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신간…"지구 생태계 온전히 유지해야"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장수왕 15년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고구려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인 장수왕의 천도 결정에 대해 삼국사기에 남은 기록은 이 한 줄이 전부다. 초등학교 교과 과정에서도 다뤄지는 평양 천도는 그동안 주로 장수왕이 '남진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고구려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장수왕이 내린 결단에 대해 역사학계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국내성이 수도로 기능하기에 너무 협소해 천도가 불가피했다는 주장이 있고,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국내성의 고립성도 천도 이유로 거론된다.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신간 '기후로 보는 한국사'에서 광활한 만주에 대한 장악력이 약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새 수도로 왜 남쪽을 선택했는지 주목한다.
북위의 침공으로 수도가 위험해지는 것을 막고, 남조의 송과 교류하면서 북위를 견제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해석도 있다. 여러 시나리오 중에서 저자는 기후 변화를 장수왕이 평양을 고집한 중요한 이유로 꼽는다.
기원전 3세기 이후로 온난하던 동아시아 기후는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당시 고구려는 인구 증가로 식량 사정이 악화하던 시기였다. 한랭·건조해지는 추세가 반전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장수왕은 농사에 더 적합한 남쪽으로 이주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을 법하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이처럼 책에서 저자는 5천년 한국사를 기후와 연결해 바라본다. 옛 문헌과 고기후학, 지구과학을 기반으로 기후 변화가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요구했고, 그 선택으로 전쟁, 이주, 번영, 몰락 등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이야기한다.
책은 고조선 건국에서 조선 후기 민란까지 한국사의 굵직한 장면들에 미친 기후의 영향을 살펴본다. 장수왕의 천도 외에 고조선 건국도 추위와 관련이 있으며, 고려의 번영과 몽골의 침략, 조선의 대기근과 민란도 기후와 관련 깊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한국사를 중심으로 하지만 책은 한반도를 포함해 동아시아 전역을 다룬다. 기후로 인해 여러 국가가 혜택을 받거나 피해를 보고, 그에 적응하고 대응하며 살아온 과정은 세계사와도 연결된다.
이 책은 기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또 기후는 역사에 강하게 개입하지만, 그것이 곧 운명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지도자와 구성원들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저자는 "우리 조상들은 기후 변화의 리듬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했고 과감하게 행동했다"며 "무엇보다 자연과의 균형이 중요함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자연을 무척 소중히 여겼다"고 말했다.
폭염과 이상 강우, 해수면 상승, 생태계 교란 등 기후 변화가 일상을 뒤흔들며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저자는 단기적 욕망에 이끌려 저지른 인류의 실수를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과거의 기후 변화를 탐구하는 작업이 미래 인류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며 "진정 기후 변화에 대처하길 원한다면 지구 생태계를 온전하게 유지하는 것부터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과학 기술에만 의존해서는 위험하다는 점이다. 생태계의 저항력과 회복력이 떨어지면 인류의 생존은 어렵다."
바다출판사.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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