밭에 물을 대기로 결정했다. 포도나무의 고사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AOC 규정상 이론적으로는 관개가 금지돼 있지만 심각한 가뭄 상황을 고려해 예외적으로 허용됐다.
알자스 지역의 와인 생산자인 제롬 바우어는 일간 르몽드에 폭염과 물 부족으로 인해 올해 "수확량이 적을 것"이라며 "생산량 추정치가 매일 줄어들고 있어 더 이상 추정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가뭄은 포도알의 크기에 영향을 미친다.
랑그독 지역 와인 생산자인 장마리 파브르는 "포도나무에 물이 부족하면 포도알에서 물을 빼내어 포도알의 크기를 줄인다"며 "포도나무는 자손을 살리기보다 자신의 생명을 지키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결과 수만 필지의 포도밭에서 수확이 불가능해지고, 물 부족으로 포도가 완전히 익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프랑스 일부 지역을 휩쓸고 있는 새로운 폭염은 와인 품질을 더 저하할 수 있다. 장마리 파브르는 "이전 폭염의 영향을 덜 받았던 남부 지역에서도 이번 폭염으로 포도 숙성이 지연될 것"이라며 "수확기에 40도를 넘는 고온은 와인의 산도를 낮추고 와인의 특징을 떨어뜨린다"고 설명했다.
유럽 가뭄 모니터에 따르면 이번 달 프랑스 본토 토양의 96.5%가 건조한 것으로 분류됐다. 이는 2012년 4월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프랑스 곡물 생산자협회 회장인 프랑크 라보르드는 "어느 지역도 예외가 없다"며 올해가 "세기 최악의 해"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프랑스 농민연합의 스테판 갈레 대변인도 "상황이 매우 매우 심각하고 심지어 재앙적"이라며 "1976년 여름도 가뭄이 극심했는데 올해는 그때보다 더 심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랑스 농가는 2월의 폭우, 5월 말부터 시작된 몇 차례의 폭염, 거기다 최근 산불까지 겪으며 막대한 손실을 보았다. 프랑스 최대 농민조합단체인 전국농민연맹에 따르면 그 피해 규모는 이미 45억 유로(약 7조원)에 달한다.
겨울 작물은 그나마 피해를 덜 입었다.
농업부의 초기 추산에 따르면 프랑스의 밀 생산량은 올해 전년 대비 4%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리 생산량도 6%가 줄 것으로 전망된다.
라보르드는 "반대로 일부 지역에서는 수확량의 최대 100%까지 손실을 본 작물도 있다"며 특히 상추, 양파, 마늘 등을 예로 들었다. 물을 많이 소비하는 옥수수의 경우 40% 감소가 예측된다.
현 상황에서 일부 작물은 생육 주기를 마치기도 전에 고사할 것으로 보고 일찌감치 곡물 수확을 포기하는 농민도 있다. 조기 수확이라도 해 최소한 가축 사료로라도 활용하기 위해서다.
농작물 피해는 사료 생산량 감소로도 이어진다. 이에 일부 농가는 가축 사료를 외부에서 구매해야 하는 처지다.
내년 농작을 위한 종자나 파종에 적합한 토양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플레시는 "토양이 건조해서 파종도 어렵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한숨 쉬었다.
반복되는 어려움에 지친 일부 농민은 생업을 아예 접는 방안까지 고민하고 있다.
프랑스 남부 아베롱 북부에서 축산업을 하는 브뤼노 바튀는 "농사를 계속할지 말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지구 기온이 4도 더 오르면 상황은 얼마나 더 악화하겠느냐"고 탄식했다. 농민연합의 스테판 갈레 대변인도 "농업을 포기하는 농민이 더 빠르게 늘어날까 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농민 대표들은 정부에 이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을 호소하고 있으나 국가 재정 상황이 녹록지 않아 정부로서도 난감한 상황이다.
프랑스는 1976년 기록적인 대가뭄에 피해가 극심하자 농가 지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소득세를 추가 징수하는 특별부담금을 도입한 적이 있다. 당시 언론은 이를 '가뭄세'로 불렀는데, 국민들 사이에서 왜 모든 납세자가 농민 피해를 부담해야 하느냐는 반발이 일어 일회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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