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박정현 기자 | 정부가 15년 만에 알뜰폰(MVNO) 종합 활성화 정책을 내놓으며 시장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이는 단순히 이통사의 저가 요금제를 재판매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자체 설비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 경쟁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 정책의 성패는 이통3사와 알뜰폰 업계 간 실질적인 상생 구조를 얼마나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평가다.
▲ 이통3사 저가 공세에 흔들린 '알뜰폰'
국내 알뜰폰 시장은 지난 2011년 제도 도입 이후 이통사의 망을 빌려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저렴한 요금제를 앞세워 가입자 1000만명을 넘기며 가계 통신비 절감에 기여했지만 자체 네트워크와 플랫폼이 없어 가격 경쟁 외 차별화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시장 환경도 빠르게 변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올해 1~3월에는 이통3사에서 알뜰폰으로 이동한 가입자가 순증을 기록했으나 4월 이후부터는 알뜰폰에서 이통3사로 이동하는 가입자가 더 많아졌다. 이통사들이 중저가 요금제를 확대하고 세컨드 브랜드를 강화하면서 알뜰폰의 가격 우위가 흔들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서비스를 접목한 요금제와 각종 멤버십, 데이터 혜택 경쟁까지 치열해지면서 단순 재판매 중심의 사업 모델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알뜰폰이 '저렴한 요금제'라는 기존 강점만으로는 시장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구조가 된 것이다.
▲ 15년 만의 정책 전환…'투자 사다리' 구축
이에 정부는 가격 경쟁력 확보와 사업 구조 혁신, 이용자 신뢰 회복을 세 축으로 종합 지원책을 마련했다.
우선 이통3사의 신규 요금제를 알뜰폰 사업자도 도매 형태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 오는 8월부터는 기본 데이터를 모두 사용한 이후에도 저속으로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 안심옵션'이 포함된 요금제를 수익배분 방식으로 제공한다.
도매대가도 일부 인하한다. 5G 도매대가를 조정하고 중소 알뜰폰 사업자의 전파사용료 감면율은 기존 50%에서 최대 90%까지 확대한다. 감면율은 법령 준수 여부와 이용자 보호 수준 등을 반영해 차등 적용할 계획이다.
단말기 경쟁력 강화 방안도 포함됐다. 인증 중고폰 거래 활성화를 위해 안심거래 사업자 인증제를 확대하고 정책금융을 활용한 설비 투자 지원도 추진한다. 이용자들이 보다 다양한 단말기를 합리적인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취지다.
이번 정책의 가장 큰 변화는 서비스형(부분 MVNO)과 독립형(Full MVNO)을 단계적으로 육성하는 '투자 사다리'를 제도화한 점이다.
서비스형 MVNO는 이통사 망을 이용하면서도 자체 설비를 통해 요금제와 부가서비스를 직접 설계하는 형태다. 독립형 MVNO는 가입자 관리와 인증, 과금 등 핵심 통신 설비까지 직접 운영하는 모델이다. 업계에서는 독립형 MVNO 구축에 약 500억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서비스형과 독립형 MVNO의 법적 정의와 설비 기준을 마련하고 망 연동 의무 대상을 이통3사 전체로 확대하기로 했다. 설비 보유 수준에 따라 도매대가를 차등 적용하고 독립형 MVNO는 자율 협상을 원칙으로 하되 협상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정부가 사후 검증을 통해 적정성을 점검할 방침이다.
비통신 기업의 시장 진입 문턱도 낮춘다. 금융·유통·레저 기업 등이 알뜰폰 서비스를 쉽게 출시할 수 있도록 알뜰폰 인프라를 제공하는 MVNE 사업을 허용하고 초기 투자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책금융도 연계 지원한다. 알뜰폰을 통신 서비스가 아닌 다양한 산업과 결합한 플랫폼 사업으로 확대하려는 전략이다.
▲ 관건은 법제화·이통사 상생
업계는 정부가 15년 만에 알뜰폰 종합 활성화 정책을 내놓은 데 대해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후속 법제화와 구체적인 제도 설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31일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는 "이용자가 체감하는 통신비 절감 효과가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기본통신권 강화 등 이용자 보호 기반도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독립형 MVNO 육성을 위해서는 사업자의 투자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독립형 MVNO 설비 구축에는 약 500억원이 소요된다"며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투자에 따른 혜택이 보장되는 제도 마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도매대가 산정 기준과 장비·설비 투자 지원 체계를 보다 명확하게 법제화해야 한다"며 "정책 방향만 제시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업계가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번 대책은 알뜰폰을 단순한 '저가 통신'에서 독자적인 서비스 사업자로 육성하겠다는 15년 만의 정책 전환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제도적 기반 마련과 이통3사의 협력, 투자 유인 확보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가격 경쟁을 넘어 서비스 경쟁이 가능한 시장 구조를 실제로 만들 수 있을지가 향후 알뜰폰 시장 재편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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